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 + 美] 한계를 넘나드는 절제의 美

현대인들은 옷을 구입할 때 디자인이나 색상 중 어느 한쪽에 자신의 개성과 취향을 더해 선택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은 어떨까?

다소 단조로운 색상으로 이루어진 그림이더라도 정확한 묘사 또는 과감한 형태의 분할에 시선을 빼앗기거나 알아볼 수 없는 형태지만 화려한 색채에 매혹되기도 한다.

20세기를 여는 화가들은 고전주의의 자연의 모방이나 재현에서 벗어나 형태 혹은 색채로써 자신의 자유로운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형태에 의해 주관적인 해석을 하던 화가가 피카소라면 강렬한 색채로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은 화가는 마티스라 할 수 있다.

프랑스 화가인 마티스가 활동하던 시기의 유럽은 새로운 문물과 이론들로 충돌과 조화가 일어나던 때였다. 비행기와 지하철 등 과학과 산업의 발달에 아울러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니체의 철학 등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만 생각했던 절대적 진리에 변화를 가했다.

이에 예술계에도 본능적이고 자유로운 상상력에 창조의 의미를 부여했던 것이다.

“대중의 얼굴 앞에 물감냄비를 던진 것 같다” 라는 미술 평론가의 야유와 거친 색채 표현이 야수와 같다는 조롱 속에서 태어난 ‘야수파’의 대표적 화가였던 마티스는 즐거운 소재를 감각적인 색채로 강렬하고 밝게 표현했다.

위의 ‘춤’은 ‘음악’이라는 작품과 함께 한 러시아 무역상이 당시 모스크바 부르주아를 계몽하고자 하는 의도와 함께 그의 저택에 장식할 것으로 의뢰 했던 작품이다.

마티스는 초기의 다양한 원색의 사용을 ‘춤’에서는 극도로 절제해 표현하고 있다. 그가 언급한 것과 같이 ‘땅의 녹색 중 제일의 녹색’과 ‘하늘의 푸르름 중 가장 푸른색’은 나부들의 율동에 강한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마티스가 평상시 좋아하던 아라베스크 무늬를 연상 시키는 춤추는 나부들의 둘러싼 원과 강렬하고 단순한 색채의 조화에서 아름다운 인생의 기쁨이 넘실거리는 환희를 본다.

장지선 미술칼럼니스트

입력시간 2002/06/30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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