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 즐겁다] 강화 전등사·정수사

숲에 숨고, 절집 마당 가득 바다를 품고…

강화하면 우선 섬이라는 이미지 보다 서울에서 가까운, 볼 것 많은 관광지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1969년 강화대교가 놓이면서 뱃길이 아닌 찻길로 찾아갈 수 있다는 것이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강화대교가 놓이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강화도에서 한양까지는 뱃길로 135리, 그러니까 하루가 꼬박 걸리는 거리였다.

강화도를 섬으로 만든 염하의 빠른 물살과 예성강, 한강, 임진강 세 물줄기가 서해와 몸을 섞으면서 만들어지는 이상해류까지 감안하면 쉽게 떠나고, 돌아올 수 있는 길이 아니었다.

그런 지리적인 요건으로 강화도는 고려시대부터 왕실의 주목을 받았고, 덕분에 숱한 전란의 피해를 입기도 했다. 고려시대 몽고의 침략으로부터 근대에는 서구열강의 식민지 쟁탈전에 이르기까지 외세의 침략이 있을 때마다 강화도는 전란에 휩싸이곤 했다.


■전란의 역사 고스란히 간직한 섬 아닌 섬

강화도의 진산은 마니산(469m)이다. 마니산의 본래 이름은 마리산이다. 마리는 머리가 변한 것으로 우두머리를 상징한다. 강화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는 뜻도 있지만 그 보다는 한반도의 중심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마리산에서 북쪽으로 백두산까지, 남쪽으로 한라산까지 거리가 같다고 한다. 또한 마리산의 정수리에는 우리 민족의 시원을 연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전설이 있는 참성단이 있어 한층 위엄을 풍긴다.

지금도 참성단에서는 단군이 세상일을 마치고 하늘로 올라간 날인 어천절(음력 3월 15일)과 개천절(양력 10월 3일)에 제를 올린다. 1953년부터는 전국체전의 성화를 이곳에서 점화하고 있다.

마리산은 문산리 화도초등교와 동막리 정수사에서 오를 수 있는데, 어느 곳을 택하더라도 40분이면 정상에 설 수 있다.

오름길이 조금 가파르긴 하지만 막상 참성단에 서게 되면 탁 트인 조망에 머릿속까지 상쾌해 진다. 정수사에서 참성단으로 오르는 길은 아기자기한 암릉을 오르내리는 재미까지 덤으로 즐길 수 있다.

넓다란 바위 턱에 걸터앉아 상쾌한 바람을 맞는 기분도 남다른 맛이다.

길상면 정족산에 자리잡은 전등사는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에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강화도를 대표하는 고찰로 보물 넉 점을 품고 있다. 전등사는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삼랑성 안에 자리잡고 있다.

삼랑성의 낮은 성문 안으로 들면 아름드리 수목이 수해를 이뤄 한여름에도 서늘한 그늘이 드리운다. 적어도 수령 300년은 족히 되는 고목들이 만 갈래로 가지를 틔워 만든 숲 그늘이다.

경내는 대웅보전, 명부전, 약사전, 범종, 대조루 등의 당우가 거리를 두고 자리해 오밀조밀한 맛보다는 시원스럽게 터진 느낌이다.

전등사에서 눈여겨볼 것은 대웅전 처마 아래의 벌거벗은 여인상이다. 전설에 의하면 이 절을 지을 때 타지에서 온 도편수가 있어 절 입구의 주막집 여인과 사랑을 나누었는데, 그만 이 여인이 도편수가 번 돈을 훔쳐 도망을 쳤다.

이에 분한 목수가 처마 밑에 벌거벗은 여인상을 새겨 놓아 죽어서도 대웅전 처마를 받드는 고통을 받게 했다고 한다.


■서해일몰을 가슴가득 느낄수 있는 곳

정수사에서 남쪽 해안선을 따라 10분쯤 가면 정수사다. 작지만 깊고 그윽한 분위기에 휘감긴 절이다. 사기리에서 정수사로 올라가는 호젓한 길에서 숲의 향연을 만끽할 수 있다.

정수사로 오르는 계단의 숲 그늘은 한낮에도 어둑어둑하다. 싱그러운 초록잔치를 벌인 숲 터널을 따라 한 계단 한 계단 밟아 오르면 번잡한 속세의 기억은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고 머리가 가을하늘처럼 맑아진다. 그 계단이 끝나는 곳에 정수사가 있다.

신라 선덕여왕 8년(639) 희정선사가 창건했다고 전하는 이 절은 보물로 지정된 대웅전과 연꽃무의 문창살의 뛰어난 아름다움이 자랑이다.

또한 언제나 소슬한 적막만이 감도는 산사의 정취가 마음을 움직인다. 무엇보다 대웅전 마당에서 바라보는 서해 바다가 오래도록 발목을 붙잡는다. V

자로 파여 있는 정수사 계단 길의 숲 사이로 밀물처럼 밀려오는 바다의 고즈넉한 자태는 관조의 미학을 일깨워준다. 굳이 기를 쓰고 바닷가 해안 절벽을 찾지 않고도 바다를 대웅전 앞마당까지 끌어들인 탁월한 감각이 돋보인다.


■길라잡이

서울에서 올림픽도로와 48번 국도를 따라 가면 강화대교다. 강화읍에서 좌회전해 84번 군도를 따라 12km쯤 가면 전등사다.

이곳에서 다시 6km 쯤 더 가면 정수사 입구다. 2시간 정도면 정수사를 들머리로 마리산 산행을 할 수 있다.

정수사에서 마리산을 끼고 도는 해안도로는 수백만평에 달하는 갯벌을 즐길 수 있는 코스다. 장곶돈대에서는 아름다운 석양을 볼 수 있다.

■ 먹을거리

정수사와 이웃한 전등사 입구에는 강화도의 명물인 벤댕이회와 인삼막걸리를 파는 식당이 많다.

벤댕이는 포를 뜬 후 따로 얇게 썰지 않고 그대로 한입에 먹는데, 5월에서 7월 사이에 나는 것이 가장 싱싱하고 맛이 있다.

벤댕이회와 함께 인삼 알갱이가 아삭아삭 씹히는 인삼막걸리를 곁들여야 궁합이 맞는다.

김무진 여행칼럼니스트

입력시간 2002/06/28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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