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대혈투] 자갈치 표심을 잡아라

여야 부산시장 선거에 당력 총집결, 민심은 유동적

‘부산 자갈치 표심을 잡아라’

6ㆍ13 지자체 선거를 한 달 앞두고 항도 부산의 민심을 잡기 위한 여야의 기싸움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민주당은 6ㆍ13지방선거에서 부산시장 당선에 역량을 집중한다는 전략에 따라 영남권에 한해서만 별도 권역 선대위를 설치해 총력전을 펼치기로 내부 방침을 확정했다.

민주당은 이번 주 한화갑 대표가 위원장을 하고, 이강래 지방선거기획단장과 염동연 정무 특보 노무현 후보의 측근들이 부본부장을 맡는 지방선거 대책위를 발족, 부산시장 당선에 총력전을 전개하기로 했다.

지난 주 이회창 대선 후보와 최고위원 구성을 마친 한나라당도 선거 체제 구성 후 첫 행보로 부산 민심 다잡기에 나섰다. 당대표가 유력시되는 서청원 최고위원 1위 당선자는 “YS와 이회창 전총재의 가교 역할을 하겠다”며 상도동을 방문, YS 끌어 안기에 나섰다.

한나라당은 당내에서 YS와 가장 우호적 인사인 서 위원을 통해 민주당 노 후보와 상도동 간의 연대를 저지함으로써 부산 민심 수성을 한다는 계획이다.


인물이냐 정당이냐 민심은 딜레마

부산이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장으로 부상한 이유는 부산 시장 결과가 12월 대선의 승패를 미리 가늠해 볼 수 있는 바로미터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대구ㆍ경북 지역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광주ㆍ전남북이라는 부동의 텃밭을 보유한 민주당 노무현 후보로 압축된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부산 표심의 향배가 승패를 좌우할 최대 변수라는 데 이견이 없다. 따라서 ‘뜨거운 감자’ 부산을 누가 잡느냐가 승부의 관건이 된다.

정치권의 관심이 쏠리는 또 다른 이유는 부산 민심이 아직 ‘가변적’이라는 점이다. 그간 역대 대통령 선거는 지역주의의 틀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 대선에서 부산은 이런 지역주의에서 묘한 상황에 놓여 있다.

부산은 지역적으로 볼 때 영남을 근거로 하는 한나라당의 근거지다. 또한 영남 정치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YS를 필두로 한 부산 지역 의원들이 대부분 한나라 당 소속이라 당연히 한나라당의 견고한 텃밭이 되야 마땅하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꼭 그렇지 만은 않다. 전라도에 뿌리를 두고 있는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부산 출신인 노무현 후보가 나왔기 때문이다. ‘몸과 정신이 다른’ 딜레마가 부산 민심을 뒤흔들어 놓고 있는 것이다. 정당 성향으로 본다면 야당인 한나라당을 지지해야 하지만, 출신 인물로 본다면 민주당 노무현 후보를 밀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연유로 부산 민심은 방황하고 있다.

부산은 선거인 수로 볼 때 381만6,400명(2000년 4ㆍ13총선 기준)으로 서울(선거인 1,027만명)과 경기(896만명)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 전남(215만명)과 전북(200만명)을 합친 유권자 수와 거의 맞먹는다.

서울과 경기는 역대 대선에서 표 쏠림 현상이 별로 없는 지역이다. 하지만 부산은 영남에서도 지역 정서가 강한 곳이다. 부산에는 아직 ‘우리가 남이가’ 하는 정서가 남아 있어 분위기만 뜨면 몰표가 쏟아질 수 있다. 정치인들이 이런 지역 성향을 모를 리 없다.

부산외대의 송형근 교수는 “부산 시민들은 박정희 이후 영남 정권이 계속 집권해왔지만 ‘영남의 중심은 부산이 아닌 대구’라는 자조적인 말이 나올 만큼 부산이 정치적으로 소외돼 왔다고 생각한다”며 “YS 집권 시 IMF 외환위기로 소비 중심의 부산 경제가 무너지면서 그런 피해 의식이 더욱 커져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따라서 현재 부산 민심은 정치권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면서도 가변적인 특징을 띄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갈피를 못 잡고 있는 부산 민심 공략에 먼저 나선 사람은 민주당 노무현 후보다. 노 후보는 민주당 대선 경선의 주도권을 잡을 무렵부터 부산 민심 공략에 팔을 걷어 붙였다. 부산을 잡기 위해서는 YS와의 연대가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 판단한 노 후보는 자신을 중심으로 호남의 DJ와 부산을 대표하는 YS를 하나로 결집시키는 ‘신민주대연합’이라는 그랜드 플랜을 추진했다.

노 후보가 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이후 가진 첫 공식행사로 DJ와 YS를 잇달아 방문한 것도 이런 연유다. 노 후보가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개혁성’을 후퇴하는 출혈을 감수 하면서까지 구세력인 YS와 연합하려 한 것은 그 만큼 부산에 사활을 걸고 있다는 반증이다.

그러나 YS가 자신의 분신인 박종웅 한나라당 의원을 부산시장으로 출마 시키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노 후보의 신민주대연합 구상은 일단 지방선거 이후로 미뤄지게 됐다.


노무현 ‘배수진’에 이회창 ‘절대수성’ 맞서

노 후보는 민주당 경선 도중 “6월 지방 선거에서 부산, 경남, 울산 중 한 곳에서도 승리하지 못할 경우 대선 후보 재신임을 받겠다”고 배수의 진을 치고 있다. 노 후보는 최근 “울산과 경남도지사 선거에서 이상 기류가 흐르고 있어 부산시장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부산 시장 선거에 집착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자신이 민주당의 대선 후보가 된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부산 출신이라는 점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노 후보측 유종필 공보특보는 “노 후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특히 지역 기반이 없는 광주에서 1등을 하면서 대선 주자가 된 데는 영남 표심을 끌어 모아 재집권을 이뤄내라는 무언의 암시가 담겨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기간이 다급해 이번 지방선거는 YS와의 연대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고 부산시장으로 한이헌 후보를 내세워 총력전을 펼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에게 있어서도 부산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전략 요충지다. 더구나 부산은 노무현 후보의 고향이라 자칫 부산시장 선거에서 패할 경우 최근 다소 소강 국면으로 접어든 노풍이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높아 부산 수성에 거는 마음가짐은 절박하다.

민주당 경선이 한창이던 4월 말까지 노풍에 밀려 소극적 대응에 그치던 이 후보는 최근 불거져 나온 최규선 게이트를 빌미로 일대 반격에 돌입했다.

이 후보는 5월 8일 부산과 대구에서 중앙당 고위층과 소속 의원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지방선거 필승 결의 대회 및 권력 비리를 규탄하는 대규모 장외 집회를 개최했다. 노무현 돌풍이 분 이후 영남지역에서 처음 가진 이날 집회에서 이 후보는 현 정권의 비도덕성을 강도 높게 비난하며 ‘노무현=DJ 적자’라는 등식을 부각 시켰다.

이 후보는 “당이 어려울 때 항상 결정적인 힘을 모아준 이 지역 주민들에게 애정과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다”며 “지방선거에서 확실하게 정권 교체의 교두보를 마련해 12월에 반드시 한나라당 정부를 세우겠다”고 역설했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DJ 세 아들의 비리가 터져 나오면서 잘 나가던 노풍이 곤두박질 치고 있다. 부산 민심은 결과적으로 한나라당 쪽으로 기울 수 밖에 없다”고 잘라 말했다.


노풍 주춤, 昌 지지도 꾸준한 상승세

현재 부산을 비롯한 영남지역에서는 노 후보의 상승세가 꺾인 반면 이 후보는 꾸준히 기존 지지도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일보가 미디어리서치와 함께 실시한 부산ㆍ울산ㆍ경남 지역 여론 조사에서 3월 20일 오차 범위(±3.1)를 약간 상회하는 4.2%포인트(이회창=46.1%, 노무현=41.9%)까지 따라붙었던 노 후보의 지지도가 5월 6일 조사에서는 14.5%포인트(이=46.3%, 노=31.8%)차로 벌어졌다. 대통령 세 아들 비리 영향으로 타오르던 노풍이 한 풀 꺾인 것이다.

YS의 뜻에 따라 부산 시장 후보의 꿈을 접은 박종웅 의원은 “부산은 한나라당의 텃밭이라 지역구 의원들을 중심으로 세부 조직이 잘 갖춰진 반면, 민주당은 이곳 출신인 노 후보를 내세워 바람을 일으키고 있어 쉽사리 승부를 예측할 수 없다”며 “노 후보의 개혁 바람이 정치에 무관심했던 부산 시민들을 얼마나 흡수하느냐가 승부의 관건”이라고 분석했다.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2/05/17 14:27


송영웅 주간한국부 heroso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