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를 벤치마킹하자] 열광하는 네덜란드 경사 난 고향마을

히딩크 감독 고향 파르세펠츠 한적한 시골마을에 뜨거운 '한국 열풍'

유난히 히딩크 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사는 네덜란드 동부 독일 접경지역의 한적한 시골 마을 파르세펠츠. 거스 히딩크 감독이 태어나기 전부터 히딩크다이크(히딩크거리)라는 이름의 거리가 있었던 이 마을에 역사상 최대의 경사가 났다.

이 마을 중심에 있는 200년 넘은 건물 1층의 피에르체(작은 깃털)라는 펍은 6월 18일 히딩크 감독의 형 한스를 비롯해 한국과 이탈리아전을 관전하는 동네 사람들로 가득찼다.

이 펍의 외벽에는 종업원 헤르트얀 툰터씨가 인터넷에서 다운받은 “우리는 guss을(히딩크 감독. guus는 guss의, 을은 를의 오기) 사랑한다”는 표어가 한글 그대로 쓰여 있었고 역시 인터넷에서 다운받은 뒤 손수 그린 태극기도 걸려있었다.


한국기자에 “오, 히딩크”환영

마을 사람들은 한국팀이 초반에 실점하자 조용하게 지켜봤으나 승리한 뒤에는 파티를 열었다. 툰터씨에 따르면 마을 사람들과 경기를 보던 히딩크 감독의 형 한스씨는 동생이 어린시절 “모든 것을 잘 받아들이는 타입이었다”고 말했다.

마을 중심가에 들어서자 지나가던 행인들은 한국에서 온 기자를 보고 “오, 히딩크”라며 반갑게 맞아줬다. 이 마을에 사는 히딩크 감독의 부친 헤레트 히딩크(85)씨와 모친 요프 히딩크는 예고도 없이 찾아간 기자를 반갑게 맞았다.

이 마을의 초등학교에서 30여년간 교편을 잡다가 23년 전인 1975년 교장으로 은퇴한 부친은 프로팀이 없었던 젊은 시절 이 마을 아마추어팀의 레트프윙으로 뛴 축구선수 출신이다. 아들 6명에게 모두 축구를 가르쳐 3남인 히딩크 감독을 비롯해 5남 르네, 6남 카렐 등 3형제가 이 지역 프로팀인 드그라프샤프팀에서 한꺼번에 뛰기도 했다.

헤레크 히딩크씨는 “그 아이(히딩크 감독)는 어린시절 축구를 매우 잘했다. 그러나 ‘축구보다 공부가 우선이다. 축구는 그 다음이다’라고 아들들을 가르쳤다”고 말했다. 그는 히딩크 감독이 자신의 지도대로 공부도 열심히 했고 그 덕분에 영어도 잘한다고 아들 자랑에 신이 났다.

히딩크 감독의 모친 요프는 팔순을 넘긴 요즘도 매일 수영을 하고 있다. 요프는 올 4월 대표팀을 이끌고 스페인에 전지 훈련차 왔다가 집에 들른 아들에게 “너는 할 수 있다”고 격려해줬다고 말했다.

히딩크 감독은 부모에게 “한국 사람들은 매우 좋은 사람들이다”고 말했다고 요프는 전했다. 아들을 만나러 한국에 가지 않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나이가 들어 비행기를 탈 수 없다”고 요프는 대답했다.

히딩크 감독 부모의 집 앞에서 마주친 외가쪽 친척동생 헨리 멀더씨도 형 자랑이 대단했다. “형이 자랑스럽다. 한국팀은 훌륭한 경기를 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한국팀을 응원했다. 한국팀의 선전을 볼 때 형은 훌륭한 트레이너”라고 그는 말했다.


한국팀 선전은 네더란드 국민의 꿈”

히딩크 감독의 인기는 고향을 넘어 네덜란드 전역을 달구고 있었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비록 네덜란드 대표팀이 월드컵 진출에 실패했지만 히딩크 감독이 한국팀을 이끌고 있기에 “우리(네덜란드)는 (한국과) 함께 출전했다”며 환호하고 있다.

“한국의 이번 대회 선전은 한국 국민뿐만 아니라 우리 네덜란드 국민의 꿈이기도 하다. 네덜란드는 본선에 출전하지 못했지만 히딩크 감독이 있으니 우리는 같이 출전한 것이다.

“안경업자로 월드컵대회 개막직전 한국 방문길에 한국 국민의 히딩크 감독과 네덜란드에 대한 애정에 감동해 귀국하자마자 친구인 더블디에게 양국을 이어주는 노래를 만들 것을 제의했던 마이크 스피츠는 이탈리아전 승리 직후 이렇게 말했다.

그는 4일만에 노래를 만들어 이를 취입해 6월 14일 주네덜란드 대사관에서 증정식을 갖기도 했다.

네덜란드 외무부의 로버트 밀더스 아주국장은 한국팀이 이탈리아를 꺾은 직후 김용규 주네덜란드 대사에게 “히딩크 감독이 있으니 우리도 한국의 승리의 기쁨을 조금은 나눌 수 있는 자격이 있었으면 한다”는 내용의 축하편지를 보냈다.

대사관저에서 김 대사 주최로 열렸던 정계 인사들과의 만찬도 예외는 아니었다.

김 대사가 히딩크 감독에게 시민권을 주려는 정부와 국민의 여망을 전달하자 연정(聯政) 파트너인 자유당 지도자 한드 덱스탈은 “히딩크는 절대로 줄 수 없다”며 강경한(?)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경제장관 물망에 오르고 있는 기민당의 헬라 바우트 드로스테 상공위원장과 함께 만찬에 참석한 남편 드로스테씨는 이날 만찬 메뉴에 즉석에서 한국 응원가 가사를 작사해 베사메무쵸 곡에 붙여 노래를 불렀다.


네덜란드 언론, 한국팀에 큰 비중

히딩크 감독과 한국팀에 대한 열기는 언론보도에서 확인되고 있다. 유럽에서는 가장 큰 기사로 꼽히는 독일이나 프랑스팀에 대한 기사보다 한국팀에 대한 기사가 훨씬 더 많이 나오고 있다.

이탈리아전이 열린 18일 아침에 발행된 네덜란드 최대 일간지 디 텔레그래프는 “히딩크에게 경의”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하기도 했다.

또 헤이그의 한국대사관 1층에서 대사관 전직원과 한인사회 대표 등이 모여 응원전을 펼치자 네덜란드 최대의 TV방송인 NOS, 공영방송인 RTL, 상업방송인 NOVA 등 3대 전국TV 방송 취재팀이 취재하기도 했다.

한인 동포들도 신이 났다. 네덜란드 이민 20년이 넘는 이들은 이민생활을 통틀어 요즘처럼 기쁜 때는 처음이라고 입을 모았다.

홍순용 한인회장은 요즘 네덜란드 언론의 인터뷰 요청에 응하느라 개인사업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을 정도였으며 이탈리아전 승리 직후에도 1시간 동안 현지 매체들과 인터뷰를 했다.

로테르담에서 선박 수리업을 하는 이욱현씨는 “경기직후 차창 밖으로 태극기를 들고 달리니까 이른 본 현지인들이 자동차 경적을 울리며 축하했다”고 전했다.


“히딩크가 자랑스럽다”

히딩크 감독에 대한 평가도 급상승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축구영웅으로 바르셀로나팀 감독을 역임했던 요한 크루이프는 방송에 출연해 “한국팀을 지도한 히딩크가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독일 영국 벨기에 스페인 등 유럽의 축구강국에서 활동중인 100여명의 감독을 배출한 축구아카데미가 소속돼 있는 네덜란드 왕립축구협회(KNVB)의 허먼 푸스 홍보실장은 “히딩크는 가장 능력있는 선수를 가장 알맞는 포지션에 기용하는 뛰어난 매니저”라고 칭찬했다.

축구전문기자 출신인 푸스 실장은 “그는 선수로서는 최고의 선수는 아니었으나 롱패스 전문의 훌륭한 미드필더였으며 페널티킥의 경우 100개중 99개를 성공시킬 정도의 달인이었다”며 “한국팀을 맡아 세계적인 수준으로 이끌었기 때문에 여러 유명구단에서 영입제의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PSV 아인트호벤의 해리 반 라아이지 회장이 포르투갈전 직후 전화로 축하를 했다는 언론보도를 볼 때 월드컵대회가 끝나면 아인트호벤 감독을 맡을 가능성이 높다”며 “그러나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이 올 4월 폰 하나험 감독을 영입해 2004년 유럽컵 대회까지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당분간 히딩크 감독이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을 맡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네덜란드=연합

입력시간 2002/06/30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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