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특집] '서프라이즈 코리아' 신화에 도전한다

손자병법으로 풀어본 한국팀 전략…16강 넘어 한국축구역사 새로 쓴다

한국의 월드컵 1승, 나아가 16강 진출은 정녕 실체가 없는 허구인가.

온 국민의 염원인 월드컵 사상 첫 승과 제 2라운드(16강 결선) 진출의 대야망을 품고 ‘히딩크호’가 마침내 대항해에 나선다. 그토록 갈구하며 48년 동안 불굴의 투지를 불태웠지만 번번이 메아리 없는 공허한 외침으로 끝난 월드컵 무대였다.

그러나 ‘은근과 끈기’로 대변되는 한민족이 어찌 좌절의 늪에 속절없이 무릎 꿇을 것인가. 무중생유(無中生有<병법삼십육계 중 제8계>:지혜로운 자는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의 집념으로 ‘5전 6기’의 새 도전장을 던진다. 더군다나 우리 마당에서 열리지 않는가.

지난해 한국 월드컵사의 한 쪽을 장식하며 대권을 잡은 거스 히딩크 감독(56)은 “우리(한국대표팀)는 16강에 나갈 수 있는 충분한 능력과 자격을 갖췄다”고 나름대로 자신에 차 있다. “지와 용을 두루 지녔다”는 평가에 걸맞게 히딩크 감독은 갖가지 비책을 마련한 것을 자신감의 근거로 내세운다.

포르투갈 폴란드 미국과 함께 D조에 짜여 2장의 16강행 티켓을 다툴 전장을 헤치고 나갈 연환계(連環計<병법 35계>:여러 가지 계책을 연결시킨다)의 묘책은 과연 무엇일까. ‘빠르기가 바람과 같고, 고요함이 숲과 같고, 침략하는 것이 불과 같고, 움직이지 않음이 산과 같다(風林火山:손자병법 허실편)’는 세계적 명장 히딩크는 어떤 전략으로 어떤 결실을 남길 것인가.

또다시 넘어질지, 아니면 늠름한 기상을 떨칠지 궁금한 전장을 미리 가 본다.

■ 대 폴란드전(6월 4일 오후 8시 반ㆍ부산):
혼수모어(混水摸魚<병법 제20계>:물을 흐려 놓고 고기를 잡는다)

첫 상대는 ‘내우(內憂)’에 시달리고 있는 폴란드. 히딩크 감독은 그 허를 파고드는 데 초점을 맞춘다. 첫 단추를 잘 꿴다면 순풍에 돛 단 격으로 거센 흐름을 탈 수 있다. 월드컵 사상 첫 승과 함께 16강 진출을 가늠할 수 있는 명운이 걸린 그야말로 중요한 한판이다.

폴란드는 반전의 궤적을 밟으며 좀처럼 어둔 그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유럽에서 가장 먼저 월드컵 티켓을 거머쥐었고 2월 북아일랜드와 치른 평가전에서 대승(4-1)할 때의 기세는 찾기 힘들다. 이후 일본(0_2패ㆍ3월) 루마니아(1-2패ㆍ4월)에 연패, 몰골이 말이 아니다. 5월 에스토니아에 1_0으로 이기긴 했지만 분명 3개월 전과 상반된 모습이다.

그 와중에 예지 엥겔 감독은 예상을 뒤엎은 엔트리(23명) 구성으로 언론의 뭇매를 맞았고, 예선에서 맹위를 떨쳤던 스트라이커 올리사데베의 부진과 미드필더 카르반의 부상 탈락이 겹치며 사면초가에 몰린 꼴이 됐다.

그러니 어떻게 그 틈을 놓칠 수 있겠는가. 한국이 이일대로(以逸待勞<병법 제4계>:쉬다가 피로에 지친 적과 싸운다)의 병략으로 나선다면 생각보다 쉬운 한판을 펼칠 수 있다. 일련의 유럽 전쟁을 치르며 ‘유럽 징크스’를 말끔히 씻어 내며 상승세를 타고 있는 한국은 초반부터 폴란드를 두들기는 전략을 운용, 새로운 월드컵사 창조에 나선다.

■ 대 미국전(6월 10일 오후 3시 반ㆍ대구):
암도진창(暗渡陳倉<병법 제8계>:기습과 정면 공격을 함께 구사한다)

“한국은 1승의 제물”이라며 비위를 건드려 왔으니 한 번 혼을 내볼까. 첫 판(6월 5일ㆍ수원)에서 포르투갈과 맞서 그 기고만장하던 콧대는 꺾였을 듯하나 여전히 한국을 16강 진출의 디딤돌 쯤으로 생각할 여지가 많다. 그 교만을 살려 주는 듯하면서 역으로 치면 어떨까.

‘전투에 이긴 방법은 다시 쓰지 아니 한다(其戰勝不復:손자병법 허실편)’고 했으니 히딩크 감독은 폴란드전과 달리 이 판에서 맞불과 기습 전략을 병용할 것으로 보인다. 지장으로 불리는 브루스 어리나 감독이 지난 1998년부터 조련해 온 미국은 공격에 강점이 있다. 노련미가 돋보이는 맥브라이드와 존스와 매시스, 힘 있는 ‘조커’ 비즐리와 도너번이 서로 약점을 메워 주며 이루는 개인기와 힘의 조화는 골 결정력을 배가시킨다.

하지만 수비 조직력, 특히 느린 양 측면 수비는 분명 아킬레스건이다. 이를 알고도 어찌 소홀히 넘어갈 수가 있겠는가.

‘공격을 잘 하는 사람은 적이 그 수비할 곳을 알지 못하게 한다(善攻者 敵不知其所守:손자병법 허실편).’ 그렇다면 다양한 공격 루트를 총동원, 상대 수비진의 얼을 빼놓아야 한다.

황선홍 안정환 설기현이 중앙을 공략하는 듯하다가 발빠른 이천수 차두리 최태욱이 외곽을 넘나들어 미국의 느림보 수비수들을 농락할 때 승산이 높다. 미국의 평가전 상대였던 네덜란드(5월 20일)가 그 해법을 보여 준 바 있다.

■ 대 포르투갈전(6월 14일 오후 8시 반ㆍ인천):
부저추신(釜底抽薪<병법 제19계>:가마솥 밑에서 장작을 꺼낸다)

제1라운드 마지막 전장으로 D조에서 독야청청하는 포르투갈을 맞는다. 객관적 전력상 분명 한국보다 한 두 수 위의 상대. 경우의 수에 따른 배수진을 칠 수도 있겠으나 기본적으로 빅수를 노린 포석이 전제될 가능성이 높다.

뜨거운 물로 끓는 물을 식힐 수는 없다. 불씨를 없애 자연스레 물이 식기를 기다려야 한다. 즉 적의 예봉을 피한 뒤 기세가 주춤한 뒤 공세를 취해 승패를 겨루는 것도 한 방편이 된다.

포르투갈은 유럽 예선에서 경기당 3.3골의 활화산 같은 득점력을 뽐냈다. 공격 삼각편대인 후이 코스타ㆍ파울레타ㆍ콘세이상은 하나하나가 월드 스타급 솜씨를 지니고 있다. 더구나 지단과 현존 최고의 플레이메이커를 다투는 피구가 공수를 조율하니 한국에게 벅찬 존재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천라지망에도 빠져 나갈 틈새가 없을 리 없다. 지난 3월 핀란드에 1_4로 무너진 것은 그 좋은 보기.‘낮추어서 교만하게 하라(卑而驕之:손자병법 시계편)’ 전략을 구사해 봄 직하다. 히딩크 감독은 안정된 수비에 치중, 포르투갈이 맘대로 날뛰게 한 뒤 제 풀에 지쳐 쓰러질 때 역습에 나서는 복안을 마련했을 성싶다.

공성계(空城計<병법 제32계>:빈 성으로 유인해 미궁에 빠뜨린다)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다면 한국의 16강 진출은 꿈에서 그 실체를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최규섭 일간스포츠 체육부 차장

입력시간 2002/05/31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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