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이라 불러다오" 당당한 독신

전통적 관념에 대한 이유있는 반란

“독신의 좋은 점, 나쁜 점이라…” 홀로살기 달인의 경지에 이른 임재홍(45ㆍ대우 이사)씨가 답을 내리는 데는 별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처가나 아이들과의 관계 등 아내 때문에 생기는 복잡한 관계가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죠.” 덕택에 생활이 단순해져 주말이면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매일 매일 식솔과 부대껴야 하는 샐러리맨들에겐 얼마나 꿈 같은 이야기인가. 그러나 여전히 독신을 고수하고 있는 그는 “인연이 닿지 못 한 때문”이라며 “아직 지뢰는 밟지 않은 셈”이라며 웃는다.

최근 통계에 의하면 매일 915쌍이 결혼하고 반대로 329쌍이 이혼한다. 또 혼인 건수는 1991년 416,872건에서 2001년은 320,063건으로 감소하는 추세다. 평균 초혼 연령마저 남자는 28세에서 29.6세로, 여자는 24.9세에서 26.8세로 늦춰지는 추세다.

전통적 관점에 비쳐 봤을 때 결혼 적령기가 됐는데도 결혼을 마다하고 혼자 살기로 한 젊은이가 늘어가고 있다. 전체 30대 가운데 13.2%를 차지하는 이들의 비율은 1980년대와 비교했을 때 적어도 3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그러나 미혼 남녀의 8할이 결혼은 해야 한다고 아직은 굳게 믿는 현실에서 이혼에 의한 일부의 불행은 지속적이고 필연적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른바 혼인 적령기 동성 부부 등 다양한 가족 형태가 낯설지 않은 마당에 일정 연령이 넘으면 일가를 이뤄야 한다는 전통적 관념이 독신주의라는 강력한 복병을 만난 것이다.


사랑은 하되 연애는 안한다

독신에의 관심이 증가하자, 2001년 4월 국내의 첫 독신 생활 요령 종합 지침서인 ‘혼자 살기 가이드’까지 발행되기까지 이르렀다(청어刊). 그동안 여성 잡지 등에 조금조금씩 게재돼 오던 내용이 하나의 책으로 묶인 것이다.

이책은 건강 관리, 남자 거절하기 등 독신 생활 요령은 물론, 독신녀가 부딪칠 수도 있을 성적 문제 해결법 등 특수 상황까지 배려하고 있다. 사랑은 하되 연애는 않는다는 그들 나름의 원칙을 고수하기 위한 매우 실제적 방편이다.

‘‘자유ㆍ간편ㆍ집중ㆍ모색’이 이들의 키워드다. 역세권 원룸, 주거형 오피스텔, 독신자 전용 숙소 등의 독신자들을 위한 주거 시설은 이제 낯설지 않다. 이들 밖에 부모나 가족에 얹혀 사는 ‘기생(寄生) 독신자’ 4백 80만여명까지 합치면 독신자란 이제 당당한 사회 세력이다.

지난 2월 구축된 독신자들의 도메인 ‘쏠로(www.ssolo.com)’가 내건 독신 선언은 당당하다. ‘미혼자, 기혼자, 이혼자. 태어날 때부터 나는 혼자!’라는 표어다. ‘혼자’라는 말만 빨간 색으로 물들여 놓았다.


독신자 곤련사이트 500여개

5월 23일 오후 9시 여의도 선착장 옆. 대표 시삽 남기주(35)씨와 회원 등 8명이 발에 인라인 스케이트를 단단히 동여 매고 있다. 매월 한 번씩 갖는 정모(정기 모임)가 아닌 번개모임이다. 이날 봄밤 한강변에 모인 독신 남녀는 모두 13명.

야광 바퀴를 단 스케이트가 강변을 가른다. 편을 갈라 볼링을 치기도, 마음 먹고 마라톤 대회를 하기도, 회원 생일 축하 파티를 벌이기도 한다. 정모든 번개든 함께 만나면 편을 갈라 볼링을 치는 등 이들의 열기는 10대가 부럽지 않다. 30대 독신자를 위해 여기서 펼치는 홍대앞 인디 밴드의 콘서트에는 때로 50대 솔로까지 온다.

현재 다움 등 인터넷에 포진하고 있는 독신자 관련 사이트는 모두 500여개다. 이 중 오프 라인상의 모임 등 활발히 운영중인 사이트는 200여개로 추산되고 있다. 이 사이트는 2000년 2월 독신주의자를 위한 작은 게시판을 시험 운영한 것으로 출발, 1년 뒤 12만원의 가입비를 받는 유료 사이트로 발전했다.

이 모임은 독신주의자, 이혼ㆍ사별에 의한 독신자 등을 모두 포괄하는 대표적 독신주의자 도메인이다. 오프라인 모임까지 갖는 정회원의 수는 1,150명, 호적 등본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은 준회원의 수는 25,000여명이다. 진짜 독신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호적까지 요구하는 등 엄격한 회원 관리 덕에 IT, 관계, 언론사 등 화이트 칼라 회원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가입 10개월째인 한 여회원(31)은 “호적을 확인하는 등 신분 확인에 철저한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준역 301’이라는 ID의 한 남자 회원(36ㆍ자영업)은 “영화 구경, 레포츠 등 혼자만 해 오던 것들을 함께 할 수 있으니 뭣보다 좋다”고 말했다. 썰렁한 집에 혼자 있기 싫은 마음을 한강 고수부지에서의 격렬한 인라인 스케이트로 잠재운다. 이혼해 남겨진 아이들을 수용한 보육원에 가서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각종 만남이 계속되다 보니 자연스레 인연이 쌓여 가는 것은 당연지사다. 3할에 달하는 회원들이 여기서 만나 결혼까지 도달했다. “자유를 즐긴다기 보다는, 먼저 스스로를 제어할 줄 알아야 해요.” 대표 남씨가 회원이 되기 위한 기본 전제 조건에 대해 말한다. “솔로가 자유롭긴 하지만 특히 여자 문제에서 일탈이 빚어질 경우 무너지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것이다.

이 모임은 건강한 독신을 위한 원칙을 강조한다. “마치 짝을 맞추는 것이 이 모임의 지상 목표인 양 오해하는 사람도 있죠.” 결혼 정보 회사의 ‘묻지마 재혼’에서 보듯 독신자의 조급한 심리를 역이용, 상대를 제대로 파악할 유조차 주지 않은 채 어서 결혼하기만을 종용하기 일쑤인 일부 사이트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다양성 인정해주는 사회 됐으면"

그러나 분명 혼자가 좋을 수만은 없다. “뭣보다 아기가 늦다는 점이 가장 큰 걸림돌이죠.” 고참 독신 임재홍씨가 독신의 ‘폐해’에 대해 명쾌하게 압축한다.

인생이라는 시계가 그만큼 더디게 작동, 진정한 소속감이나 아이를 키우는 재미를 느끼지 못 한다는 것이다. “독신자란 결코 별난 사람이 아니다. 다만 인연을 못 만난 것일 뿐이다”. 유독 한국에서 독신이란 것이 불거지는 이유는 결혼 적령기란 고정 관념 때문이라는 말이다.

독신자라면 은근히 부담스런 시선이 가는 것은 아직 우리 사회가 다양스럽지 못 하다는 증거라고 이들은 입 모은다. 과부나 홀아비라면 일단 술집을 연상케 하는 우리 사회의 편견은 물론, 친목 모임 등에서 배우자가 없다면 마음 한 구석에서는 이상한 사람으로 은근히 치부하는 고정 관념이 사회적 선택의 폭을 좁히고 있다는 지적이다.

“활발한 사회 활동을 하는 주요 소비자군인 우리들을 사회적 실체로 떳떳이 받아들여야 할 때죠”쏠로 닷컴의 시삽 남씨의 말은 독신자의 변화하는 위상을 반영하는 듯 하다.

장병욱

입력시간 2002/06/14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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