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나미의 홀인원] 다리 굵다고 골프 잘 치나?

씨름 선수는 몸집이 크다. 기수는 몸집이 작다. 체조 선수는 말랐고, 농구선수는 키가 크다. 스포츠에 따라서 가장 적정한 체격 조건이 있다. 그럼 골프 선수에 가장 좋은 체격 조건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가늠하기가 어렵다.

신장이 187cm를 육박하는 장신인 어니 엘스가 미국 프로골프(PGA)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가 하면, 165cm의 단신 이안 우스남도 세계 정상권에 속한다. 또한 미 LPGA투어에서도 가냘픈 체격의 애니카 소렌스탐이 있으며, 80kg에 육박하는 여걸 체격의 미셀 맥간이 있다. 이처럼 골프 선수의 체격과 체중은 천차만별이다.

남자 프로들은 키 차이는 나지만 몸무게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 여자 프로들은 몸무게의 폭이 남자 프로들보단 훨씬 크다. 마른 프로 선수들은 손에 꼽을 정도고, 대다수의 프로들은 체중이 많이 나가는 편이다.

TV를 통해 보는 미 LPGA 투어 선수들이 별로 큰 것처럼 보이지 않지만 이들을 실제로 필드에서 보면 상당히 큰 체구를 갖고 있는 것에 놀라게 된다.

국내 아마추어 골퍼들은 이상하게도 여자 프로는 체중이 나가야 골프를 잘 할 것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그래서 툭하면 "박세리 다리 좀 봐. 저러니깐 잘 치지" 라면서 "저 프로도 체중이 더 불어야 거리가 나겠어? 그 다리를 가지고 뭘 해"라고 말한다.

참 그런 소리를 옆에서 듣거나, 간혹 내가 들을 때면 화가 난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소리를 하는 사람들을 접할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리고 다리 굵어야 골프를 잘치는 것인지도 반문하고 싶다. 물론 다리의 근력이 스윙에 상당한 비중을 갖고 있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누구는 박세리 선수 같은 든든한 다리를 안가지고 싶냐는 말이다. 이런 인식 때문인지 여자 프로들 사이에는 이젠 체중이 나가야지 거리가 나간다는 인식이 팽배하고 있다.

사실 골프 이론에 따르면 체중과 거리는 별 관계가 없다. 물론 운동 선수로서의 기본적인 체격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 하에서 말이다. 만약 그 체중이 대부분 근력의 무게라면 모르겠지만 그것이 근육이 아닌 단순한 지방이라면 오히려 방해가 될 뿐이다.

솔직히 날씬한 몸매에 고운 얼굴을 한 미모의 여자 프로가 혜성같이 등장해 이런 인식을 깨끗이 씻어 버렸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물론 예전 보다 골프가 언론 매체의 관심을 끌게 되면서 베스트 드레스상이 신설되는 등 외모가 하나의 중요한 홍보수단으로 등장했다. 그래서 여자 프로들도 과거보다 의상이나 메이크업에 신경을 많이 쓴다. 하지만 체중에 대해서는 예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다.

예를 들어 국내 톱 랭커인 강수연 선수를 보면 누구나 정말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거기에 비거리도 많이 나간다. 각종 이벤트 행사에 패션 모델들과 함께 출연 요청을 받는 등 다목적 선수라는 찬사도 받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런 선수가 더욱 많아졌으면 한다. 그리고 의외로 국내 랭킹10위 안에 드는 여자 프로를 보면 체중이 많이 나가는 선수는 별로 없다. 그리고 체중과 비거리를 연관시키지만 의외로 마른 사람이 공을 때릴 때 뿜어져 나오는 폭발력은 체중이 나가는 선수보다 더 위력적이다.

남자 중에 김종덕 프로는 장타자로 유명하다. 보통 남자 프로들보다 40m가량 더 나간다. 하지만 김 프로는 왜소하게 보일 정도로 말랐다. 체중과 골프 비거리는 아무 상관이 없다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거리가 안 나는 골퍼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너무 스윙에만 의존 한다는 것이다. "거리가 왜 안 나는 것 같으세요?" 라고 물으면 “팔 동작이 이렇고, 다리가 빠지고 해서…” 등의 이유를 든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결국은 공을 때리는 순간의 폭발적인 힘, 다시 말해 스윙 임팩트를 두려워 한다는 것이다. 공을 가격할 때의 힘 때문에 공이 삐뚤어져 나갈까 두려워 과감하게 때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어쨌든 골프는 거리와의 싸움이다. 그리고 거리가 안 나면 고전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비거리를 늘리는 것을 체중과 연관 시켜서는 안된다. 거리는 손목의 힘과 공을 칠 때의 폭발력에 달려 있다. 이런 순간 동작을 얼마나 많은 연습량을 통해 몸에 배이게 하느냐가 관건이다. 장타자와 단타자의 차이는 ‘공을 두려워 하느냐, 아니냐’의 차이다.

박나미 프로골퍼·KLPGA정회원 올림픽 콜로세움 전속 전 국가대표

입력시간 2002/06/06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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