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핫 이슈 '개헌'] 기고 - 정략적 개헌논의는 위험한 발상

국민기본권·국론통일 위한 개헌공론화 필요

그 동안 개헌을 주장하는 사람이 많아 대통령선거의 이슈로 등장할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무성했다. 민주당에서는 대통령 임기를 4년 중임제로 하자는 일부 의견이 있는가 하면 한나라당에서도 이에 동조하는 사람이 있다.

또 자민련은 의원내각제를 주장하면서 이번 선거에서 내각제개헌을 공약하는 어떠한 정당과도 연립할 것을 공약하였다.

한나라당의 국가혁신위원회는 집권후 개헌 공론화를 주장하였다. 이회창 대통령 후보는 ‘주간한국’과의 인터뷰에서 ‘개헌문제는 정략적차원이 아니라 국가혁신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하면서 ‘집권하면 여야의 협의를 얻어 개헌문제를 공론화해 가급적 이른 시일내에 매듭짓겠다’고 했다.

한나라당의 이러한 태도는 대통령 당선 후에 개헌문제를 공론화해 국민의 의사에 따라 개헌문제에 종결을 짓겠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정가에서는 대선을 앞두고 개헌론을 지렛대로 정계개편을 시도할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현헌법의 5년 단임제가 권력누수와 국민심판기회박탈의 주범이라고 하면서 4년제 중임 개헌을 주장하는 혁신파 의원들이 있기에 개헌을 공론으로 이들이 규합할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있다. 자민련도 대선전에 의원내각제 개헌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합당하거나 연립할 것이라는 보도도 있었다.


헌법개정은 대선 단골메뉴

그 동안 대선 때마다 헌법개정이 단골메뉴로 등장했다. 제3대 대통령선거 때에는 내각제 개헌이 야당의 구호였으며 제5공화국에서 제6공화국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는 여당의 내각제 개헌 주장과 야당의 대통령직선제 주장이 맞붙어 6월항쟁을 야기하였고 급기야 여당은 6ㆍ29선언으로 야당의 대통령직선제 요구를 받아들였다.

노태우 대통령은 내각제 개헌을 고리로 하여 3당 합당을 이루었고 노 정권에서는 현 헌법 유지파와 개헌파가 격돌을 벌이기도 하였다. 지난 대통령선거 때에는 김대중씨와 김종필씨가 내각제개헌을 하기로 합의하여 정권교체를 이룩하였다.

헌정사가 증명하는 것처럼 총선이나 대선을 앞두고 국민의 표를 의식하여 개헌을 공약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나 이러한 공약(公約)은 빈약속(空約)에 불과하였으며 집권만 하면 대통령제를 선호했던 것이 과거의 타성이었다. 민주당과 자민련이 내각제 헌법 개정을 공약한 뒤에 아무런 이유도 없이 국민을 배신한 것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6ㆍ10항쟁의 결과 성립한 현행 헌법은 국민의 절대다수의 뜻에 따라 대통령직선제와 5년 단임제를 도입하였다. 시행후 14년이 지난 현재에 와서 이 제도가 단임제이기 때문에 권력의 누수현상이 심하고 국회의원의 임기와 대통령의 임기가 달라 여소야대의 현상이 나타나므로 이를 고쳐야 한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이 헌법을 제정할 때 참여한 국회의원들이 이러한 병폐를 예측하지 않았다면 무식의 소치라고 할 수 밖에 없다.

국회의 여소야대 현상은 국회의원의 임기와 대통령의 임기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선거를 동시에 하는 경우에도 여소야대 현상은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다. 현행헌법이 발효한 뒤 처음에 실시된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선거는 같은 해에 치러졌지만 여소야대의 국회를 결과했다.

고육지책으로 3당 합당을 한 것을 국민의 의사를 왜곡한 것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소수 여당이 다른 정당과 연립하여 내각을 구성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국민들은 현명하기 때문에 대통령의 권력남용을 막기 위하여 국회를 여소야대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직선에 의한 대통령은 후보자가 난립하는 경우 36%의 득표로도 당선될 수 있다.

이 소수 대표인 대통령은 국민 다수의 의사를 수렴하기 위하여 연립정부를 형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김대중 정부도 소수 국민의 대표였기에 자민련과 연립정부를 형성했던 것이다. 민주당과 자민련의 연립정부는 이념적으로 좌파와 우파가 동거하는 정권이었기에 그래도 대통령의 독재는 막을 수 있었다.

또 정책도 지나치게 급변하지 않았으므로 약간의 정치안정도 가져 왔었다. 그것이 한 파트너를 지나치게 무시함으로써 연립정권이 붕괴되어 여당이 국회에서 제2당으로 밀려났고 레임덕현상도 빨리 왔을 뿐이다.

5년 단임제는 대통령의 임기가 짧아서 권력의 누수가 생기고 국정을 강력히 수행할 수 없다고 하는 주장은 과거의 역사를 모르는 까닭이다. 과거 4년 중임제를 한 경우 3선 개헌을 하지 않는 대통령이 없었고 영구집권을 위하여 개헌을 일삼고 부정선거를 했던 것은 우리 헌정사의 치부이다.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의 영구집권야욕을 경험한 국민들이 대통령 단임제를 쟁취한 것이었다.

현행 헌법의 대통령제는 프랑스식 이원정부제에 가깝다. 프랑스에서는 대통령의 정부당이 국회의원 총선에서 패하면 대통령은 재임하면서 야당에 행정권을 맡겨 의원내각제적으로 운용하고 있다.

다행히 대통령당이 국회의 다수를 얻더라도 행정권은 총리에게 위임하는 것이 관례다. 다만 국가위기가 왔을 때에는 대통령이 국가의 수호자로서 직접 통치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 헌법도 국무총리제를 두고 국무총리 임명에 국회의 동의를 얻게 함으로써 국회의 절대 다수당이 총리를 낼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헌법의 이 원리를 배반하여 야당 국회의원을 여당으로 강제 이적시키고, 국무총리의 국무위원 제청권을 무시하며, 대통령이 정당당수를 겸하여 국회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대통령의 위헌적 월권행위이다.


대통령의 권한과 역할 축소돼야

우리나라 대통령은 미국이나 프랑스보다도 훨씬 강력한 권한을 갖고 있어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불리고 있다. 이러한 강력한 대통령의 재임기간을 연장하겠다는 발상은 독재를 초래하겠다는 의도로 밖에 해석될 수 없다. 대통령이 가졌던 무소불위의 권력을 제한하기 위하여 대통령이 당적을 이탈 하여 정쟁에서 초월한 중립적 중재자로서 역할을 하도록 대통령의 권한과 역할을 축소하여야 한다.

현행 헌법 하에서도 대통령만 헌법을 준수하여 월권행위를 하지 않는다면 이원정부제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총선에 따른 민의에 따라 다수당에게 행정권을 넘기는 프랑스 대통령과 같은 지혜만 가지면 된다. 그런데 우리의 역대대통령은 헌법을 위반하여 권력을 남용했기 때문에 의원내각제로의 개헌이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이회창 후보가 ‘5년 단임제 헌법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현행 헌법이 근본 문제를 안고 있는 것처럼 왜곡하는 데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한 것은 정당하다. 물론 국회의원이 3분의 2이상과 국민의 과반수가 찬성하면 헌법은 개정할 수 있다. 이 후보는 ‘집권하면 나라의 근본 틀에 관한 국민적 합의를 모은다는 중립적인 입장에서 개헌문제를 다룰 것’이라고 하고 있어 개헌에 대하여 적극적인 것 같지는 않다.

과거 개헌문제가 국론을 분열시켰으며 정치적 불안을 초래했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하여 개헌의 공론화는 신중을 기하여야 하겠다. 현행헌법은 ‘대통령의 임기연장 또는 중임변경을 위한 헌법개정은 그 헌법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게는 효력이 없다’고 규정하여 현직 대통령의 정권연장 개헌을 금지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강조하고 싶다.

헌법개정은 정치인들을 위한 것이어서는 안되며 국민의 기본권 신장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집권후의 국론통일을 위한 개헌논의는 필요하다. 집권을 위한 정략으로 개헌논의를 하는 것은 삼가야 하겠다.

김철수 명지대 석좌교수

입력시간 2002/06/14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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