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가 대권을 결정한다] 등거리 전략…재계 "지켜보겠어"

40대 CEO시대, 현실정치와 거리두며 '선택'미루는 오너들

“재벌개혁과 민영화 정책 등 겉으로 드러난 ‘성장과 분배’에 대한 여야 대선 후보자들의 시각차만 본다면 재계의 선택은 이미 자명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시장주의 경제원칙’에다 ‘안정적인 개혁’과 ‘기본을 지키는 개혁’, ‘원칙위주의 개혁’ 등을 부르짖는 두 후보의 이구동성에서 그 실체를 엄밀하게 가려내기까지는 아직 7개월이 남아있습니다. ”(김석중 전경련 상무ㆍ47)

전국경제인연합회가 7월 여야 대통령 후보를 제주도로 초청, 재벌 관과 규제개혁, 조세제도, 공공부문 민영화 등 그들의 경제정책을 집중적으로 파헤치는 재계와 각 당 대통령 후보간의 정책 토론회를 마련한다.

이는 재계가 6ㆍ13 지방선거 결과를 지켜보고, 7월 대선 후보를 면면히 살펴본 후 신중한 선택을 위해 전략적 접근을 시도하겠다는 취지에서다. 뒤집어 보면 대선 후보에 대한 재계의 입장을 일단 7월까지 유보하겠다는 유동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아직까지도 서로가 다가갈 수 있는 시간과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있기 때문이다. 다만 어느 선상에서 그 접점을 찾느냐가 재계로선 기다림의 상도인 셈이다.

재계에서는 대체적으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지지하는 분위기이지만 최근 구조개혁 등으로 40대의 경영자들이 대폭 영입ㆍ승진 되는 등 세대교체를 하고 있어 이들의 표심이 어느 후보에 쏠리고 있는 지 주목된다.


변화에 흐름에 민감한 ‘블루칩’

재계와 금융권 등에서는 40대를 ‘블루 칩’으로 보고 있다. ‘블루 칩’의 테마는 고정돼 있지 않고 항상 변화의 흐름을 쫓고 또 변화를 이끌어낸다. 변화를 추구하는 40대는 일단 이해의 폭부터 20ㆍ30대와 50대 세대의 벽을 넘나들 수 있는 유연하고 광범위한 의식체계를 체득했다.

70년대 ‘수출한국’과 성장위주의 경제 교육에서 80년대 소득분배와 경제적 평등에 대한 ‘운동권’ 학습에 이르기까지 격변기의 다양한 시대상황을 체험한 이들은 외환위기 앞에선 한 회사 혹은 기관의 ‘구사대’ 실무진으로 최전선에 서야 했다. 반면 이들의 연고문화는 특정 출신지역-고교-대학에 편중돼 있다.

지난해 100대 기업 40대 CEO들의 출신지역은 압도적으로 서울에 몰려있고 부산과 경남 경북 등의 순이다. 출신대학 역시 서울대가 주축을 이룬다. 회사의 임원급으로 내려올 경우 이 같은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또 한편으론 변화를 이끄는 개혁의 합리적인 논리로 무장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론 안정적인 연고ㆍ기득권 중심의 보수적 성향이 몸에 밴 이중성이야 말로 이들 40대의 주된 심리구조를 형성하는 독특한 기조다.

김 진 ㈜두산 상무는 “정치개혁과 ‘3김’ 시대의 청산을 부르짖는 40대의 힘찬 목소리의 이면에는 ‘극복해야 할 적이자 영원한 산’을 상실한 불안한 눈빛이 숨어있다”며 “과거 ‘3김’지지자들은 어떠한 악재(惡材)가 터져도 그 지지도가 별로 흔들리지 않았지만, 최근 단순한 호ㆍ악재에 따라 후보 지지도가 요동을 치는 불확실성과 과도기적 상황을 맞는 40대는 안정감 보다 당혹함이 그들의 표정에 역력하다”고 지적했다.


비정치적 행보로 구습차단에 노력

올들어 경제계 전면에 나서고 있는 40대 리더들의 부상은 어느 해보다 눈 부시다.

특히 재계의 40대는 그 기업의 얼굴이다. 최태원(42) SK㈜회장을 비롯 이재현(42) 제일제당 회장, 조동길(47) 한솔 회장 등이 올들어 마침내 경영전면에 나섰다. 롯데도 신격호 회장의 차남인 신동빈(47) 부회장 체제에 힘이 실렸다.

전경련에도 세대교체의 바람이 거세다. 전경련 40대 부회장 그룹인 이웅렬(46) 코오롱 회장과 김 윤(49) 삼양사 부회장, 류 진(44) 풍산 회장 등은 5월23일부터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한ㆍ중 IT 포럼에 참석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밖에 정몽진(42) 금강고려화학 회장 및 박정원(40) 두산 부사장, 이홍순(43) 삼보컴퓨터 부회장, 표문수(49) SK텔레콤 사장, 김 원(44) 삼양사 사장과 전문 경영인인 임영규(49), 황창규(49) 삼성전자 사장, 이병규(49) 현대백화점 사장 등 올들어 40대 CEO는 100대 기업 중 20여명에 달해 전체의 20%를 넘어섰다.

젊고 패기 넘치는 이들 40대 오너들의 특징을 한 마리도 규정짓기는 어렵지만 창업 주와는 달리 황제적인 전횡과 권위의식 보다는 직원들에게 호칭부터 친근감을 강조하고 상호 ‘윈-윈’하는 파트너 의식 찾기에 노력하고 있다.

변화의 흐름을 미리 읽고 유연하게 대처하려는 빠른 적응력 역시 40대 CEO들의 특징이다. 그러나 현실 정치에 대한 반응은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만큼 자제력을 보인다. 선대의 구습을 답습하지 않으려는 이들의 행보는 비정치적이며, 재계를 대표하는 전경련만이 정치권과의 유일한 창구 역할을 맡고 있다.

40대 오너체제로의 전환은 대기업 마다 40대 임원의 대거 발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제일제당은 올 초 상무로 승진한 임원 13명 모두가 42∼48세로 전체 58명 임원 중 절반 이상이 40대다. SK㈜ 역시 최태원 회장의 신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진 유정준(40) 전무가 상무진급 2년 만에 최연소 전무로 발탁됐다.

40대 돌풍은 보수적 성향이 강한 은행 등 금융권에도 예외는 아니다.

은행권에서는 하영구(49) 한미은행장에 이어 홍석주(49) 조흥은행장이 올들어 40대 행장 대열에 합류했다. 최근 외환은행은 부서장급 인사에서 일선 지점장들을 창립 30여년 만에 처음으로 40대 주요 부서장으로 대거 임명하는 물갈이를 단행했다.

40대 직원들의 경륜과 패기를 조화시킴으로써 안정적인 조직운영을 꾀한다는 목적에서다. 이에 앞서 시중은행으로서는 유일하게 40대 초반의 외부영입 임원진과 최연소 해외 지점장을 배출한 조흥은행에도 40대의 바람은 한층 거세다.

후발 은행인 하나은행과 한미은행 등에는 이미 40대 임원진의 전진배치와 전체의 절반을 넘는 주요 부서장들이 투명한 관행을 정착시키고 있다. 지동현 조흥은행 기관고객 담당 상무 겸 자금본부장(44)은 “외환위기이후 금융구조조정의 칼 바람 속에서 절반에 가까운 직원들이 은행을 떠났고, 기존 40%에 달하는 점포들이 문을 닫았다”며 “개혁의 당위성과 동료들의 가슴 아픈 실직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40대 임원과 부서장들로서는 그 후유증이 아직도 가시지 않은 상태”라고 지적했다.


벤처기업, 40대 CEO가 압도적

한편 코스닥 시장에 등록된 벤처 기업들의 경우 지난해 7월 현재 40대 CEO가 37.8%를 차지, 이미 50대(31.9%)와 30대(13.8%)를 압도할 정도다.

경제계를 이끄는 40대 CEO와 은행장, 벤처기업 사장, 임원 등 이들의 대선을 향한 표심은 아직도 방향계정 설정에 버튼을 누르지 않고 있는 상태다. 단지 좌충우돌 터져 나오는 여야 후보의 단편적인 호ㆍ악재에 대해 감각적인 반응만을 보일 뿐, 호감과 편견이 가치기준으로 자리를 잡기까지는 어느 후보도 선거직전 막판까지 서로 장담할 수 없는 신뢰도 쌓기 경쟁이 치열할 전망이다.

장학만 주간한국부기자

입력시간 2002/05/24 14:23


장학만 주간한국부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