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콘서트] "웃기죠?…우린 눈물이 쏙 빠져요"

무대 뒤 풍경은 살인적 연습과 아이디어 짜내기 전쟁터

서울 여의도 KBS별관 D 공개홀. 이 곳에서는 매주 월요일 마다 국내 코미디 프로의 ‘자존심’으로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KBS 2TV ‘개그콘서트’(일요일 오후 8시 50분 방영)가 녹화된다.

저녁 7시부터 시작되는 녹화시간에 앞서 출연자들은 오후 3시부터 리허설과 무대 분장에 눈코 뜰새 없이 분주하다. 두 세 명씩 팀을 이뤄 호흡을 맞춰보는가 하면 무대에 오르기 직전까지 새로운 아이디어를 짜내기 위해 고심하는 사람도 있다.

선배 개그맨들은 후배의 말투나 표정 등을 세심히 살펴보며 따끔한 조언을 한다. 1999년 소극장 ‘공연’의 생동하는 현장감을 방송에 접목, 코미디계의 태풍의 눈으로 떠오른 뒤 3년 여간 인기를 유지해온 비결은 바로 이 치열한 연습에 있다. SBS ‘여인 천하’에 이어 시청률 2위를 달리고 있는 개그콘서트의 무대 뒤를 살펴보자.


#수다맨 강성범

‘수다맨’, 봉숭아학당 2002의 ‘연변 청년’으로 개그콘서트의 간판스타가 된 강성범(28)은 최고의 ‘노력맨’으로 꼽힌다. 최근 선보인 ‘집에서 사제끼기’ 코너에선 개그우먼 김지선과 커플을 이뤄 만담류 개그를 주도하고 있다.

그는 출연자 대기실에서도 가장 바쁘다. 코너에 맞게 옷을 갈아입는 동안에도 쉴새 없이 대사를 쏟아놓는다. 강성범의 말은 확실히 빠르다. A4용지 2장 분량의 글을 1분 안에 읽어낼 정도. 하지만 그는 원래 ‘말이 느린 남자’였다고 한다.

“계속 연습하다 보면 누구나 말을 빠르게 할 수 있다”다는 게 그의 생각. 그가 알려주는 빠르면서도 정확하게 발음하는 비법은 “입을 최대한 크게 쫘~악 벌리고 연습하는 것”이다.


#갈갈이 삼형제

‘갈갈이 삼형제’를 만나는 일은 유쾌하기 그지 없다. “자, 무를 주세요”의 일약 스타 박준형(29)과 느끼맨 이승환(28), 지저분한 캐릭터로 인기를 얻고 있는 막내 정종철(25)이 ‘무 선별론’을 펴며 장난을 치는 모습은 개구쟁이 소년처럼 천진난만하다.

“무 고르는 법이요? 무는 뭐니뭐니해도 바람이 안 들어간 무가 제일 좋아요. 신선해야 잘 갈리죠. 맛도 있겠지만…무 헬리콥터, 무 축구장, 무 돛단배 등 못 만드는 게 없어요.”

갈갈이 삼형제의 맏형 박준형이 무를 갈게 된 사연도 재미있다. “5년 전 김장을 담그는 어머니 앞에서 무를 갈았더니 배를 잡고 웃으시더라구요. 이거 되겠다 싶었죠. 비장의 무기로 간직했다가 ‘개그콘서트’에서 터트린 것이죠. 지금까지 무를 1,000개 정도는 갈았는데 치과에서 검사를 받아보면 이에는 전혀 이상이 없대요.”

요즘 ‘갈갈이 삼형제’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 이들이 입는 우비 같은 비옷이 동대문 시장에 ‘갈갈이 의상’으로 출시됐고, 이들의 캐릭터를 딴 컴퓨터 게임 ‘갈갈이 삼형제’도 등장했다.


#여장남자 황승환

‘엽기스런 그녀’ ‘봉숭아학당’에서 여장남자로 활약중인 황승환(31)은 분장하는 데 가장 많은 공을 들인다. 코디가 속눈썹을 붙여주는 순간 들리는 그의 외마디 비명. “아! (코디의) 사랑이 없는 날은 아파요.” 그래도 2년 동안 꾸준히 여장을 해온 덕에 이제는 여자 분장에 꽤 익숙해졌다.

처음에 속 눈썹을 붙일 때는 눈도 못 뜰 지경이었다. 진한 화장 덕에 ‘곱던’ 피부가 다 망가졌다며 얼마 전에는 피부과에서 여드름 치료도 받았다고 하소연한다.

절묘한 여자 분장의 압권은 ‘가슴’. 그는 “새로 바꾼 제 가슴 보실래요” 하더니 블라우스 속으로 손을 쑥 집어넣어 ‘투명한 물체(?)’를 꺼낸다. “실리콘이래요. 촉감 좋고, 체형도 예쁘게 잡아줘요. 예전에는 휴지를 넣었는데 얼마나 불편했는지 몰라요.”

황승환은 실제로는 목소리도 굵고 말술을 마다하지 않는 터프가이다. 담배도 즐겨 하루 평균 1갑 반을 피운다. “방송의 긴장을 해소하기 위해 담배를 많이 피운다”는 그는 “빨리 여자 친구를 사귀고 싶다”는 건장한 청년이었다.


#하니 ‘김지혜’

‘봉숭아학당’의 ‘하니’로 인기 급부상 중인 개그우먼 김지혜(24)는 이날 자신의 빈약한 가슴을 방패에 빗댄 멘트를 준비했다. “선생님! 가슴이 가슴이… 방패예요. 전경들이 절 갖고 사람들을 막아요.” 실제 가슴이 작냐는 질문에 “제 몸에 어울릴 정도”라며 “가슴이 크고 작은 걸 판단하는 기준이 따로 있냐”고 반문한다.

여성의 신체를 개그의 소재로 사용한 탓에 그는 여장남자 황승환과 함께 ‘선정성 논란’의 도마 위에 오르는 아픔도 겪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이 같은 시선에 대해 “개그는 개그일 뿐”이라며 너그러운 시선을 당부한다.


재능있는 신인 발탁, 철저한 실력위주

개그콘서트는 평균 시청률 23~25%를 넘나들며 같은 시간대에 방송되는 KBS 1TV ‘뉴스 9’와 MBC TV ‘뉴스 데스크’, SBS ‘그 여자 사람잡네’를 가볍게 따돌리고 당당히 1위를 차지하고 있다. ‘9시=뉴스 시간대’라는 등식도 깼다. 개그콘서트의 성공은 재능 있는 신인들의 발굴과 살인적인 연습의 결과로 풀이된다.

개그콘서트 출연자들은 녹화 당일은 물론 1주일 내내 방송국에 모여 회의와 연습을 거듭한다. 작가가 구성하는 원고에만 의존하지 않고 출연자들이 직접 참여해 기발한 아이디어를 짜낸다.

15개 코너를 막간 쉼표 없이 진행, ‘못 웃긴’ 개그맨들을 조기 퇴출시킨다. 양기선 CP는 “심현섭, 강성범, 박준형 등 신인에서부터 스타로 떠오른 출연자들의 끈끈한 팀워크가 프로의 경쟁력”이라며 “오락프로가 범람하는 TV에서 정통 코미디인 개그콘서트에 대한 거는 기대가 큰 만큼 이에 부응하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국예술인총연합회 석현 회장 인터뷰
   
“중년층이 청소년의 가요 ‘랩’을 이해할 수 없듯, 40~50대는 개인기 중심의 요즘 코미디를 보고 웃기지는 않습니다. 중년을 위한 코미디 프로의 부활이 절실합니다.”

1965년 KBS 연기자로 데뷔, 80년대 KBS ‘코미디 전원출발’ 등에서 이주일, 이상해 등의 동료들과 함께 코미디언으로 활약했던 한국예술인총연합회 석현 회장은 “10~20대와 40대 이상의 문화 코드는 엄연히 다르다”며 “중장년층은 현실의 시름을 잊고 흥미롭게 볼만한 코미디 프로그램이 없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점차 중장년층을 비롯한 노인 인구가 증가하는 만큼 이들을 위한 프로그램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석 회장이 지적하는 현재 TV 코미디의 문제점은 “코미디를 아무나 할 수 있는 분야로 경시”한다는 것. 가수나 탤런트 등이 조금만 인기를 얻으면 쉽게 코미디에 등장해 전반적인 수준을 떨어뜨린다고 비판한다.

석 회장은 “과거 구봉서, 배삼룡 등 원로 코미디언들은 정극에서 비극을 거친 뒤에 희극에 입문하는 까다로운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만큼 어려운 분야가 희극이에요. 그런데 요즘 코미디에 대한 기본이 없는 연예인들이 대거 코미디 프로에 나오면서 정작 실력 있는 코미디언들은 설 땅이 점점 좁아져 갑니다.”

전문 코미디 작가와 PD의 배출 미흡, 열악한 방송사측의 지원도 개선돼야 할 점이다. “드라마에 투자하듯 정통 코미디에 한 번 지원해보세요. 대폭적인 지원만 뒤따른다면 한 시대를 풍미할 수 있는 정통 프로그램이 반드시 재탄생될 겁니다.” 그는 앞으로 코미디언들이 인기는 물론 국민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시대가 오길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배현정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2/05/31 17:14


배현정 주간한국부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