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이 있는 집] 제주 빌레못 갈치국

올 때마다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는 제주. 이번에는 오름 트레킹이 기다린다. 트레킹 안내를 맡은 트렉제주(www.trekjeju.co.kr 064-759-9300)의 고경완씨가 공항까지 마중을 나와 주었다. 트레킹하기 전에 아침을 든든하게 먹어야 한다며 맛있는 집으로 데려가 주겠단다.

첫 비행기를 타느라 식사도 거르고 기내에서는 졸음에 겨워 서비스로 나오는 음료 한 잔 못 챙겨 먹었는데 맛집이라니 귀가 솔깃해진다.

찾아 간 곳은 ‘빌레못’이라는 갈치와 고등어가 전문인 제주 향토 음식점이다. 이름이 독특한데 빌레못이 무슨 뜻일까 하는 기자 특유의 호기심이 발동한다. 웃는 얼굴이 보기 좋은 빌레못의 사장 이승훈씨는 “빌레는 넓적하고 평평한 돌을 의미하는 제주말입니다. 빌레못은 움푹 패인 넓고 평평한 암반 위에 있는 못이죠. 이 못은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습니다.”라고 답한다.

빌레못은 제주 땅 곳곳에서 볼 수 있다는데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빌레못처럼 식당에도 손님이 끊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읽을 수 있었다.

이승훈씨가 빌레못을 차린 것은 몇 해 되지 않았으나 주방일을 도맡아 하는 안사장의 깔끔하고 맛깔스러운 손맛이 소문나 꾸준히 찾아오는 단골이 많단다. 공항이 가까워 항공사 직원들도 즐겨 찾는데, 그 중에는 공항에 도착해 급한 일만 대충 마무리하고 달려오는 마니아들도 제법 있다며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서비스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 이승훈 사장은 간지러워하는 부위를 딱 꼬집어 긁어줄 줄 안다. 모자라지도 않지만, 고객이 부담스러워 할 정도로 넘치지도 않는 서비스. 사람들이 빌레못을 찾는 건 맛이 전부가 아님을 알 것 같다.

갈치국은 제주 사람들뿐만 아니라 뭍에서 여행 온 사람들도 요즘은 즐겨 찾는 메뉴다. 담백하면서도 개운하고, 한편으로 칼칼한 맛이 좋아 제주 토박이들은 해장국으로, 외지 사람들은 제주 토속의 맛을 보려고 먹는다.

갈치국은 깔끔하게 끓인다. 싱싱한 제주산 은갈치를 토막내고, 배추와 늙은 호박을 적당한 크기로 썰어 넣는다. 국물에 칼칼한 맛을 더하는 것은 매운 청양고추다. 고추장처럼 텁텁한 매운맛이 아니라 깔끔하게 맵다. 간은 소금으로만 맞춘다.

국물을 먼저 맛본다. 생선이라 비릿할 것 같지만 의외로 비린 맛은 전혀 없다. 시원하고 개운한 국물이 연신 숟가락질을 하게 만든다. 갈치 살은 보들보들하고 담백하다. 생선을 넣은 음식이라고는 매운탕밖에 맛보지 않은지라 이리도 깔끔하고 개운한 갈치국은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날렵하고 매끈한 생김새처럼 맛에도 군더더기가 없는 게 갈치국이다. 제주 앞바다에서 헤엄치고 다녔을 은갈치의 은은한 반짝임이 국을 끓여 그릇에 담은 후에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또한 놀랍다.

갈치국도 좋지만 같은 상에 올라온 고등어조림도 만만치 않은 맛이다. 뭍에서는 보통 무를 넣어서 조리는데 여기서는 제주산 감자를 푸짐하게 넣는다. 감자의 맛에 조림 양념이 잘 배어들어 감자가 더 맛있는지, 고등어가 더 맛있는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고등어조림이나 갈치구이는 뭍에서도 흔히 먹는 것인데 제주에서 더 맛있는 이유는 아마도 재료가 신선하기 때문일 것이다.

갈치국에 고등어조림까지 곁들여 푸짐한 식사를 하고 난 뒤, 다랑쉬 오름으로 향한다. 제주 곳곳에 불쑥 불쑥 솟아있는 오름들. 모두 368개나 되는 오름들 가운데는 유명한 성산 일출봉, 산굼부리, 우도 쇠머리 같은 곳도 포함되어 있다.

다랑쉬 오름은 오르는 길에 잡목이나 방해물이 없어 오름 트레킹 초보자들을 위한 코스로 유명하다. 가운데 움푹한 굼부리(분화구)도 있고, 바로 곁에 아끈(작은) 다랑쉬 오름도 있어 오름 트레킹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다랑쉬로 오름 트레킹에 맛을 들였으니 이제 남은 367개의 오름을 하나씩 탐험해 가는 것도 재미 있겠다.


■ 메뉴 : 갈치국 6,000원. 고등어 조림 1만5,000원(대), 1만원(소), 자리물회(6,000원), 성게국(6,000원), 갈치회 2만원, 고등어회 1만2,000원. (064)744-9203, 747-8147

■ 찾아가는 길 : 길을 아는 사람라면 공항에서 5분이면 도착하는 신제주에 자리잡고 있다. 출발점을 공항으로 봤을 때, 공항로를 따라 나가서 7호 광장에서 우회전, 서부관광도로 표지를 따라 노형로터리 쪽으로 간다.

남녕고교를 지나 노형로터리 도착하기 전 오른편으로 현대해상빌딩과 제주은행 사잇길로 들어가면 오른쪽 네 번째 블록에 빌레못이 있다. 차량이 항시 대기하고 있으므로 픽업을 부탁해도 된다.

김숙현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2002/05/31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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