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미국의 고성장은 속빈강정

수출이 회복되지 않고서는 우리경제의 회복세가 지속되기 어렵다. 4월 수출이 작년 동월대비 14개월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고 하지만 아직 금액으로 따져 작년 1, 2월 수준에도 못 미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회복조짐을 보이는 수출의 증가세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노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우리 주요 수출대상국의 경기회복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들 중 제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게 미국이라 하겠다. 미국은 오래전부터 우리에게 가장 큰 수출시장이었으며, 90년대 이후 비중이 다소 축소되기는 하였으나 외환위기 이후 다시 우리의 제일 중요한 시장으로 부상했기 때문에 미국경제의 향방이 우리 수출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고 하겠다.

그런 미국의 올 1/4분기 국내총생산 (GDP) 수치가 발표되었는데 작년 4/4분기에 비해 연율로 5.8% 성장한 것으로 나왔다. 이런 증가세는 지난 2년 동안 가장 빠른 것인데 미국보다 평균성장률이 훨씬 높은 우리의 그것과 비교해도 상당히 양호한 실적이다. 일견 이런 높은 성장세는 미국경기의 본격회복을 알리는 좋은 소식으로 무척 환영받을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좋은 소식이 있으면 바로 주가 상승을 통하여 시장의 평가를 보여주는 미국의 주식시장은 이 수치가 발표된 이후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다우지수는 발표이후 지속적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여 10,000선을 겨우 유지하고있다. 어찌된 일인가?

의문점에 대한 답은 성장의 내용에서 찾을 수 있다. 1/4분기의 높은 성장세가 소비나 투자의 왕성한 증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재고조정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성장의 절반이상이 재고조정에 의한 것으로 분석되면서 1/4분기의 높은 성장률이 경기의 본격적 회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것으로 해석되었기 때문이다.

재고의 변화는 한번씩 GDP 성장률 산정에 착시적인 영향을 미칠때가 있다. 기본적으로 재고가 증가하면 GDP에 正 (+)의 기여를 하고 재고가 감소하면 負 (-)의 기여를 한다. 그런데 재고의 증가뿐만 아니라 재고 감소세의 둔화도 GDP 성장에 기여한다.

올 1/4분기의 경우 미국의 재고가 두 분기 지속 감소하였는데 이번 분기 감소폭이 작년 4/4분기 감소폭 보다 두드러지게 작았기 때문에 1/4분기 GDP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구체적인 수치를 보자면 5.8%의 성장중 3.1%가 재고의 변화에 기인했다. 이런 사정 때문에 높은 숫자의 성장률 발표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주식시장이 지속적으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많은 전문가들이 미국의 연간 성장률을 2-3%로 예상하고 있다는 점은 1/4분기의 높은 성장세가 지속되기 어렵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 동안 경기를 지탱해준 소비는 추가로 증가할 여력이 없는 반면 새로운 경기활황의 원동력이 될 투자도 아직 부진하다.

우리 대미수출의 증가가 있기 위해서는 미국의 투자증가가 선행되어야 할텐데 아직 조짐이 없고 언제 얼마나 강하게 나타날 것인가가 확실치 않다. 미 연준의 그린스펀 의장도 4월 중순에 있었던 의회증언에서 미국경기회복의 시점과 강도에 대한 불투명성을 강조하였다.

미국의 경험을 보면 발표된 경제지표의 내용을 살피는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연초에 1월 산업생산이 전년동월에 비해 평균 증가폭의 두배 정도인 10% 이상 증가했다고 발표되자 여러 경제전문가들이 앞다투어 경기과열을 경고하였고 언론도 이를 바로 전달하였다.

하지만 2, 3월의 산업생산 수치가 훨씬 낮게 발표됨에 따라 1월 생산이 그 전달의 자동차 파업의 여파, 설날 연휴 시점차이에 따른 조업일수 차이 등 특수한 요인에 의한 것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의 정책담당자와 언론도 각종 경제지표가 주는 시사점을 도출하기 앞서 그 배경과 내용을 좀 더 신중히 검토하여야할 것이다.

허찬국 한국경제연구원 거시경제연구센터 소장

입력시간 2002/05/17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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