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특집] 여성의 힘이 길거리 응원을 주도한다

10대, 20대 여성이 절대 다수, 열정의 몸짓으로 응원 이끌어

‘한국 여성들이 팔을 걷어 붙이면 안 되는 일이 없다’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지는 축구는 권투와 함께 가장 남성적인 스포츠의 하나다. 그러나 요즘 국내에서는 이런 말이 무색하게 들린다.

전세계를 놀라게 하는 붉은 악마의 길거리 응원전을 하는 관중의 다수가 다름 아닌 여성들이기 때문이다. 여성들의 축구 열기가 그야말로 하늘을 치르고 있다.

서울 시청앞 광장. 경기를 중계하는 초대형 화면 앞에는 수십만 명의 붉은 악마들이 펼치는 열광적인 응원 물결로 온통 흥분의 도가니다.

모두 붉은 티셔츠를 입고 있어 구분이 쉽지 않지만 운집한 관중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절반 이상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중에서도 10대 중반에서 20대 초반의 젊은 여성들이 절대 다수를 이룬다.

이들 열혈 여성 축구 팬들은 얼굴에 페이스 페인팅을 하거나 붉은 두건을 쓴 채 리더의 움직임에 따라 ‘대~한민국’을 연호했다. 우리 선수들의 파이팅을 펼칠 때는 여성들의 높은 톤의 감탄사가 터져 나왔고, 상대 선수들이 공을 찰 때면 ‘안돼!’ 하는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이곳 저곳에서 나왔다.

선수들의 일거수 일투족에 놀라 소리치는 여성들의 외침은 마치 이 곳에 인기 가수의 콘서트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이런 ‘여초(女超) 현상’은 서울 뿐 아니라 전국 모든 길거리 응원 장소에서 똑같았다.

경기장이나 사무실은 모르지만 길거리 응원전 만큼은 남성 보다는 여성들이 더욱 맹렬한 기세를 올리고 있는 것이다.

친구들과 함께 나왔다는 S여대 2학년 박소현(21)양은 “젊은이들이 마음껏 외칠 건전한 축제의 장을 갖지 못했는데 이번 월드컵이 이런 기회를 마련해 줬다”며 “학과 친구들도 학기만 시험이 있는 데에도 함께 모여 대표팀을 응원하면서 그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풀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대표팀의 일취월장의 성과를 거두면서 젊은 여성 뿐 아니라 젊은 미시족을 포함한 아줌마 군단까지 응원전에 적극 가담하고 있다.

요즘 길거리 응원 장소에 가보면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아줌마 응원단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일부 미시족들은 동창회나 계모임을 아예 월드컵 단체 응원과 맞춰 음식점이나 호프집을 대여해 단체 응원전을 펼치기도 한다.

성신여대 심리학과 홍대식 교수는 “여성들은 남자에 비해 감성적이고 감각적인 심리 성향을 갖고 있어 심리 진폭이 크기 때문에 월드컵 같은 국민적 축제에 쉽게 도취될 수 있다”며 “이런 현상은 10대 초반부터 발현돼 10대 말에 절정을 이룬 뒤 내재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이 것이 일시에 폭발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홍 교수는 “여성들은 남성보다 더 큰 심리적 영향을 받기 때문에 한국팀이 패하거나 월드컵이 끝난 뒤에는 정서이론학적으로 반대지성이 작용해 한동안 허탈감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송영웅 기자

입력시간 2002/06/29 17:47


송영웅 heroso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