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잔악한 인간성이 만들어낸 혼란

브루저, 세션나인

불특정 다수에 대한 이유 없는 살인은 이제 남의 나라 총격전이나 인질극이 아닌 우리의 현실이 되었다. 부녀자 연쇄 살인극 뉴스 등을 접하면 피를 뿌리는 공포와 스릴러물 소개가 망설여진다.

누구에게나 악마성이 잠복해 있는 것일까? 기회를 노리고 있다가 작은 틈만 보이면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것일까. 이럴 때 인간의 이성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있는 것일까. 어두운 인간성을 조명한 공포 영화 두 편을 만나본다.

브래드 앤더슨이 각본, 연출, 편집까지 도맡아한 2001년 작 <세션 나인 Session 9>(18세, 아이비전)은 1885년에 건립되어 1984년에 폐쇄된 어마어마한 규모의 정신과 병원을 무대로 하고 있다. 매사추세츠주 덴버의 숲 속에 위치한 거대한 성과 같은 주립 정신 병원 건물을 보고 감독이 영화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영화에서도 언급되고 있듯이 이 병원에서는 환자를 가죽 끈에 묶어 독방에 감금하거나 종교 의례를 핑계로 차거운 물 속에 오랜 시간 방치했으며 인슐린을 강제로 주입한 코마 상태에서 최면술을 이용한 치료를 했다고 한다. 이같은 사실이 외부에 알려져 폐쇄되기에 이르렀고 감독은 억울하게 죽은 혼령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고 영화의 각본을 썼다.

폐쇄된지 20여년이 지난 거대한 정신 병원을 보수하는 작업에 투입된 5명의 인부. 중년에 딸을 얻었지만 병치레로 돈이 궁한 사장 고든(피터 뮬란), 그의 오랜 동업자인 마약 중독자 필(데이비드 카루소), 필의 애인을 가로채 필과는 앙숙인 행크(조쉬 루카스), 법대를 다닌 유복한 집안의 마이크(스테판 게베든), 게으르고 어리숙하며 폐쇄 공포증까지 있는 고든의 조카 제프(브랜든 섹스틴 주니어)는 1주일 안에 수리를 끝내기로 하고 월요일부터 작업에 들어간다.

만만치 않은 사연을 지닌 이들이 흉흉한 소문으로 폐쇄된 정신과 병동에서 작업하는 5일 동안 겪게 되는 심리 분열로 인한 살인극과 마이크가 발견한 다중인격 환자 메리의 녹음 테이프를 듣는 것과 병행하여 긴장이 고조되지만 앞뒤를 분명히 해주는 설명은 기대할 수 없다.

100분 동안의 긴장 유지에 초점을 맞춘 듯 관객을 혼란으로 몰아가는데 주력하고 있다. 정신병자들 이야기에서 무슨 논리를 기대하는가 하는 ‘심뽀’ 같기도 하지만 주의력과 추리력을 최대한 가동시키게 한다는 점에서 미덕을 찾아야 할 듯. 그러나 스탠리 큐브릭이 이미 <샤이닝>에서 이룩한 업적이 있기에 아쉬움도 남는 B급 공포 영화다.

조지 A 로메로 감독은 '좀비 영화 3부작' <살아난 시체들의 밤> <이블 데드> <죽음의 날>로 유명한 독립 영화 감독이다. 미국의 가부장적 관습, 소비주의, 레이건 시대의 군비 경쟁을 빗댔다는 평가를 받은 이 세 작품 이후에도 <미치광이들> <크립쇼> <사투> 등의 수작을 내놓았다. 2000년 작인 <브루저 Bruiser>(18세, SKC)는 조직 사회의 부속품에 불과한 샐러리맨의 분노를 살인과 연결시킨 공포물이다.

브루저라는 잡지사 디자이너인 헨리(제이슨 플레밍)는 사장 마일즈(피터 스토메어)의 방자한 태도, 아내 제닌(니나 가비라스)의 사치를 묵묵히 견디고 있다. 사장과 아내의 부정한 관계를 눈치 채고 재산을 관리해주던 친구마저 돈을 빼돌리고 있음을 알게된 헨리. 이튿날 그의 얼굴엔 흰 마스크가 씌어지고, 얼굴을 감출 수 있게 된 헨리는 자신을 무시해온 사장, 아내, 하녀, 친구에게 복수의 칼을 들이댄다.

옥선희 비디오칼럼니스트

입력시간 2002/05/23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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