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 김정일 감독 李ㆍ盧 주연의 대권 영화는 이제 그만

북한을 통치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아직도 우리에게는 신비한 인물이다. 북한 연구가들도 그의 행동이나 사고 방식 등을 쉽게 설명하지 못할 만큼 ‘괴짜’임에 틀림없다.

최근 김 위원장의 통치 행태를 영화에 비교하여 분석한 ‘북한 정치의 시네마폴리티카’(이지북)라는 제목의 책이 발간됐다. 저명한 철학자인 신일철 고려대 명예교수는 이 책에서 “김정일은 최은희와 신상옥을 납치할 정도로 영화광이었으며 그의 통치술도 영화 연출 기법을 닮았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시네마폴리티카’는 현실 없는 허구와 허위의 드라마 연출에 자기도취된 시네마 정치라고 정의하면서 김 위원장은 ‘원맨 쇼’를 통해 관객들을 웃고 울게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신 교수는 김 위원장이 남북 문제에서도 극적 장면을 연출하는 등 시네마형 심리전을 벌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 위원장의 이 같은 능란한 술수에 우리측이 오히려 말려들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여야가 ‘연방제’와 ‘주적’문제로 갑론을박하는 것을 보면서 김 위원장은 내심 흐뭇하게 웃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

‘6ㆍ15 남북공동선언문’의 2항인 낮은 단계의 연방제에 대해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와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정반대의 입장을 보였다. 이 후보는 “연방제와 남북연합은 종착역이 다른 두 대의 기차”라며 “북한에서 연방제 통일을 계속 고집할 때에는 2항의 폐기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노 후보는 “김일성 주석의 연방제 해석을 보면 낮은 단계 연방이 우리 정부가 말하는 국가연합과 유사하다”며 “남북 양측이 만났을 때 차이를 강조하는 것보다 유사점을 강조하는 것이 관계를 푸는 데 유리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주적 개념에 대해서도 한나라당은 “국방백서 조차 못내는 것은 스스로 주권국가임을 포기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면서 “이 정권에 있어 북한은 주적인가 아니면 주인인가”라고 비판했다. 반면 민주당은 “북한은 군사적 경계의 대상이자 화해ㆍ협력의 대상인 만큼 국방부가 국방백서 발간을 보류하기로 결정한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우리 정치권이 이처럼 대북 문제를 놓고 상당한 시각차를 보이고 있으나 북한은 ‘1인 연출가’인 김 위원장의 지휘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예를 들어 김대중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2000년 6월 15일 합의한 남북 공동 선언에 대해 북한은 이른바 조국을 통일하기 위한 통일 선언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연방제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6ㆍ15 선언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주적’ 개념에 대해 “민족의 이익을 희생시키고 겨레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가로막는 반민족적 범죄행위”라며 “동족이며 대화의 상대방을 주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낡은 시대의 대결논리이며 냉전의 유물”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그러면 북한의 주장대로 우리는 과연 ‘낡은 시대’에 살고 있을까. 이철승 전 국회부의장은 민족정론 소식 5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김정일+김대중=노무현”이며 “북풍은 박근혜까지 돌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이처럼 우리 내부는 좌우의 첨예한 대립이 벌어지고 있으며 대선 때만 되면 북풍이나 총풍 같은 사건들이 돌출한다. 김 위원장이 감독한 영화에 출연한 여야 주연 배우들이 서로 헐뜯기를 서슴지 않는다.

동서독 통일의 주춧돌이 된 서독 사민당의 빌리 브란트 총리는 자신의 비서가 동독 스파이임이 밝혀지자 사임했다. 하지만 그의 동방정책은 이후 기민당에 그대로 이어졌고 헬무트 콜 총리 때 마침내 결실을 보게 됐다. 우리의 대북 정책도 이처럼 여야의 구분 없이 일관성 있게 추진될 수는 없을까.

김 위원장은 올해 대종상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탄 이정향 감독의 영화 ‘집으로…’를 볼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이 ‘집으로…’를 보면서 이산가족을 주제로 자신이 감독하는 또 다른 영화를 구상하지는 않을까.

이장훈 주간한국부 차장

입력시간 2002/05/31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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