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파란색이 생의제왕에 오르기까지

■ 블루, 색의 역사
미셸 파스투로 지음. 고봉만 등 옮김.
한길아트 펴냄.

세계인이 가장 좋아 하는 색은 파란색이다. 그러나 옛날엔 달랐다. 그리스인들은 하늘을 흰색이나 황금색으로 표현할지언정 청색으로는 묘사하지 않았다. 로마인들은 파란색을 미개인의 색이라고 경멸했다.

파란색 눈을 가진 로마인은 교양이 없거나 우스꽝스러운 추한 사람으로 취급됐고 여자에게는 정숙하지 못하다는 딱지까지 붙었다. 중세 초기까지도 파란색은 철저하게 무시되었다. 파란색을 뜻하는 라틴어 단어조차 없어 게르만어(Blau)와 아랍어(Azur)를 차용했다.

이 책은 파란색이 비천한 색에서 색의 제왕으로 등극하는 색의 역사를 꼼꼼하게 포착했다. 중세 문장학의 대가로 꼽히는 저자는 이를 통해 로마에서 21세기 현대에 이르는 서구 문명사, 특히 색에 얽힌 이야기를 깔끔하게 정리했다.

염색과 천, 의상 분야 뿐만 아니라 스테인드글라스, 벽화, 패널화, 세밀화, 고대 유물, 대중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도판이 우수한 인쇄 상태로 담겨 있어 보는 재미도 짭짭하다.

그러면 파란색은 어떻게 부상하게 됐을까. 저자는 성모 마리아를 일등공신으로 꼽는다. 중세 성화에서 파란색은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성모 마리아의 비탄과 애도를 상징하는 색이었는데 성모 마리아를 향한 숭배 분위기가 더욱 고조되면서 파란색의 인기도 중세 초기의 빨강 하양 검정의 3색 체제를 헤집고 덩달아 올라갔다.

중세 문학에서 청기사가 용감하고 충성스러운 인물의 전형으로 묘사되기 시작했고, 청색 염색 업자들은 막강한 위치였던 붉은 색 염색 업자들을 제치고 선두에 서게 됐다.

기독교 내부의 성상파괴논쟁에 이어 ‘색과의 전쟁’으로 불리는 종교 전쟁을 겪으면서 파란색의 입지는 더욱 강화됐다. 또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베르테르가 파란색 연미복을 입고 샤로테를 처음 만나고 자살까지 하면서 파란색은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색이 됐고, 프랑스 혁명을 거치면서 혁명의 색으로까지 상징영역이 확대됐다.

현재에는 중립과 합의와 자유를 의미하는 유엔의 색으로, 자유와 저항을 상징하는 청바지의 색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김경철 주간한국부 차장

입력시간 2002/05/31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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