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업·홍업 사법처리만 남았다

검찰 월드컵 전 마무리계획, '동시구속'부담 속 자신감 보이기도

김대중 대통령의 두 아들인 홍업ㆍ홍걸씨에 대한 검찰 소환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검찰 주변에선 빠르면 5월17일이나 주말인 18, 19일에 홍걸씨에 대한 소환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청와대와 검찰간에 흐르던 냉기류도 더욱 온도를 떨어졌다. 외형상 청와대는 “검찰의 수사에 관여하지 않겠다”며 말을 아끼고 있고, 검찰도 “두 사람의 처리문제를 우리에게 맡겨달라”는 원칙론만 강조하며 두 사람의 소환 시기조차 언급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 그러나 청와대와 검찰 사이에는 한기(寒氣)가 느껴질 정도로 차가운 공기가 차 있다.

검찰은 한 달여간 홍업ㆍ홍걸씨를 타깃으로 삼아 전력투구를 해 왔고, 대통령의 아들들을 옭아 맬 비장의 카드들을 준비해 둔 상태이다. 그러나 검찰은 청와대에 별다른 신호를 주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오히려 청와대쪽에선 “검찰이 수사 정보를 흘리며 언론을 통해 청와대를 압박하고 있다”는 불평들이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런 한랭 전선을 사이에 두고 정치권과 검찰 주변에선 “검찰과 청와대가 완전 결별을 한 것은 절대 아니며 단지 여론을 의식해 ‘전략적 절연’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홍걸 형사처벌, 홍업은 일단 소환

검찰은 홍업ㆍ홍걸씨 소환을 앞두고 수사에 급피치를 올리고 있다. 대검 중수부와 서울지검 특수2부 사무실은 심야에도 며칠째 불이 꺼지지 않고 있다. 검찰의 스케줄은 월드컵이 열리는 5월 30일 이전에 수사를 마무리 하는 것이다.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월드컵 기간 중에 대통령의 아들들을 형사처벌해 국가 망신을 자초하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이런 탓에 홍업ㆍ홍걸씨의 사법처리는 17일~26일 사이에 집중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수사의 진척도는 홍걸씨쪽이 훨씬 빠르다. 검찰은 홍걸씨가 미래도시환경 대표 최규선씨에게 2000년 3월부터 2001년 말까지 28억8,000만원을 받은 사실을 확인한 상태이다. 특히 이 돈 중 14억2,000만원은 S건설과 코스닥등록업체인 D사측으로부터 최씨와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인 김희완씨가 받은 돈을 건네 받은 것이어서 뇌물성이 짙은 ‘검은 자금’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또 최규선씨가 홍걸씨에게 자신의 주머니에서 꺼내 준 나머지 돈 들도 아직 출처가 밝혀지지 않아 뇌물성 자금 액수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서울지검의 한 검사는 “홍걸씨의 형사처벌은 이미 기정사실이 된 상태로 쳐 놓은 그물을 걷어 올리기만 하면 되는 단계이다. 잡음없이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일만 남았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홍업씨 수사를 맡고 있는 대검 중수부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대검은 홍업씨가 친구인 서울음악방송 회장 김성환씨에게 2001년 1월부터 올해 1월까지 모두 18억원을 건넨 사실을 밝혀냈다. 문제는 홍업씨의 돈 18억원의 출처와 김성환씨가 로비자금조로 업체들에게서 받은 돈이 흘러들어갔는지 여부다.

검찰은 핵심적인 고리인 이 두 가지 질문에 확실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김성환씨가 입을 다물고 있는데다가 홍업씨의 또 다른 측근인 유진걸씨(평창정보통신 유준걸 회장의 동생)마저 검찰 조사도중 심장마비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 치료 중이어서 갈길 바쁜 검찰을 속타게 만들고 있다.

대검 고위 관계자는 ‘지금까지 수사결과만으로 홍업씨를 소환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통령의 아들인데 단순히 참고인 조사한다고 소환하는 것은 힘들다. 소환 자체가 밖에서는 범죄자로 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월드컵 일정을 고려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도 “월드컵이 국가 중대사라고 하지만 안 되는 일을 급히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검 중수부팀의 표정은 그리 어둡지 않다. 아직 확실한 수맥(水脈)을 잡지 못했지만 수맥 찾기는 시간 문제일 뿐이라는 분위기이다. 이 관계자는 또 “수사라는 것이 예측을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홍업씨는 결국 부르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방패 준비하는 청와대

청와대와 여권은 사실상 검찰 수사에 대해 사실상 두 손을 든 상태다. 검찰과의 핫라인도 예전처럼 여의치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여권 인사들과 통했던 검찰의 호남 출신 간부들이 최근 각종 게이트와 연루돼 거의 옷을 벗거나 한직으로 밀려나있기 때문이다.

청와대의 한 인사는 “모든 것은 전적으로 검찰의 의사에 달렸다. 지금 우리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자칫 오해만 사고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측이 수사 브리핑 등을 통해 홍업ㆍ홍걸씨의 관련 혐의를 ‘중계방송’ 하는 것에 대해선 상당한 거부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 민주당에선 오히려 검찰이 속전속결로 사건을 처리해 6월 지방선거전까지 확실한 매듭을 지어 정치적 부담을 덜어주길 바라는 입장. 홍업ㆍ홍걸씨가 정치적으로 버틸 디딤목은 사실상 없어진 상태이다.

청와대에선 홍업ㆍ홍걸씨에 대한 ‘정치적 처리’ 보다는 ‘법률적 대응’쪽에 무게를 두고 있는 듯하다. 미국 LA에 머물고 있는 홍걸씨는 검찰 출신인 조현석 변호사(사시 23회)를 변호인으로 선임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진다. 조 변호사는 광주일고 –한양대 법대를 나온 호남출신 변호사이나 검사장급 이상의 고위직을 지내지 않아 ‘거물급’ 변호사는 아니다.

청와대 관계자는 홍걸씨의 검찰 출두와 관련, “검찰이 소환 일자를 결정하면 그 일자에 맞춰 하루전이나 당일 귀국할 것”이라며 “언론에 사전에 노출돼 해명을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업씨측도 본격적인 검찰수사에 대비하는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4월 1일 검찰수사가 시작되면서 지인들을 통해 법률전문가를 물색하던 홍업씨는 지난 주부터 대전지검 차장검사 출신의 유제인 변호사와 수임문제를 협의중이다. 유 변호사는 전북 고창출신으로 대검 형사1과장과 서울지검 서부지청 특수1부장, 서울지검 형사 2, 5과장을 거쳤으며 형사소송법의 대가로 불린다.

특히 유 변호사는 김성환씨의 변호인인 신희구 변호사와 사시13회 동기로 서울 서초동에서 합동사무실을 열고있어 홍업씨측이 공동대응을 모색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유 변호사는 10일 “수사 초기서부터 홍업씨가 측근을 통해 검찰조사에 대비한 절차적 문제를 문의해왔다”며 “최종 수임여부를 곧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 변호사는 “홍걸씨와는 달리 홍업씨의 경우 구체적인 혐의사실이 드러나지 않은 상황이라 아직 변론 방향에 대해서는 뭐라 말할 형편이 안된다”고 덧붙였다.


시험대에 오른 ‘이명재호 검찰’

검찰이 홍업 홍걸씨 수사를 계기로 청와대와는 결별을 선언한 것일까. 대답은 아직은 모른다는 것이다. 검찰 주변에선 검찰과 청와대의 막후 교섭설 등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흘러나온다. 물론 아직 추론의 단계일 뿐이지만 ‘두 형제를 모두 구속하는 것은 너무 과하지 않느냐’는 온정론을 기조로 ‘홍걸씨 구속기소, 홍업씨 불구속기소’ 카드로 청와대와 검찰이 타협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실제 대검의 홍업씨 수사가 난항을 겪으면서 이 같은 가설이 힘을 받고 있다.

그러나 법조계에선 두 형제의 차별적인 사법처리 가능성을 낮게 보는 시각도 많다. 동일한 사건에 부자(父子)가 연루됐을 경우 한 사람만 중하게 처벌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지만 이번 사건은 갈래가 전혀 다른 사건일 뿐만 아니라 수사주체도 다르다.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면 당연히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겠지만 죄가 인정되는데도 대통령 아들이라는 이유로 불구속 기소한다면 여론의 거센 반발을 받을 소지가 크다는 것이다.

검찰 주변에선 최근 일부 핵심 의혹들에 대한 검찰의 어정쩡한 행보에 대해서도 미심쩍은 눈으로 보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청와대 대책회의다. 최규선씨는 자신의 육성 녹음테이프를 통해 자신을 밀항시키기 위해 청와대 비서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대책회의를 가졌다고 폭로했다. 그러나 검찰은 이에 대해 별다른 수사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이와 관련 “최씨가 이미 구속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청와대 대책회의를 폭로했지만 당시 청와대 비서관을 소환 조사했다가 해명성 수사라는 비판만 받았다”면서 “별다른 단서 없이 최씨의 일방적 폭로만으로 또다시 수사에 나서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처럼 검찰이 소극적 입장을 보이면서 검찰 주변에선 “검찰이 확전(擴戰)을 피하고 두 아들 신병처리 만으로 사건을 매듭지으려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또 최규선씨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측에게 2억5,000만원을 전해 주었다는 민주당 설훈의원의 폭로 수사와 관련, 검찰이 갑작스럽게 “홍걸씨의 동서 황인돈와 타이거 풀스 사장 송재빈씨가 최씨의 측근인 김희완 전 서울시정무부시장 등에게 유사한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고 진술했다”고 발표한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제3자의 전언 진술 내용을 공개한 검찰의 행태는 상당히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법조계 주변에선 “이명재 검찰 총장이 이끄는 검찰이 홍업ㆍ홍걸씨 수사를 헤쳐 나가고 있지만 검찰 스스로도 시험대에 올라 있는 사실을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이태희 사회부 기자

입력시간 2002/05/17 15:44


이태희 사회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