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큰앵초

사랑을 전해주는 숲속의 귀족

봄이 가고 여름이 시작되는 초입에서 숲의 푸르름은 깊어만 간다. 어느새 연녹색이 이렇게 짙푸르게 되었을까? 봄을 참으로 더디게만 오더니 갈 때는 쉽기도 하다.

우거진 숲에서 아름다운 꽃이 돋보이기는 참 어렵다. 큰 나무의 잎새들이 하늘을 덮어 좀처럼 볕을 보내주지 않는데다 땅 위에는 모자라는 빛을 얻으려 키를 키운 풀들과 작은 키의 나무들이 숲을 채워버리기 때문이다.

큰앵초는 이러한 이즈음에 숲 속에서 단연 돋보이는 존재이다. 우선 자라는 곳을 가려 깊고 좋은 숲에서 자라니 그저 이 식물이 살고 있는 곳의 풍경만으로도 아름답고 그 가운데 선연하고 진한 분홍색의 꽃을 마치 점을 찍듯 강렬하게 피어 단연 돋보인다.

줄기를 따라 내려가 잎의 모양을 보아도 단풍잎처럼 갈라져 독특하니 이래저래 한번 만나고 나면 기억할만한 특별한 우리 꽃이다.

양지바른 물가에 무리를 지어 분홍색 꽃을 피우고 주름인 잎을 가지고 있는 키 작은 앵초를 아는 이는 많아도 큰앵초를 아는 사람은 적다. 드물게 자라는 희소성과 아무 곳에서 아무렇게나 자라는 않는 까다로움 때문이다.

하지만 큰앵초도 적합한 곳을 만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많은 우리 꽃들이 나무 그늘로 들어가면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할 뿐더러 꽃색도 희미하지만 큰앵초는 그늘이 오히려 꽃이 살아가는 적지이니 나무들이 많은 곳 아래 두고 키우기에는 아주 좋다.

그리고 보면 자연에서는 다 나름대로의 존재의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인간중심으로 따져 보아도 앵초는 햇볕이 들면서 축축한 개울 옆에 무리를 지어 심어 주면 최고이고, 식물체가 손가락 길이 정도로 아주 작은 설앵초는 요즈음 한창 유행하는 분경(盆景)의 소재로 알맞으니 말이다.

큰앵초나 앵초, 설앵초는 모두 앵초속(屬)에 속하고 이 앵초속을 라틴어로는 프리뮬라(Primula)라고 부른다. 꽃가게에서 흔히 프리뮬라라고 부르지만 이는 틀린 말이고 엄격히 말하면 원예종 앵초의 한 품종에 불과하다.

그러니 우리 것도 그저 아름다운 우리꽃하며 아름다움만에 탄성을 지를 것이 아니라 자원으로서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위 세 종류의 앵초 종류 가운데 앵초가 가장 널리 분포하는 종류이어서 쓰임새가 조금 알려져 있다. 앞에서 말한 관상적인 가치 이외에 뿌리를 이용해 가래를 삭혀주고 염증을 없애 주는 약재로도 이용해왔다. 어린 순은 나물로도 이용이 가능하다.

서양에서도 서양앵초는 허브로서 사랑을 받는 꽃이었던 같다. 영국의 처녀들은 이 꽃을 실로 꿰어서 공을 만들어 놀기도 하고 언제 신랑을 만날 수 있는지 점을 쳐 보기도 했다고 하고 꽃잎에 모인 이슬을 모아 사랑하는 이의 베개에 뿌려두면 마음이 열린다는 믿음이 있어연인들이 앵초 꽃을 서로 선물하는 것이 유행하기도 했다.

천주교에서는 성모님께 봉헌하기도 하는데 앵초의 꽃이 마치 열쇠꾸러미처럼 보여 천국으로 가는 열쇠라는 뜻에서 였다고 한다.

식물을 아름답게 느끼는 것은 동서양이 다 같은 모양이다. 그래도 여름을 맞이하면서 좋은 숲 찾아 나선 길에 진정한 우리 숲과 어울어진 큰앵초의 아름다움이 우리에게는 최고이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사

입력시간 2002/06/21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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