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를 벤치마킹하자] 인터뷰/헤인 데 브리스 네덜란드 대사

"관료적 타성, 리더십 부재 개선 시급"…축구·히딩크 향한 열정에 감동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붉은 악마보다 더 열심히 한국 축구 국가 대표팀을 응원한 외국인 있다면 헤인 데 브리스(52) 주한 네덜란드 대사이다. 데 브리스 대사는 한국 팀이 승리하자 태극기를 흔들며 그라운드로 직접 뛰어 내려가는 등 마치 자신이 대표 선수들을 지도한 것 처럼 기뻐했다.

한반도 최초의 남북한 공동 대사를 맡고 있는 데 브리스 대사는 지난해에 이어 월드컵 대회가 열리기 직전인 올 5월초 북한 평양을 방문, 네덜란드와 북한의 경제협력 방안을 협의하고 돌아오는 등 한반도 정세 변화에 정통한 외교관으로 꼽힌다.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14층 대사관, 그의 사무실엔 한 쪽 벽면을 가득 메우는 대형 한반도 지도와 ‘남북통일’이라고 쓰인 액자가 방안 분위기를 압도했다.


경제개방 통한 새로운 시스템 도입 필요

데 브리스 대사는 6월 22일 주간 한국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경제성장을 더욱 가속화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경제개방에 대한 피해 의식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데 브리스 대사는 특히 “1970년대 성장중심의 경제개발은 한국인들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이룩한 성과로 볼 수 있지만 외환위기 이후 한국은 경제개방을 통해 새로운 시스템의 도입으로 또 다른 경제도약의 시대를 맞았다”며 “한국 축구가 ‘거스 히딩크’라는 세계적인 축구 조련사를 영입해 이룩한 성과처럼 한국경제가 새로운 도약을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경제개방에 대한 피해의식을 접고 체력과 내부시스템의 변화를 꾀할 수 있는 리더십 있는 비전과 이를 구체적으로 실행으로 옮길 수 있는 경험 있는 선진 노하우가 접목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오랜 기간 경험과 노하우를 축적한 네덜란드가 한국의 새로운 경제도약을 위해 ‘히딩크 효과’처럼 도움이 될 수 있는 창구가 되길 기대한다”며 “현재 양국간의 경제 협력관계를 한층 심도 있게 모색하기 위해 각종 방안들을 추진 중에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국내 네덜란드 경제인을 중심으로 회원 120명이 등록된 ‘더치-한국 비즈니스 클럽’의 정규 멤버로 매달 한 차례씩 열리는 정례회의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있다.

한국과 네덜란드의 경제협력 방안을 기업차원에서 논의하는 이 회의에 히딩크 감독도 연사로 나올 만큼 친화력이 높은 국내 유일한 네덜란드 비즈니스 모임이다.

데 브리스 대사는 또 일관성 없는 경제정책과 관료적 타성, 지역간의 배타주의, 정치 리더십 부재 등을 한국이 아시아의 비즈니스 중심이 되기 위해 시급하게 개선해야 할 조건으로 지적했다. 반면 훌륭한 인적자원을 비롯해 지정학적 이점과 제조업 기반ㆍ정보 산업의 경쟁력은 주변 어느 국가보다 우위에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팀 승리 기원 휘장 내걸어

데 브리스 대사는 네덜란드 대표 축구 팀이 이번 한일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탈락, 한국에서 경기를 볼 수 없어 아쉬움이 컸지만 한국 축구가 이룩한 4강 신화를 한국인 못지않게 흥분하면서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월드컵 한국전이 열리는 모든 경기에 빠짐없이 찾아가 ‘대~한민국’을 연호해온 그는 이젠 오렌지색깔 보다 빨간색을 더 좋아하는 열렬한 한국축구 팬이다. 네덜란드 대사관은 월드컵 4강을 가리는 한국과 스페인전이 열린 6월 22일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건물 벽에 한국 선수들의 승리를 기원하는 ‘Good Luck(행운을 빕니다)’이란 대형 휘장(16mx13m)을 내걸었다.

그는 “거스 히딩크 감독에 대한 한국민들의 열광적인 응원이 네덜란드에 대한 애정과 관심으로 모아지는데 남다른 감동을 받았다”면서 “한국전이 열리는 경기장 마다 태극기와 함께 네덜란드 국기가 함께 펄럭이는 모습을 지켜보며 가슴 뭉클한 한국민들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에 보답하는 차원에서 수십만 명이 모이는 광화문 교보빌딩 벽면에 한국 승리를 기원하는 휘장을 내걸고 희망의 풍선과 양국국기를 시민들에게 나눠주는 행사를 가졌다.

네덜란드 특유의 오렌지 색깔 바탕에 양국 국기를 나란히 배치한 이 대형 휘장은 데 브리스 대사가 직접 컴퓨터로 디자인한 것이다.

데 브리스 대사는 “대서양을 끼고 있는 로테르담 항구와 스키폴 공항 등 네덜란드가 오늘날 유럽 육ㆍ해ㆍ공 물류의 허브로 자리잡게 된 배경에는 협소한 내수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17세기부터) 해상무역을 통해 오랜 기간 쌓은 ‘열린 시장경제’의 전통과 역사가 있기 때문”이라며 “한국이 동북아 물류 중심지로 탈바꿈하기 위해선 최소 10~20년 이상의 기반 환경조성과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 대장정의 역사가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한ㆍ네덜란드 새로운 도약의 시대 열 것

네덜란드인 하멜이 한국에 첫 발을 내딛은 지 내년으로 꼭 350주년을 맞아 주한 네덜란드 대사관은 양국의 협력과 우애관계를 다지기 위한 각종 행사도 준비하고 있다.

데 브리스 대사는 “미술전 등 양국간의 문화교류 행사와 경제계 주요 인사들이 함께 참여하는 국제 경제 포럼 등을 열 계획”이라며 “350년 역사 속에 묻혀져 있던 네덜란드와 한국의 깊은 인연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새로운 도약의 시대를 맞게 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네덜란드 레이든대 법대를 졸업,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서 근무했으며 프랑스와 캐나다에서 영사 등을 역임하는 등 전문외교관으로 탄탄한 경력을 쌓았다.

한 때 외무부에서 무기판매 정책담당을 맡기도 한 그는 주 아부다비 대사를 거쳐 1999년 주한 대사로 임명돼 올 2월부터 한반도 최초의 남북한 공동대사를 맡고 있다. 가족으로 부인 풀럼 션털씨와 1남이 있다.

장학만 기자

입력시간 2002/06/30 14:04


장학만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