[박나미의 골프세상] 최경주 우승의 빛과 그림자

최경주(32) 선수가 마침내 그토록 어렵다는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다. 이것은 한국 골프 역사에 남을 기념비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간 우물 안에 머물러 있던 한국 골프가 세계 골프 강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쾌거다. 그것도 아주 열악한 골프 환경을 가진 한반도 땅끝마을 완도 출신으로...

그래선지 국내 골프계는 벌써부터 ‘최경주 골프장을 건설하자’, ‘200억원의 마케팅 효과를 보았다’, ‘우승 보너스와 몸값이 얼마니’라는 등의 말이 나오고 있다. 심지어는 ‘타이거 우즈와 한판 붙어야 한다’며 온통 야단 법석이다.

하긴 정말 대단한 일을 했다. 이번 최 프로의 우승을 계기로 그간 박세리에 눌려 있던 국내 남자 골프의 인기와 관심도 높아질 것이어서 반갑기 이를 데 없다. 사실 그간 남자 프로 골프계는 여자 프로에 비해 홀대 받은 게 사실이다. 박세리, 김미현, 박지은 등 낭자들의 잇단 활약으로 세계에서 유일하게 국내에서 남자 골프가 여자 골프에 크게 밀렸다. 이제 최 프로의 우승을 계기로 남자 대회수도 늘어나고 스폰서도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자 프로들이 이제 여자 프로처럼 미국 무대에 도전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이 가장 큰 수확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개인 경험으로 미루어 보면 앞으로 최경주가 우승할수록 국내 남자 프로들은 신도 나겠지만(?) 한편으론 적지않은 스트레스도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부터는 남자 프로들도 여자처럼 실력에 따라 ‘국내파’와 ‘해외파’로 확연한 구분될 것이기 때문이다. 남자 프로들도 최경주의 우승으로 전반적인 위상이 높아지긴 하겠지만, 성적에 따라 그 만큼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박세리의 미LPGA투어 우승 이후 국내 언론들은 국내 대회는 제쳐두고 주로 외국 대회만 보도를 했다. 신문은 물론이고 방송사 TV 골프 중계는 대부분 미국 대회만 중계했고, 국내 대회는 동네 친선 경기 취급을 했다. 박세리가 미국에서 우승이라도 하면 국내 골프 기사는 아예 나오기도 않았다. 아마 프로 골퍼들이라면 이 심정이 십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다. 어차피 박세리나 최경주가 이렇게 국위 선양하고 있는만큼 국내 프로 골퍼들이 이들의 덕을 실컷 볼 수 있었으면 한다. 국내에는 남자 세미 프로만 약 2,000여명에 달한다. 하지만 말이 프로지 프로로서의 혜택은 하나도 없다. 프로 골퍼들에게 제일 중요한 골프장 그린피도 아마추어와 똑같이 단 한푼도 할인 혜택을 받지 못한다.

일부 프로는 아마추어들이 같이 라운딩을 하자고 해도 일부로 사양한다. 명색이 프로(세미 프로의 경우)인데 아마추어와 똑 같이 그린피를 내야하기 때문이다. 프론트 앞에만 가면 낮이 뜨거워진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이번 최경주 우승을 계기로 국내 남자 프로들의 그린피를 좀 인하해 줬으면 한다. 아니면 최소한 오후 3시 이후 50%할인, 또는 남자 프로를 위한 이벤트 개최든 잘치는 선수에게만 너무 집중하지 말고 그 성공의 발판을 고르게 나눠주면 어떨까 생각한다. 그것이 결국 한국 프로 골프의 저변을 넓히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부 특정인에만 집중적인 관심을 주는 경향이 있다. 그 나머지도 사람들도 똑같은 꿈을 가지고, 지금 이순간 골프장 앞을 서성이는데 말이다.

현재 고등학교 꿈나무들을 보면 무섭다. 정말 제2의 최경주가 될 재목들이 많다. 그 선수들한테 정말 필요한 것은 거액의 스폰서도 아니다. 실질적으로 연습 라운드라도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이 절실하다.

그리고 남자 세미 프로들에게도 얼마간의 그린피 할인 혜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박세리나 최경주의 우승으로 국내 골프 활성화는 빨라지긴 했지만 정작 프로들과 골프 꿈나무들에게는 별 혜택이 없다.

최경주의 우승은 한국 골프계에 일대 사건이다. 이 쾌거를 국내 골퍼들이 진심으로 성원하고 기뻐할 수 있도록 골프 꿈나무들에게도 그 혜택이 주어져야 한다. 그것이 제2, 제3의 최경주를 만드는 일이다.

박나미 프로골퍼·KLPGA정회원 올림픽 콜로세움 전속 전 국가대표

입력시간 2002/05/17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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