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대선전략, 낮은 자세로…지방선거에 건다

PK·수도권 압승으로 지지도 대반전 지지도 대반전, 연말까지 굳히기

“이젠 이길 수 있을 것 같다.”

5월 10일 한나라당 전당대회장인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이회창 후보의 한 특보는 “박근혜 의원이 탈당한 뒤 지난 두 달여 동안은 정말 생각하기도 싫다”면서도 모처럼 활짝 웃었다. 지지율에선 여전히 민주당 노무현 후보에 뒤지지만 가능성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는 안도감이다.

하긴 노풍이 위세를 떨치던 4월까지도 이 후보는 노 후보에 20% 이상 뒤졌지만 이 달 들어 격차가 한자리 수로 좁혀졌다. 어느 정도 자신감을 찾은 이 후보측은 지방선거만 잘 치르면 내달 중에 역전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감추지 않고 있다.


DJ정권 실정 부각 등 권력형 비리 이슈화

이 후보는 대선행보와 관련, 당장은 지방선거에 모든 것을 건다는 생각이다. 선거 결과에 따라 대선전망이 180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 후보측은 “노 후보 고향인 PK지역에서 우리가 전승하고 서울 인천 경기 등 수도권에서 2곳 이상 이기는 압승을 거둘 경우 정국주도권을 완전히 되찾을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이회창 대세론도 살아나고 대선 승리 가능성도 한결 커진다”고 분석했다.

한나라당이 수도권과 현실적으로 노풍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부산시장 선거에 당력을 집중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이와 달리 수도권에서 2곳 이상 지고 PK의 부산, 울산, 경남 등 3곳 중 한 곳이라도 패배하게 되면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진다. 당내에서조차 이 후보의 본선경쟁력에 대한 의문제기가 다시 불거지고 민주당의 네거티브 공세도 탄력을 받게 된다. 12월 대선당일까지 수세국면이 이어져 힘든 싸움이 될 수 밖에 없다.

한나라당은 때마침 김대중 대통령 세 아들의 비리의혹과 영부인의 연루혐의 등 절대적 호재가 터진 만큼 지방선거에서 최대한 이슈화한다는 방침이다. 선거 캐치프레이즈도 ‘부패정권 연장이냐 심판이냐’로 단순화했다.

정권부패에 염증을 내는 유권자들을 지지층으로 유도하는 전략이다. 한나라당이 장외투쟁이 갖는 부담을 감수하면서 대선경선 와중에도 전국을 순회하는 장외규탄집회를 여는 등 전면공세에 나선 것도 권력형 비리를 최대한 이슈화하기 위해서 였다.

한나라당은 이와 관련 김 대통령의 세 아들 중 홍업, 홍걸씨 등 둘의 구속과 함께 김 대통령의 직접 사과, TV청문회 등을 전술적 목표로 세웠다. 지방선거전에 이 같은 장면을 만들어내 정권의 부패이미지를 최대한 키우자는 의도다.

한나라당이 특히 김 대통령과 관련, 직접 조사는 물론 탄핵까지 거론하며 초강경한 데는 정치적 노림수도 없지 않다. 김 대통령에 대한 노 후보의 선택을 강압해 여권분열을 유도하고 한편으론 ‘노무현= DJ정권의 계승자’라는 인식도 굳히겠다는 심사다.

‘부패정권 심판’을 앞세운 선거전략은 노풍을 제압하는 데도 노 후보를 직접 공격하는 것보다 효과적이라는 게 이 후보측 판단이다. 한풀 꺾이긴 했지만 수도권과 젊은 층을 중심으로 노풍이 여전한 현실에서 이 후보가 직접 노 후보를 직접 공격하는 식의 후보간 대결전략은 여전히 부담스럽다. 이 후보측은 “과격성, 국정능력 등에 의문을 제기한 외부의 공격에는 끄떡 없던 노풍이 권력형비리 파문과 노 후보의 김영삼 전 대통령 방문 등 내부 허점에는 맥없이 무너지지 않느냐” 며 “노 후보가 제 풀에 무너지도록 만드는 게 최상책”이라고 말했다.

노 후보의 약점은 지방선거에서 이기는 등 전열을 정비한 뒤에 공격해도 충분하다는 구상이다.


귀족적 이미지 벗고 서민적 색채 강화

대여공세가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밖으로의 작전이라면 이 후보의 이른바 ‘낮은 곳으로’ 전략은 보완 전략이다. 이 후보 지지도 급락의 가장 큰 원인인 빌라파문 등 귀족적 이미지를 벗고 서민적 색채를 강화, 국민들의 거부감을 줄이는 게 시급하다.

처음에는 이 같은 변화시도에 어색해 하던 이 후보도 한 달여 경선을 거치며 많이 달라졌다. 전당대회장에서 대선후보 지명수락 연설을 하며 보여준 이 후보의 제스처는 단적인 예다. 그는 이날 연설끝머리에 “국민을 하늘 같이 떠받들고 국민을 위해 뛰라는 명령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간직하기 위해 국민을 대표한 여러분께 큰 절을 드리겠다”며 단상에 엎드려 넙죽 큰절을 했다.

대의원들은 늘 차갑게만 느껴지던 이 후보의 느닷없는 큰 절에 놀라 한동안 어리둥절하다가 이내 ‘이회창’을 연호하며 환호했다. 측근들이 건의한 장면이긴 하지만 예전 같으면 건의조차 하기 힘들었던 장면이다.

경선 내내 고속도로 휴게소, 공항 구내식당 등에서 끼니를 때우고 허름한 여관을 일부러 골라 잠자는 등 ‘낮은 곳으로’를 실천하기 위해 애써 온 이 후보의 변화다.

대선경선이 시작되기 전만 해도 이 후보는 급변한 환경에 어쩔 줄 몰라 허둥지둥했다. 대선경선 출마선언문만 봐도 노풍을 잡아야 한다는 마음만 앞선 흔적이 역력했다.

이 후보는 당시 “급진 세력이 좌파적인 정권을 연장하려 하고 있다”며 노 후보를 급진세력으로, DJ정권을 좌파적인 정권으로 규정하며 색깔론 공세를 폈다. 이회창 대세론이 불과 20여일 만에 무너지는 바람에 당혹감에 빠졌고 노 후보를 향한 준비 안된 색깔론 공세는 역풍만 자초했다.

이 후보는 국민 다수인 보수층이라도 붙잡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는지 모르나 그 역시 편협한 보수주의자, 수구주의자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YSㆍJP와의 관계설정은 고민거리

이 후보는 경선을 거치며 대신 ‘깨끗한 정부’ ‘자유민주주의와 안정적 경제발전의 구현’ 등 구체적인 이미지를 들고나왔다. ‘합리적 보수주의자’라면서도 수식어에 더 무게를 두는 작전이다.

이 후보의 이종구 특보는 “지방선거 뒤에는 이 후보의 깨끗한 이미지와 함께 국정수행능력을 강조, 노 후보의 급진적이고 충동적인 면과 차별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선전략과 관련, 이 후보측이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은 민주당의 네거티브 전략이다. 이 후보가 97년에 이어 올 초에도 지지도가 급락한 이면에는 두 아들의 병역면제 문제, 빌라파문 등 개인적 문제가 컸던 만큼 민주당이 이 후보에 대한 의혹 부풀리기에 열을 올릴 수 있다는 우려다. 이 후보측은 일단 이 후보의 서민 파고들기와 함께 사실대응으로 맞선다는 생각이다.

이 후보의 대선행보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 자민련 김종필 총재 등과의 관계설정도 중요한 대목이다. 이 후보측은 일단 “아군은 많을수록 적은 적을수록 좋다”는 평범한 진리에 따라 최대한 이들의 협조를 끌어낼 계획이다.

그러나 이들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1997년의 DJP연대와 같은 정치적 제휴는 현단계로서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 특히 JP와의 관계에 대해선 더 소극적이다.

그러나 이들과의 관계설정은 이 후보의 지지도 변화 등 상황에 따라 매우 유동적이다. 이 후보는 자신이 유리하다고 판단하면 두 사람과 거리를 두겠지만 여전히 노 후보를 추격하는 입장이라면 어느쪽이 유리한 지 끊임없이 고민할 것이다.

이동국 정치부기자

입력시간 2002/05/17 15:39


이동국 정치부 east@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