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나미의 홀인원] 골프장에서도 '대~한민국'을

한국 축구 국가 대표팀이 강팀들을 연파하며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온 국민이 하나가 돼 ‘대~한민국. 오! 필승 코리아!’을 외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코 끝에 진한 감동이 몰려온다.

요즘 우리 국민들은 열광과 감동의 수위를 넘어 한 동안 한 민족, 한 국민으로서 느껴 보지 못했던 동질감을 느끼고 있는 듯하다. 가정이나 학교, 사무실, 길거리 어디서든 남녀 노소를 불문하고 축구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안정환 선수가 역전 골을 넣는 순간 우리는 옆 사람들을 껴안고 울고불고 또 목이 터지라 “대한민국”을 외쳤다. 흥분이 가라 앉지 않아 새볔 잠을 못잔 우리나라 국민들. 그 열광과 환호와 단결이 하늘까지 닿을 것 같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축구 이야기만 꺼내면 신바람이 나 금방 친구가 된다. 치열하게 경쟁하며 나만을 위해 정신 없이 살아가던 우리들이 축구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마음을 터 놓고 있는 것이다.

축구라는 스포츠의 힘이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대한민국 국민이 모두 붉은 악마가 됐다.

월드컵 열기는 골프계라고 예외가 아니다. 지진이 나도 눈 하나 꿈쩍 안하고 한쪽 눈에 눈곱을 붙인 채 연습장에 나오는 아마추어 골퍼들이 월드컵 축구 경기가 있는 날이면 안 나오는 것을 보며 다시 한번 정말 축구의 힘을 느끼게 된다.

아마추어 골퍼들의 그 열렬한 싱글 욕심을 가라 앉혀 주니 말이다. 그래도 극소수 골퍼들은 ‘이때다 싶어’ 경기가 열리기 직전에 잠시 나와 칼을 가는 경우도 있다.

관중들은 상대 골대에 공을 넣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면서 긴장하고 흥분한다. 축구는 이처럼 11명의 선수가 한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는 공을 따라 바쁘게 움직인다.

이에 반해 골프는 공이 움직이는 시간은 수초에 불과하고 오히려 선수가 움직이는 시간이 훨씬 많다. 그렇다 보니 오히려 마음이 더 차분하게 가라앉게 된다. 그래서 골프는 흥분과 역동성이 축구 보다는 못하다고 할 수 있다.

대신 골프는 정교한 멘탈 게임이라는 특징이 있다. 축구처럼 빠르게 쉴새 없이 움직이진 않지만 한 순간의 정신적 해이도 허용하지 않는 팽팽한 긴장감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축구가 젊은이들의 스포츠라면 골프는 중장년과 여성들의 운동이라 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우리의 ‘영웅’ 거스 히딩크 감독이 골프 핸디캡이 8이라고 한다. 뛰어난 축구 전략에 골프까지 잘 치니 더 멋져 보인다. 아마 축구 선수 출신이라 하체가 발달해 비거리는 많이 나가겠다는 생각이 든다.

히딩크가 골프광이라는 소식이 먼 이국 땅 박세리 선수에까지 들어갔는지 히딩크에게 라운딩 제의가 들어왔다고 한다. 거기에 우리나라 클럽 회사에선 평생 동안 클럽을 대준다는 회사도 있고, 골프계에서도 히딩크의 열풍이 가시질 않는다.

히딩크. 왜 우린 그에 열광하는가? 그것은 우리와 언어나 국적은 다르지만 우리가 못 보는 선수 개개인의 장점을 찾아내 키워내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타이거 우즈가 우승을 한다면 팬들이 코치인 부치 하먼에게 이토록 열광할까.

골프와 축구는 다른 특성을 갖고 있다. 골프는 선수 개개인의 가치를 높이는 개인 스포츠인 반면, 축구는 11명의 선수들을 하나로 조화 시키는 능력을 요구한다. 골프는 개인간의 대결인 반면, 월드컵 축구는 국가간의 자존심을 건 대결이다. 그 만큼 축구는 골프 보다 집단적인 성향을 띄고 있다.

그래선지 응원도 판이하다. 골프장에서 갤러리의 최대 미덕은 조용함이다. 긴박한 상황에서도 말 한마디 못하고 두 손 모아 기도하는 것이 고작이다.

반면 축구는 소리 지르고 환호하면서 즐길 수 있다. 골프보다 축구 응원이 더 강렬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그래도 메이저대회의 마지막 날 마지막 홀에서 박세리의 우승 퍼트는 안정환의 한 골에 버금가는 감동을 준다. 다시 한번 ‘대~한민국’을 외치고 싶다.

박나미 프로골퍼

입력시간 2002/06/28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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