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 노 후보는 'NO'라고 말해야 한다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6ㆍ13 지방선거의 참패로 고개 숙인 남자가 됐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후보 사퇴론까지 제기하는 등 지방 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을 노 후보에 전가하려는 듯한 분위기이다.

노 후보측은 지방 선거의 패배는 전적으로 자신의 책임만은 아니며 민심이 DJ의 실정과 아들들의 부정부패에 대한 준엄한 심판을 했기 때문이라고 변명하고 있다.

실제로 이번 지방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DJ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표현했다. 어느 유권자는 “월드컵 때문에 지역구에서 어떤 후보들이 나오는지 알 수 없었다”며 “DJ가 싫어서 무조건 한나라당 후보들에게 투표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이 선거기간 중 ‘DJ 후계자=노무현’이라는 주장이 유권자들에게 먹혀 들었다는 것이다. 민주당 역시 한나라당의 주장처럼 DJ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지방 선거를 치렀다. DJ는 총재직을 떠났고 탈당까지 했지만 아직도 민주당 내에는 DJ의 잔영이 그대로 남아 있다.

권노갑 전 최고위원의 동교동계 구파는 신파의 좌장인 한화갑 대표를 압박하면서 노 후보를 깎아 내리는데 앞장서고 있다.

당내 후보 경선에서 패배한 이인제 전 고문도 경선에 승복하지 못하는 버릇을 버리지 못한 채 JP를 위해 충청도에서 자민련 후보를 지원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민주당은 자중지란 속에서 선거를 치른 셈이었다.

게다가 노 후보의 ‘철없는 행동’도 한 몫 했다. 노풍의 진원지라고 볼 수 있는 부산에서 전혀 바람이 불지 않자 노 후보는 “부산이 나를 또 죽이려 한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부산 시장선거에서 유권자들은 한나라당의 안상영 후보를 압도적으로 지지해 노 후보의 말처럼 노풍을 죽여버렸다.

노 후보는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와의 유세전에서 막말과 쌍소리를 섞어 가며 비난전을 벌였다. ‘깽판’ ‘깡패 언론’등 후보로서 품위에 손상이 가는 말을 사용해 비판을 듣기도 했다. 노 후보는 이 같은 말은 서민적 풍모 때문에 나온 것이라고 변명했으나 그렇다면 서민들은 막말하는 사람이냐는 말도 들었다.

미국에 가본 적이 없는 노 후보가 가장 존경하는 미국 대통령은 노예제도를 철폐한 에이브러햄 링컨이다. 원래 쌍소리를 전혀 하지 않는 링컨이 단 한차례 쌍소리를 한 적은 있다.

링컨은 남북 전쟁의 첫 전투에서 패배했다는 소식을 듣자 “빌어먹을(Damn it)!”이라며 화를 낸 적이 있었다. 노 후보는 전쟁도 하기 전에 막말부터 시작한 꼴이 됐다.

가장 중요한 점은 노 후보가 DJ와의 결별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노 후보는 YS와 DJ의 후원을 받으며 ‘민주 대통합’이라는 구도로 대선을 치르려고 했다. 민주당의 쇄신그룹 의원들이 DJ와의 결별을 주장했으나 노 후보는 이를 전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노 후보의 정치 행로를 볼 때 신의를 존중한다는 의지는 높이 살 수 있으나 현실 정치와는 거리감이 있는 듯 하다. 때문에 노 후보의 결단이 중요하다. 그러나 노 후보는 결국 차선의 선택을 한 듯하다.

노 후보는 ‘8ㆍ8 재ㆍ보선 후 대선후보 재경선 방침’을 밝히고 나선 것이다. 개혁과 통합을 앞세운 노 후보는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누구든지 입당해 국민경선을 하는 것도 수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노 후보의 말장난(?)에 대해 왈가왈부 하기는 어렵지만 그의 선택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노 후보는 이 같은 한계를 뛰어 넘을 권리와 의지가 있다. 노 후보의 최대 장점은 DJ 정권의 부정부패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외곽에 있었던 노 후보에게 떡 고물이 떨어졌을 리가 없다.

때문에 깨끗한 노 후보는 당내의 때묻은 세력을 일시에 정리할 필요가 있다. 동교동 구파나 기존의 당내 기득권 세력의 눈치를 더 이상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현 시대는 DJ나 YS나 JP를 원하지 않고 있다. 이들의 지원을 기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설사 이번 대선에서 실패하더라도 세상은 변하고 있으며 그 변화의 세력은 노 후보의 진심(?)을 알 것이다.

노 후보가 더 이상 DJ 노선을 추종하거나, DJ를 옹호한다면 절대 민주 대통합은 이루어 질 수 없을 것이다. 노 후보는 이제 DJ에게 ‘NO’라는 말을 해야 생존할 수 있을 것이다. ‘NO’라고 말할 수 있는 품위있는 노 후보의 행보를 기대한다.

이장훈 부장

입력시간 2002/06/21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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