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평론] 모두가 패배한 6·13 지방선거

6.13 지방선거가 실시되었다. 6.13 지방선거는 우리에게 많은 숙제를 남겨주었다. 6.13 지방선거의 결과는 한 마디로 '우리 모두의 패배'이다. 그 첫 번째 패배는 유권자의 패배이다.

6.13 선거의 투표율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만들어진 1961년 이후 치러진 선거 가운데 가장 낮은 48.9%이다. 투표율이 낮으면 국민의 뜻이 선거 결과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 절반의 국민 뜻이 전체 국민의 뜻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치적 선택으로서의 기권도 있다. 정치에 대한 불신과 불만 때문에 그 당이 그 당이고 그 후보가 그 후보라든가, 찍어줄 만한 사람이 없다든지 기권의 사유는 많고, 또 어느 정도 그 사유는 타당하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 생각 없는 기권과 구분이 되는 것은 아니다.

모두 하나로 묶어서 '참정권을 포기한 무책임한 유권자'로 분류될 뿐이다. 특히 월드컵 분위기에 휩쓸렸다면 그것은 반성해야 할 일이다. 월드컵이 중요하지만 지방선거는 그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유권자는 정치 불신으로 주권행사를 포기하면 정치는 더욱 악화된다는 사실을 가슴깊이 새겨야 한다. 유권자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도 정치가 제대로 안될 터인데, 실망했다고 돌아서면 정치가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잘됐다고 더 제멋대로 움직여나갈 것이다.

지금의 우리 정당과 정치인들의 수준이 낮은 투표율에 놀라서 정치를 잘 해야 되겠다고 다짐할 그런 정도가 되지 못한다. 선거가 끝난 뒤 이긴 쪽은 승리의 기쁨에 도취해 있고, 진 쪽은 패배의 충격에 허탈해 할 뿐 낮은 투표율에 대해서 반성한 정치인이나 정당이 있는가.

두 번째 패배는 정치인과 정당의 패배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지방은 실종되고 선거만 남았다. 지방정치 차원의 정책대결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중앙정치 차원의 대결이 벌어졌다. 물론 모든 선거는 선거 당시의 정치에 대한 심판의 성격을 띠고 있다.

또 중앙정치와 전혀 무관한 지방정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방적 의제를 놓고 대결한 것이 아니라 12월에 치러질 대통령 선거의 전초전으로 몰고 간 것은 명백히 잘못이다. 지방 의제와 민생은 제쳐놓고 오로지 대통령 후보들의 '사전선거 운동'으로 일관한 무한경쟁은 정치불신을 더욱 고조시켰다. '민주주의의 학교'로서의 지방자치라는 고전적 의미도 훼손되어 버렸다.

세 번째 패배는 언론의 패배이다. 투표율이 낮은 데에는 언론도 한몫을 했다. 우선 지방선거 보도 자체의 양이 적었다. 월드컵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했다. 월드컵이 중요한 행사이기는 하지만 월드컵 대회는 끝나면 그만이다.

우리 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한 동안 우리 국민을 기분이야 좋게 해주겠지만, 그 좋은 성적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직접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방선거는 앞으로 4년 동안 우리 지방행정을 결정짓고 나아가 우리의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월드컵에 대해 보인 언론의 관심은 지나치게 뜨거웠고, 지방선거에 보인 관심은 상대적으로 차가웠다.

게다가 얼마 안 되는 지방선거 관련 보도마저도 대통령 후보들의 움직임과 발언에 초점을 맞췄고 정작 지방선거 후보들에 대해서는 인색했다. 또 그나마 후보자의 전과사실과 관련된 선거관리위원회의 집계결과와 경쟁후보와 정당간 비방, 금품 살포, 선거사범 급증 등 부정적인 양상이 주류였다.

물론 이런 문제들에 대해 언론이 비판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또 잘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 극복을 위해서도 필요한 유권자들의 올바른 선택을 도울 수 있는 정보의 제공이나 건전한 선거여론의 형성에는 팔짱을 끼고 있었다.

선거는 끝났다. 정당은 당선 숫자나 득표율로 나타나는 승패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 12월의 대선과 앞으로의 모든 선거에서 이런 패배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다짐하고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손혁재 시사평론가 참여연대 운영위원장

입력시간 2002/06/21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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