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자연을 집으로 끌어들인 선조들의 삶

■ 한국의 정원-선비가 거닐던 세계
글 허균. 사진 이갑철.
다른세상 펴냄.

일본이나 중국과 달리 정원 문화가 한국에서 꽃을 피우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마디로 천만에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한국미술사학자인 허균씨가 낸 ‘한국의 정원-선비가 거닐던 세계’를 통해 선조들의 운치있는 정원 문화를 접할 수 있다.

저자는 “우리의 전통정원은 당시 사람들에게 단순한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그들의 욕망과 정신세계를 상징적 수법으로 구현한 또 다른 성격의 생활공간이었다”며 “옛 사람들은 인위적으로 정원을 꾸미지 않고 자연을 정원화하는 삶의 지혜가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 정원은 일본이나 중국 정원과 현격하게 다르다. 자연경관을 주(主)로 삼고 인공 경관을 종(從)의 위치에 두었다.인간은 자연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간다는 관념과 지나친 기교와 인위를 싫어하는 한국인의 특성이 반영된 것이다.

이에 비해 일본은 연못 속에 여러 개의 작은 섬을 배치하고 소나무를 심고, 여기에 소금을 굽는 연기를 솟아오르게 하여 안개를 대신하는 등 완벽한 구도를 추구했고 중국은 대부분 석가산을 쌓고 태호석으로 바위 풍경을 조경하는 등 인위적인 경관을 선호했다.

한국 전통 회화, 건축, 공예 분야를 연구하다 3년여 전부터 전통 정원으로 관심을 돌렸다는 저자는 이 책을 집필하기 위해 1년에 100일 가까이 전국 곳곳의 정원을 답사했다.

저자는 “전통 정원에는 유학사상과 성리학, 그리고 도가사상,신선사상, 풍수사상 등이 녹아 있다”며 “정원을 통해 자연에 순응하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려는 우리 선조들의 자유주의 사상을 만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책은 한국 정원의 특징과 배후 사상 등을 설명한 1부와 비교적 보존이 잘 된 전통 정원들을 소개한 2부로 구성되어 있다.

전통 정원으로는 전남 담양 소쇄원, 전남 보길도 부용동 정원, 경북 영양 서석지 정원 등 벼슬에서 물러난 뒤 낙향하여 조성한 별서정원(別墅庭園)에서 활래정이 있는 강릉의 선교장 정원, 경남 진양의 무산십이봉 정원, 경남 함양의 농월정 등 향원과 정자나 누대를 중심으로 한 산수정원, 창덕궁 후원, 경복궁 경희루, 안압지 등 왕실정원까지 다양하게 등장한다.

사진작가 이갑철씨의 훌륭한 사진이 이들 정원의 멋을 생생하게 전한다.

김경철 차장

입력시간 2002/06/06 15:42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