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특집] '영웅' 히딩크

강제 귀화론, 대통령 추대론 등 뜨거운 애정 쏟아져

거스 히딩크 국가대표팀 감독이 ‘영웅’으로 떠올랐다. 한국 축구를 월드컵 사상 처음으로 16강에 진출 시키는 쾌거를 이룩한 히딩크 감독에 대한 칭찬의 목소리가 전국에 울려 퍼지고 있다.

‘강제 귀화론’ ‘대통령 추대론’ 등이 네티즌들을 통해 유포되고 있으며 정치권은 물론 재계 등에서도 히딩크 리더십 연구가 한창이다.

국가 대표팀의 8강 진출 여부를 떠나 히딩크 감독은 한국과 한국인들에게 값진 선물을 주면서 가장 인상적인 외국인이 된 것이다. 히딩크 가면, 히딩크 분장을 한 응원단장 등은 최근 열기를 잘 보여주는 증거다.

최근 인터넷에서 유행하고 있는 히딩크판 국민교육헌장은 그에 대한 뜨거운 애정을 보여주고 있다. “나는 본의 아니게 한국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받고 이 땅에 건너왔다. 성실한 마음과 튼튼한 몸으로 전술과 시스템을 배우고 익히며…우리의 처지를 이변의 발판으로 삼아 토털사커의 힘과 압박축구의 정신을 기른다….”

또 히딩크 감독을 영원히 한국에 가둬두고 싶은 절실한 마음을 담은 ‘히딩크 감독 긴급 체포’에 관한 유머도 떠돌고 있다.

이 유머는 한국팀의 16강 진출이 확정되는 순간, 히딩크 감독이 그라운드에서 긴급 체포(?)된다는 상황이 설정됐다. 수사기관에 압송된 히딩크 감독의 죄목은 다섯 가지다.

1.국민 수면 방해죄: 월드컵이 시작된 이후 온 국민의 잠을 설치게 했다.

2.영업 방해죄: 식당 주인들이 공짜 맥주, 공짜 음식을 제공함으로써 막대한 영업손실을 보고 보험사는 경품 등의 제공으로 인한 재정악화로 파산 지경에 이르렀다.

3.의료 방해죄: 국민들의 엔도르핀이 팍팍 나와서 모든 환자의 병이 호전돼 병원과 제약사들의 매출에 막대한 손실을 가져왔다.

4.선거법 위반: 지방 선거에 관심이 없도록 만들어 최악의 투표율을 기록하게 했다.

5.병역법 위반: 국방의 의무를 수행해야 할 선수들이 16강에 들어 군면제 혜택을 받을 지 모른다. 이는 국가안보에 매우 위태로운 일이다. 이러한 죄목으로 히딩크 감독에겐 출국금지는 물론 죽을 때까지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복무하는 무기징역형이 선고됐다.


들끓는 귀화여론, 명예국적 수여 논의도

언제나 말쑥한 정장 차림으로 경기장에 나서는 그의 생활 태도도 칭송의 대상이 되고 있다. 히딩크가 즐겨 매는 푸른 계열의 넥타이는 직장인들 사이에서 새로운 유행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히딩크 감독은 또 서강대에서 명예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는다. 서강대(총장 류장선 신부)는 최근 히딩크 감독에게 월드컵이 끝난 후 명예 경영학 박사 학위를 수여하기로 결정하고, 대한축구협회를 통해 이 같은 뜻을 전달했다.

서강대측은 6월 15일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히딩크 감독의 선진 선수단 경영 기법을 높이 평가하고, 앞으로도 한국 사회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노하우를 전수해 줄 것을 당부하는 차원에서 히딩크 감독에게 명예 경영학 박사학위를 수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19세 때인 1965년부터 프로구단서 축구 생활을 하느라 모국인 네덜란드에서 대학을 다니지 못한 히딩크 감독은 ‘제2의 조국’인 한국에서 월드컵 16강행을 축하하는 명예 경영학 박사 학위까지 받게 됐다.

히딩크 신드롬은 그의 고향인 네덜란드로까지 한국의 축구 브랜드 가치를 역수출하는 기현상도 낳았다. 6월 14일 네덜란드 가수 더블D가 히딩크와 한국 축구를 칭송하는 노래 ‘우리들의 꿈’을 급히 발표해 국내 팬들에게도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히딩크 감독의 귀화 여론도 갈수록 현실화하고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히딩크 감독이 우리 국민의 오랜 숙원인 월드컵 16강 진출을실현시킨 만큼 특별 귀화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현행법에 따르면 결혼으로 인한 국적취득을 제외하고 국내에 5년 이상 거주한 외국인은 국어와 국사를 포함한 귀화 시험 등 엄격한 절차를 거친 뒤 법무부 장관의 승인을 얻어 귀화할 수 있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의 경우 ‘대한민국에 특별한 공로가 있는 외국인’이라는 예외조항에 해당될 수 있기 때문에 국내거주 요건 및 귀화시험 등 까다로운 절차를 거치지 않더라도 귀화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법무부의 해석이다.

이에 따라 그에 대한 우리 국민의 지지 여론이 비등하고 있는 가운데 축구협회도 감독계약 연장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본인이 의사만 밝힌다면 귀화가 즉각 허용될 수 있을 전망이다. 히딩크 감독이 귀화를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일부 지자체에서 실시하고 있는 ‘명예시민' 제도를 본따 명예국적'이라도 부여해야 하지 않느냐는 여론도 일고 있다.

한국 축구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을 통해 축구사에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됐다. 한국 축구의 새 역사가 열린 데는 히딩크 감독의 뛰어난 지도력과 선수들의 각고의 노력, 협회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붉은 악마를 주축으로 한 온 국민이 붉은 물결을 이루며 응원전을 펼쳐 전세계를 놀라게 하는 등 열렬한 응원전을 한 것도 중요한 요인중의 하나이다. 물론 히딩크 감독의 국제축구를 읽는 눈과 치밀한 준비, 뛰어난 용병술이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대한축구협회가 1년 6개월동안 20여억 원을 들여 영입한 히딩크 감독은 선진축구라는 이상과 한국축구의 현실 사이에서 힘든 시기를 보냈다. 월드컵 16강을 일구기 위해 동양의 낯선 땅을 찾았으나 비전이 보이지 않아 좌절감도 많이 느꼈고 국내 축구인들의 곱지 않은 시선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은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준비에 착수했다. 코치들로부터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보이는 선수가 있다는 보고를 받으면 직접 불러 장기간 테스트하며 자신의 축구를 소화할 수 있을지를 점검했다.

시험무대에 오른 선수만 무려 60여명. 이중 압박축구가 세계를 지배할 것으로 보는 자신의 축구관에 부응하는 선수들은 살아 남았고 그렇지 못한 선수들은 소속팀으로 돌려보냈다. 세계 축구의 흐름을 꿰뚫어 본 히딩크 감독은 국내 전문가들로부터 거센 비난까지 이는 가운데에서도 선수들에게 강도 높은 체력훈련을 실시했다.

90분 내내 지칠 줄 모르고 달릴 수 있는 무쇠 인간이라야만 월드컵 무대에서 통할 것으로 내다보고 강도를 높였다. 선수들을 적재적소에 위치시키는 능력에서도 히딩크 감독은 탁월했다.

측면에는 빠른 선수들을 배치, 몸집이 큰 대신 둔한 상대팀 수비수들을 공략하게 했고 미드필더로 뛰던 안정환을 스트라이커로 전환해 톡톡히 효과를 봤다. 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들을 막을 수 있는 대인 마크능력에서부터 조직적인 패스로 상대 진영을 조여가는 공격전술을 지도하는 등 뛰어난 리더십을 보였다.

히딩크 감독외에도 얀 룰프스 코디네이터, 핌 베어벡 코치와 박항서, 정해성, 김현태 코치 등이 원신적으로 대표팀을 관리했다. 체력전담 트레이너인 베르헤옌 레이몬드, 재활전문트레이너인 아노 필립 등도 선수들을 돌봤다.


유럽 명문팀서 구애, 한국에 남을 수도

히딩크 감독의 향후 거취가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한국 축구에 심은 히딩크 감독의 ‘노하우’와 ‘카리스마’는 어떤 국가, 어떤 팀에도 필요하다는 절실함이 그를 부르는 주 요인이 되고 있다.

현재 히딩크 감독의 향후 진로에 대해 제기되고 있는 가능성은 크게 3가지다. △한국에 남는다 △네덜란드 PSV 아인트호벤으로 간다 △다른 나라 감독이나 유럽의 빅리그 클럽 감독으로 간다 등이다.

먼저 한국 축구관계자들은 물론 축구팬들도 히딩크 감독이 한국에 남아 축구발전을 위해 일해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최근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회장 겸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은 히딩크 감독에게 최소한 10월에 열리는 2002부산아시아경기대회 때까지 남아줄 것을 요청했다. 네덜란드의 PSV 아인트호벤은 최근 히딩크 감독에게 공식적으로 팀을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PSV 아인트호벤은 히딩크 감독이 85년부터 90년까지 사령탑을 맡아 리그챔피언 우승 3번, 네덜란드컵 우승 3번 등을 일궈놓은 팀. PSV 아인트호벤은 오래 전부터 히딩크 감독이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었다.

장학만기자

입력시간 2002/06/21 21:46


장학만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