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의 경제서평] 한국 벤처 현주소 바로보기

■ 한국 벤처 기업가, 벤처 기업가 정신
임현진 서이종 지음
인간사랑 펴냄

벤처 기업은 한국 경제의 새로운 희망이다. 아니 ‘이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우리 경제가 IMF 체제에 진입한 이후 벤처에 대한 관심과 기대는 더욱 높아졌다. 한국 경제가 한 단계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벤처 산업 육성이 절대 필요했고, 그래서 정부는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결과는 어떤가. 각종 ‘게이트’에 벤처는 감초처럼 빠지지 않고 있다. 외화를 빼돌려 외국에서 도박을 벌인 벤처 대표가 구속되기도 했다. 이제 벤처 기업은 온갖 비리의 온상이 된 것처럼 비춰지기까지 한다.

과연 한국의 벤처 기업은 무엇인가. 벤처 기업가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인가. 그들에게서 진정한 기업가 정신을 찾을 수 있는가. 이런 의문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지만, 아직 마땅한 해답을 찾을 수 없다.

이 책은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기초 조사에 해당한다. 우리나라 벤처 기업의 활성화를 위해 벤처 기업가의 사회경제적 특성을 살펴보고 대표적인 벤처 기업가를 인터뷰하여 건실하고 미래 지향적인 벤처 정신의 실태를 조사 연구해 ‘한국 토종의 강한 벤처 기업가 정신’을 정립하기 위한 것이라고 이 책은 밝히고 있다.

벤처 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벤처 기업가가 어떤 사회 경제적 특성을 가졌는지, 어떤 생각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등을 파악하는 것이 가장 기초적이다.

벤처 기업 활성화를 위한 시스템 구축과 체계화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그러한 하드웨어적ㆍ 경제사회적 시스템을 이끌고 운영해 갈 수 있는 소프트웨어적인 대응이며 여기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휴먼웨어 즉 인간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그 부문이 상당히 부족한 편이다. 경제 개혁에 대한 논의에서도, 벤처 기업의 육성에 대한 정책적 학문적 논의에서도 하드웨어적 외형적인 시스템의 구축이나 체계화에 대한 강조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프트웨어적 휴먼웨어적 능력이나 문화가 무시되었으며, 그러한 결과 어느 정도 구축된 제도나 시스템 조차도 합리적으로 운영되지 못하고 부정적으로 악용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 이 책의 기본적인 시각이다.

2000년 10월 정현준 사건, 11월 진승현 사건, 2001년 9월 이용호 사건 등 각종 벤처 게이트는 단기적 치적을 위한 정부지원 정책과 부채고리의 결과로 그러한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경제 사회 시스템이 오늘날처럼 새롭게 변동할 때 소프트웨어적 휴먼웨어적 문화나 능력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강조하고 있다. 장기적인 변동을 저항하기도 하고 지체하기도 하면서 또한 부정적인 영향을 보여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한국 벤처 기업가와 벤처 기업가 정신으로, 벤처 기업가 및 정신에 대한 정의에서부터 시작해 벤처 기업가의 경력과 인적 자원 관리, 벤처 기업의 조직환경 적응, 한국 벤처 기업가의 정신 내부분석 등을 다루고 있다.

2부는 한국 벤처 기업가 정신의 사례로, 10대 벤처 기업의 대표들과의 인터뷰 내용을 싣고 있다. 그 대상은 안철수 연구소의 안철수, 시큐어소프트의 김홍선, 미디어솔루션의 임용제, 리폼시스템의 이상근, 네오웨이브의 최두환, 팬타시큐리티시스템의 이석우, 하우리의 권석철, 노머니커뮤니케이션의 김병진, 아트 오브 테크롤로지의 구본광, 신화인터텍의 이용인 등이다.

연구 대상 벤처 기업가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추출한 총 432개 벤처 기업(비정보통신 부문 99개사 포함) 295명이다. 이들에 대해서는 계량분석을 했고, 대표적 유형의 벤처 기업가 10명에 대해서는 심층면접조사를 실시했다.

몇 가지 특징적인 조사 결과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기술 인력 수준에 대해서는 보통 인력은 넘쳐 나는데, 쓸만한 고급 인력은 없다. 대학 교양과정에서 좀더 과목수가 많았으면 한다. 배낭 여행이든 뭐든 외국쪽으로 많이 보내 보고 들었으면 한다.

문제해결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벤처 기업가들은 기본적으로 정부가 시장환경에 개입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다. 정현준 같은 사람을 양성해 낸 것도 어떻게 보면 잘못된 지원 시스템에서 비롯된 것이다.

벤처 기업은 기본적으로 모험자본이기 때문에 노조에 대해 부정적이다 는 것 등이다. 이번 연구는 한국 벤처 기업과 기업가에 대한 기본적인 조사여서 이 방면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이상호 논설위원

입력시간 2002/06/28 15:35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