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러운 흡연, '공공의 적' 되다

금연 열풍이 가져온 새 풍속도, 흡연자 입지 갈수록 좁아져

늦은 밤 일의 스트레스와 피로에 찌들려 파 죽이 되어 귀가한 아버지의 몸에서 풍기는 담배냄새. 어릴 적 그리운 아버지의 채취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겐 담배연기는 향수다.

그러나 아버지의 독특한 그 채취가 이젠 자녀들의 학습능력을 떨어뜨리는 니코틴의 부산물인 코티닌으로, 이에 노출된 자녀의 경우 읽기 학습이 떨어지는 등 지능발달에 큰 장애를 주는 심각한 원인으로 인식되고 있다. 흡연은 이제 ‘공공의 적’이다.

담배제조 업체들의 입지도 마찬가지다.

올 12월 경남 사천에 담배제조 공장을 완공할 예정인 영국의 담배제조판매회사 브리티시 아메리칸토바코(BAT)사가 담배업체라는 이유로 외국인투자지역 지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각종 조세감면 혜택을 주며 국내에 외투 기업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담배제조 업체에까지 조세감면을 해줘야 하느냐”는 부정적 인식 때문이다.

정부는 최근 BAT의 외투지역 지정 안을 1차 부결시켰고, 5월 말 본회의를 열어 최종 결론을 내릴 계획이다. 이젠 담배 자체가 ‘국민정서’ 상 주적으로 간주된다.


설자리 잃어가는 담배

삼성은 5월 1일부터 전 계열사 전 사업장에서 전면 금연을 실시하고 있다. 담배를 피우다 적발되면 인사상 불이익을 주기로 했다. 끽연가인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모(43) 부장은 “흡연에 관한 지침에서 ‘흡연시 적발되면 승진 심사 때 감점한다’는 구절이 포함돼 있다”며 “이젠 사내에 흡연 단속반까지 동원될 듯 한 분위기”라며 씁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포스코가 올 3월 서울 대치동 사옥(포스코 센터)에 대해 금연 빌딩을 선언한데 이어 동부화재와 조흥은행, 아시아나 항공, 동부제강, 기아자동차, 롯데쇼핑, 금호타이어 등 수 많은 기업들이 잇따라 사무실에서 담배를 피우는 직원들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내 한 평 규모도 채 안 되는 흡연구역이 어느날 갑자기 없어지는 가 하면 흡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우는 직원들 앞에 금연 빌딩임을 환기시키는 안내 도우미가 등장하고, 신입사원 채용 때 흡연자들로부터 금연 각서를 받는 회사가 생겨나는 등 사회 전반의 ‘흡연과의 전쟁’은 한층 확산되고 있다.

담배 피우는 사람들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금연 빌딩과 금연구역은 급속히 늘어나는 반면 흡연구역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흡연구역의 지정은 건강 증진법상 규정돼 있다. 그러나 기존의 흡연구역도 담배 연기를 격리시키는 공간에 불과해 품위 있게 담배를 피울 권리는 포기할 수밖에 없다.

흡연자들이 배우자와 자녀로부터 외면당한 데 이어 직장과 사회에서 마저 따돌림을 받고 있다. 금호건설의 모(38)과장은 “직원 채용 시 금연을 강요하는 것은 인권 침해의 소지 뿐 아니라 흡연자의 취업을 제한하는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흡연자들은 의지가 약한 사람이라는 주위의 시선을 감내해야 하는 막다른 골목에 서있는 상황”이라고 하소연 했다.


“1,000만 흡연자 권리 찾자”주장

1,000만이 넘는 말 없는 흡연자들. 그들을 대신해 5월 9일 서울 탑골 공원 앞에서는 전면 금연 구역화 입법화 반대 및 흡연환경보장 촉구대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 참여한 한 흡연자는 “인류가 존속하는 한 담배가 사라질 것 같지는 않다”며 “흡연족과 비흡연족이 공존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흡연권을 강력히 주장했다. 이젠 ‘끽연’이라는 단어 자체가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얘기처럼 세월 속에 묻히는 건 아닐까.

장학만 주간한국부기자

입력시간 2002/05/23 15:57


장학만 주간한국부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