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디열풍] 패러디송 작곡가 윤민석

대중 속으로 녹아든 민중가요, 통렬한 풍자와 해학 담겨

"음악인이 정치적이면 되겠느냐는 항의를 받았지요. 하지만 전 웃고 끝나는 패러디송이 아니라 그 속에 서민들이 진짜 말하고 싶어하는 통렬한 메시지를 담고 싶었습니다.”

이회창 대통령 후보에 대한 패러디송 ‘누구라고 말하지 않겠어’를 만든 작곡가 윤민석(38)씨. 그가 겪은 고초는 심했다.

검찰에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된 것은 물론, 갖은 욕설과 협박을 담은 전화에 시달렸다. 주변에서는 이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이민가야 되는 것 아니냐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윤씨는 두렵기보다 오히려 기쁘다는 반응이다.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대중들에게 이런 노래가 환호 받을 수 있다는 게 그저 기쁠 따름입니다.”

윤씨는 1980년대를 풍미했던 대학운동권 중심의 ‘민중가요’를 만들어낸 대표적인 작곡가다. 386세대의 애국가라는 ‘전대협 진군가’를 작곡한 주인공. 대학 노래패에서 음악으로 현실을 비판했고, 이를 삶으로 실천하고자 했다. 때문에 감옥에도 세 번이나 다녀왔다.

95년 출소한 뒤 대중들에게 잊혀져 가는 민중가요의 맥을 잇기 위해 ‘프로메테우스’라는 회사를 창립, 실험 음반과 시선집 등을 제작했다.

인터넷 사이트 송앤라이프닷컴(SongnLife.com)를 오픈한 것은 불과 6개전의 일이다. 민중가요를 인터넷의 막강한 전파력과 접목, 공개적으로 보급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민중가요는 ‘진부하다’는 통념을 깨기 위해 음악의 형식도 과감히 바꿨다.

“예전 대학노래패의 저를 기억하는 분들은 최근 패러디송을 듣고 ‘윤민석이 맞아’ 하며 신기해해요. 음악세계가 많이 변했다는 얘길 많이 듣죠. 하지만 전 음악의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민중가요를 널리 전파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힙합이나 동요 등 어떤 장르라도 적절히 구사할 겁니다.”

윤씨는 “갈 길을 잃었던 민중가요가 이제 새로운 돌파구를 찾은 셈”이라고 말한다. 대중의 감수성을 자극해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하겠다는 그의 전략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부시 미 대통령이 과자를 먹다 졸도한 사태를 풍자한 '기특한 과자', 차세대 전투기로 결정된 F-15K에 대한 비판을 담은 '종이비행기' 등은 네티즌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특히 ‘퍼킹 유에스에이’는 말 그대로 대박을 터트렸다.

“쇼트트랙 경기를 보았나/ 야비한 나라 퍼킹 유에스에이/ 그렇게 금메달 따니까 좋으냐/…/이제는 외치리라 미국 반대…”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의 쇼트트랙 파동을 다룬 이 노래는 “속 시원하다”는 찬사를 얻으며, 서버가 다운 직전까지 가는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민중가요 최초로 휴대폰 벨소리 목록에도 올랐다.

통렬한 풍자의 형식을 빌어 민중가요를 대중적으로 자리잡게 했지만, 윤씨가 걷는 길은 아직 험난하기만 하다. 경제적인 기반이 취약하다는 것이 가장 큰 숙제로 남아있다.

윤씨의 사이트에는 ‘퍼킹 유에스에이’로 들어온 10대에서부터 ‘누구라고 말하지 않겠어’로 찾아온 40대까지 2만여 명이 넘는 회원이 있지만 후원비를 내는 회원들은 소수이다.

5개월된 딸의 분유값을 걱정하는 못난 아버지라는 그는 “민중가요를 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 포기하는 경우가 생기지 않도록, 기본적인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틀을 구축하는 것이 절실한 바람”이라고 말했다.

입력시간 2002/06/21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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