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 + 美] 밤과 낮의 교묘한 동거

오랜만에 외출을 하려다 하늘을 보고 ‘아 오늘은 마그리뜨 날씨군’하고 나갈까 말까 고민하는 한 사람이 있다. 20세기 미술에 매우 큰 영향을 준 초현실주의 미술 선두 그룹의 한 사람인 막스 에른스트의 말이다. 과연 무슨 의미일까? 마그리뜨의 그림들을 보고 나면 어렴풋이 짐작이 갈 것이다.

마그리뜨는 벨기에의 한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다. 동네에서 납골당을 그리던 화가 아저씨,지붕위로 떨어진 조종사의 기괴한 복장, 강으로 뛰어들어 자살한 어머니, 그로 인한 주위의 관심 속에서 느낀 야릇한 만족감…마그리뜨는 이런 어릴 적 기괴한 상황과 현실과의 부조화 등에 놀라고 때론 신비감에 젖어 들었다. 그리고 그런 기억들은 현실과 전혀 동떨어진 다른 세상의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런 의식을 바탕으로 마그리뜨는 방안에 꽉 차있는 사과를 그리고 파이프 그림 밑에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쓰거나 이젤 속 풍경과 실제 풍경과의 혼란을 주는 등 우리가 당연히 여기는 사실에 대한 논리를 뒤집고 현실을 넘어선 또 다른 세상의 모습을 마치 시와 같이 표현했다.

위의 ‘규방철학’에서 보듯 잠옷 위로 선명하게 드러난 여인의 가슴과 탁자 위의 신발끝을 실제 사람의 발로 변화시키는 의인화는 그가 좋아하던 묘사법 중 하나이다.

그 외에도 공존할 수 없는 밤과 낮을 결합시켜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믿음을 깨는 등 현실과 환상사이에 긴장감을 연출했다. 마그리뜨는 눈에 보이는 것을 믿고 받아들이는 ‘현실’을 배반하고 ‘신비로운 진실’을 탐구했던 현대미술의 중요한 흐름의 공헌자였다.

만약 초현실의 세계를 실재로 경험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달리나 마그리뜨의 그림을 감상하라고 권하고 싶다. 화창한 하늘에 정말로 커다란 바위라도 떨어진다면 정말 큰일이니 말이다.

장지선 미술칼럼니스트

입력시간 2002/05/23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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