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6·13 지방선거 D-30] "해준게 뭐 있어" 좌절한 호남민심

현직 단체장·민주단 인사 후보경선 줄 낙마, 대책없어 속앓이

호남에 일고 있는 변화의 바람은 어느 정도 세기로 어디까지 불 것인가.

6ㆍ13 지방선거를 한 달 가량 앞둔 현재 민주당 텃밭인 광주ㆍ전남지역의 최대 관심사는

바로 이 같은 새로운 민심기류에 집중되고 있다. 이 지역 민주당 광역ㆍ기초단체장 후보경선에서 현역 단체장들의 잇따른 패배로 분위기가 술렁거리면서 여권 내부에서는 서둘러 민심잡기에 나섰지만 흔들리는 민심은 쉽게 잡힐 것 같지는 않다.

호남 민심이 꿈틀대기 시작한 것은 민주당 대선후보 광주 경선부터였다. 노무현 후보가 당초 예상을 뒤엎고 호남 출신인 한화갑 후보를 누른 것이 계기가 됐다. 광주를 진원지로 한 ‘노풍(盧風)’은 곧바로 목포시장과 광주시장, 전남지사 후보경선 등으로 이어졌다.


김홍일의원이 민 후보 고배 이변

5월 1일 지구당 위원장인 김홍일 의원이 ‘영입’한 행정자치부 차관 출신의 김흥래 후보가 낙선한데 이어 4일에는 현직인 고재유 광주시장과 허경만 전남지사마저 고배를 마셨다.

특히 전남의 경우 22개 시ㆍ군의 기초단체장 후보 경선에서 ‘본선’에 올라간 현직 단체장은 절반에도 못 미치는 10명에 불과하다.

이처럼 현역 단체장들의 ‘예선탈락’이 계속되자 민주당 지역 당직자들은 적잖게 당황하는 분위기다. 현 정권의 핵심 기반인 광주ㆍ전남에서조차 민주당의 정치적 영향력이 전혀 먹혀 들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이제 민주당 간판을 달고 선거에 나와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 왔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무엇이 호남 민심을 이렇게 바꾸어 놓았을까.

전남대 지병문(정치학) 교수는 “민주당을 바라보는 광주ㆍ전남지역 주민들의 변화에 대한 기대가 커졌는데도 정작 정치권 인사들이 그 변화욕구와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과거 행태를 그대로 답습한 것이 주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정권교체 이후 호남지역에 대한 ‘역차별’ 정서가 뿌리깊게 누적돼오면서 지역민들 사이에 개혁욕구는 높아졌지만 제몫찾기에만 급급한 민주당의 행태는 주민들에게 실망을 넘어 좌절감만 불러 일으켰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DJ의 세 아들까지 연루된 각종 권력형 비리가 끊이지 않고 터져 나오는 것도 이 같은 ‘민심이반’을 부채질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민주당 광주지역 지구당의 한 관계자는 “당내에서는 몇 년 전부터 ‘호남지역이 아무리 텃밭이라지만 이 지역의 민심을 간단히 보아 넘겨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줄기차게 중앙당에 전달했다”며 “아무런 조치가 없어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다”고 말했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주민들의 변화욕구와 기대가 높아졌지만 당 관계자들을 비롯한 정치인들은 이를 철저히 배신한 셈이다.

지구당 관계자들의 주된 기조는 민심이반을 인정하는 분위기이다. 이들의 더 큰 고민거리는 등을 돌린 민심을 돌려세울 뚜렷한 수습책이 없는데다 이 같은 현상이 지방선거에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대목이다.

게다가 DJ의 탈당으로 지구당 관계자들의 속은 시커멓게 타 들어가고 있다. 그 동안 ‘DJ’라는 그늘 아래에서 현실에 안주하며 별다른 노력 없이 조직과 지구당을 운영하는 해온 일부 후보들의 경우 자생력은 물론 경쟁력도 갖추지 못해 고전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민심이반, 민주 후보 입지 좁아져

광주ㆍ전남 자치연대 김상집(46) 대표는 “과거에는 DJ를 보고 함량 미달인 후보도 찍어주는 맹목적 지지경향이 강했던 게 사실이지만 이제는 통하지 않을 것”이라며 “민주당에서 DJ라는 큰 나무가 없어진 이상 유권자들의 선택의 폭은 넓어지게 되고 그만큼 민주당 후보들의 입지는 좁아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선거가 민주당 대 무소속 대결로 압축되고, 예년보다 더욱 거센 무소속 돌풍이 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 무소속 출마 입지자들은 “유권자들의 올바른 평가를 받을 기회가 왔다”며 자신감을 내보이고 있다. 이 와중에 광주지역 시민단체들마저 반(反) 자치적 지역정치 타파를 내걸고 있으며 ‘시민후보’까지 내기로 해 민심이반이 시민운동으로까지 번진 상태다.

어쨌든 정치권 스스로 변하기를 기대하기 힘들어진 이상 호남에서의 ‘바꿔 열풍’은 쉽게 잠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광주=안경호 사회부 기자

입력시간 2002/05/17 13:55


광주=안경호 사회부 kh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