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데이트] 강수연, 안방극장을 '여인천하'로 만든 월드스타

"정난정으로 사는 동안 표독스런 모습에 나도 놀라"

월드스타 강수연(36)은 ‘한결 같은 사람’이란 찬사가 꼭 어울리는 사람이다. 청초한 모습에서 색녀, 시골아낙네, 비구니까지 끊임없이 다양한 변신을 반복하면서도 정작 현실에서는 33년 동안 연기 외의 다른 곳에 한 번 눈길을 주지 않았다. 긴 세월의 열정 때문일까. 혼이 실려있는 듯한 그의 연기는 보는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지난해 방송계를 떠난 지 16년 만에 SBS ‘여인천하’로 브라운관에 컴백한 그는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기다리던 시청자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불타는 눈빛과 농염한 표정은 조선시대 미천한 여인의 몸으로 나라를 뒤흔들었던 ‘난세 풍운녀’ 정난정이 부활한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한다.

“정난정이 표독스럽다구요? 역사에 이름을 남긴 뛰어난 여자들은 다 독하고 강하다는 얘기를 듣잖아요. 강하지 않고서는 여자가 한 인격체로 살아 남기 힘든 시대였죠. 전 같은 여자로서 굉장히 매력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자기 삶을 누구보다 당당하게 살다 간 부러운 여자에요.”

연기자로서 최정상의 자리에 오른 톱스타. 그가 자신은 “발 끝도 못 따라간다”며 정난정의 강한 면모를 아름답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편향된 시각이 아쉽다고 말한다.


다양한 연기 폭, 스크린의 여왕으로 군림

사극은 최고의 연기력을 자랑하는 그에게도 녹록치 않다. 현대극보다 꼭 10배는 더 힘든 것 같다. 형식을 깨지 않으면서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선다는 것이 각고의 노력을 필요로 한다. 원래 그가 출연하기로 한 방송분은 50회. 하지만 방영 초부터 시청률 1,2위를 고수해 온 덕에 이미 130회를 훌쩍 넘겨버렸다.

1년 넘게 매주 6일 이상 촬영을 강행하다 보니 ‘강단’ 있다는 그도 지쳐간다. 그럼에도 시간에 쫓겨 만족할 만한 연기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방송을 내보내는 것을 더욱 아쉬워하는 모습에서 프로 연기자의 근성이 느껴진다.

명연기는 북한에서도 통하는가 보다. 최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여인천하를 80회 이상 보았는데 잘 만든 것 같다. 특히 난정 역을 맡은 배우 강수연이 인상적이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이에 대해 강수연은 “좋게 봐주시니 기분 좋죠. 감사하죠” 하는 짧은 인사와 함께 남북한이 스스럼 없이 대중문화를 토로할 수 있다는 게 기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3살 때 처음 어머니 손에 이끌려 연예계와 인연을 맺었다.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한 것은 1971년 TBC ‘똘똘이의 모험’에 아역배우로 출연하면서부터. 이후 30여 년 동안 늘 신중한 작품 선택과 다양한 연기 변신을 추구하며 스크린의 여왕으로 군림했다.

특히 87년 베니스영화제에서 임권택 감독의 영화 ‘씨받이’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이후에는 항상 ‘월드스타’란 수식어가 붙어 다녔다. 89년 모스크바영화제에서 ‘아제아제 바라아제’로 다시 한 번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뒤 명실상부한 세계적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아역 출신 배우들이 성인연기자로 발돋움하려 할 때 그 발목을 옭아매는 ‘아역 스타’의 꼬리표도 그에겐 장애가 되지 않았다.

“저는 아역 출신이라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됐어요. 아역의 이미지를 벗는 것은 힘들었지만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현장에 익숙해질 수 있었던 점이 좋은 거 같아요. 연기의 과정이나 기술적인 것들을 일일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쉽게 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으니까요.”

또한 아역 출신이라 힘든 게 아니라 배우 자체로 성공한다는 것이 어려운 것 같다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그래서 새로 시작하는 배우들이 있으면 하루라도 빨리 시작하라고 얘기해준다. 작품 선택이 까다롭기로 정평이 난 그의 선정 기준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그의 답은 ‘좋은 작품’이라는 한 마디로 끝난다. 무엇보다 제일 먼저 그를 감동시킬 수 있고,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작품이 그가 생각하는 좋은 작품이다.

캐릭터는 따지지 않는다. 극 중의 인물이 악역이든 천사표이든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작품 전체의 완성도에 캐릭터가 얼마나 녹아있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그만의 독특한 연기 철학 하나. 지난 작품을 일부러 기억하지 않는다.

연기자로서 출연한 작품이 소중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 하지만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옛날 작품을 생각하다 보면 고정화된 자기 스타일에 빠져 들 수 있겠다 싶었죠. 배우는 늘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해야 하는 거잖아요.”


배우가 아닌 다른 모습의 나는 거의 없어

삶의 전부가 연기였기에 배우가 아닌 다른 모습을 자신에게서 그릴 수 없다는 그는 굳이 다른 인생을 상상해보라는 질문에 “성격이 특별한 데가 없어 연기자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아마 시집 가 있었을 것”이라며 환하게 웃는다. 하지만 일 때문에 결혼을 일부러 미루는 것은 아니란다. 틀 안에 규정 지은 이상형도 없다. 그저 언젠가 좋은 인연을 만나겠지 하는 마음이다.

얼마 전 그는 이채로운 행보로 팬들을 즐겁게 했다. 컴필레이션 앨범 ‘연가2’의 재킷 모델과 뮤직비디오 주인공으로 나선 것. 산사를 배경으로 남녀의 순수한 사랑을 그린 뮤직 비디오에서 그는 또 한 번 소름 돋는 연기력을 과시했다.

노래를 못 부르기 때문에 노래 잘 부르는 사람들이 좋다며 “앨범작업을 한 번 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수록곡 60곡 중 절반은 그가 직접 골랐다. 김건모의 ‘미안해요’, 성시경의 ‘허락되지 않은 사랑’, 이기찬의 ‘또 한번 사랑의 가고’ 등 최신곡이 그의 요청에 따라 수록됐다.

탄탄한 앨범 구성과 희소 가치가 높은 그의 출연 때문인지 ‘연가2’는 현재 하루 주문량만 5,000세트. 불황의 음반 시장에서 대박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월드스타의 명성에 걸맞게 국가의 중대사인 월드컵의 문화홍보대사로도 참여한다. 그는 축구를 매우 좋아해 평소 굵직한 경기는 빼놓지 않고 본다. “국가가 치러내야 하는 큰 잔치에 작은 도움이라도 될 수 있다는 게 기쁠 따름”이라며 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했다.


여인 천하 끝나면 다시 영화계로

7월 여인천하가 종영되면 그는 잠시 휴식기간을 가진 뒤 영화로 새롭게 팬들을 찾아갈 계획이다. 정난정의 이미지가 워낙 강한 탓에 다음 작품에선 대조적인 분위기를 보여줄 작정이다. 정상의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폭과 깊이를 늘려가는 그는 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연기자다.

“매일 힘들어요. 연기자로서 산다는 것은. 그래도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삶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늘 생각하죠. 특히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가슴 벅찬 희열을 주는 일임이 분명해요.”

배현정 주간한국부기자

입력시간 2002/05/17 11:31


배현정 주간한국부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