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러 항구적 평화토대 구축

부시·푸틴 핵부기 감축 협정에 서명, 동반자 시대로

미국과 러시아가 새로운 동반자 시대를 선언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5월 24일 모스크바에서 역사상 가장 포괄적인 핵무기 감축협정에 서명했다. 푸틴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은 이날 오전 10시 크렘린궁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현재 6,000기 수준인 양국 핵탄두 수를 향후 10년 동안 1,700-2,200기 선으로 대폭 줄이기로 합의했다.


미ㆍ러 세계질서 주도권 계속 유지

양국 대통령은 또 21세기 양국간 동반자 관계 수립을 위한 △정치ㆍ경제 분야 협력 확대 △에너지 분야 협력 증진 △민간 교류 활성화 등을 골자로 하는 공동 선언문도 발표했다. 이로써 양국은 2차 대전 이후 계속돼온 동서 냉전체제를 종식하고 새로운 동반자적 협력 관계를 구축키로 했다.

양국은 특히 경제 협력 분야에서 △러시아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지원 △러시아에 시장경제 국가 지위 부여 △ 대러 무역 제재 법안인 ‘잭슨-배닉’ 법안 폐기 등에 합의함으로써 러시아를 세계 경제 체제에 편입시킬 토대를 마련했다.

양국은 국제 안보 분야에서도 △대 테러 투쟁 공조 △러-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간 협력 확대 ▲중동 사태 해결 공동 노력 등에 합의, 9ㆍ11 테러 이후 급변하고 있는 세계 질서에 대한 주도권을 계속 유지할 수 있게 됐다.

부시 대통령은 군축 협정을 서명한지 하루 뒤인 5월 25일 상트 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을 방문한 자리에서 양국의 새로운 협력관계가 러시아의 경제 회복을 가속화시키는데 도움이 되기를 희망한다면서 번영하는 러시아는 미국에도 좋다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은 “우리가 서명한 협정은 핵무기에 관해 많은 것을 포괄하고 있으며 평화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면서 “동시에 냉전은 끝났으며 미국과 러시아는 세계를 위해 친구가 될 것이고 그래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친밀감을 과시하듯 푸틴 대통령을 “나의 친구” 또는 “블라디미르” 로 불렀으며 푸틴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을 “조지”라고 불렀다.


합리적 군축협정, 러시아 부담 덜어

양국이 서명한 새 군축협정은 군사력을 유지하기 위해 서로 원하는 핵무기를 선택할 자유를 주고 있다는 점에서 수 십년 간의 군축사에 일대 전환을 의미한다. 특히 재원이 부족한 러시아로선 값싼 비용으로 미국과 핵 균형을 이룰 수 있다는점이 돋보인다. 이 때문에 러시아 전략핵군 참모차장을 지낸 발시리 라타 예비역대장은 “이 협정으로 러시아가 구속에서 벗어나게 됐다”고 평가했다.

과거의 군축 협정들은 상호 보유할 수 있는 잠수함과 미사일, 폭격기의 종류와 숫자까지 일일이 열거하고 협상에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1993년 조인됐으나 아직 이행되지 못하고 있는 제2단계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 Ⅱ)의 경우, 러시아 핵 군사력의 요체인 지상 발사 다탄두 미사일의 배치를 금지하고 있다.

STARTⅡ가 발효됐더라면 러시아는 미국과 핵 균형을 맞추기 위해 신형 단탄두 토폴-M 미사일을 대량 배치하거나 탄두미사일이 장착된 핵 잠수함을 건조해야 했다. 재원이 부족한 러시아로선 두 가지 모두 가능하지 못한 선택이다. 러시아군 제1참모차장 유리 발류예프스키 중장은 새로운 군축협정이 체결됨에 따라 “이제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핵 군사력을 개발할 기회가 왔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그 동안 미국이 탄도탄요격미사일(ABM)협정에서 탈퇴함에 따라 START Ⅱ를 무효화했으며 새로운 군축협정으로 STARTⅡ를 영원히 묻어버렸다고 지적해왔다. 러시아 의회 국방위원회의 알렉세이 아르바토프 부위원장은 “과거의 협정들이 무미건조한 산문이라면 새 협정은 낭만시”라고 묘사했다.

새 협정에 따라 양국은 폐기할 핵탄두를 완전 폐기하지 않고 보관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러시아가 미국과 동등한 규모의 핵탄두를 보관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러시아는 구 소련 시대에 제조한 다탄두 SS-18과 SS-19 미사일을 보유할 수있게 돼 대체 무기를 서둘러 개발해야 하는 값비싼 경쟁을 피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러시아가 보유하고 있는 이들 미사일은 당초 의도했던 수명을 지나 2010년 안에 폐기될 처지에 있다. 러시아는 이제 신형 토폴-M 미사일에 3개의 탄두를 장착해 미국과 핵 균형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START-Ⅱ에 따라 추진해야 했던 군축 노력에 비하면 비용이 적게 드는 전략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토폴-M 미사일은 실전배치에 시간이 오래 걸려 미국과의 핵무기 군형을 이루는데 어려움이 예상된다.

장학만 주간한국부기자

입력시간 2002/05/31 19:26


장학만 주간한국부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