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축구 공은 둥글다

축구공은 럭비공과 다르게 둥글다. 공이 가는 방향은 차기 따라 일정 할 터인데 그렇지 않다.

프랑스가 20세기 마지막 월드컵을 차지 했을 때인 1998년 프랑스 지성의 전형이란 자크 아탈리(미데랑 대통령 특별 보좌관, 세계 최초의 인터넷 은행인 플래닛 뱅크 총재)는 미래를 읽기 위한 ‘21세기 사전’을 냈다. 물론 축구에 대한 예측도 담겨 있다.

“축구는 축구계 스타가 되고자 하는 희망을 품은 전세계 소년들에게 사회분위기를 진작시키는 특별한 수단이 필요 없는 도구다. 축구는 가장 고차원적인 산업으로 발전할 것이다. 축구팀은 전세계에 많은 클럽을 보유한 다국적 기업의 소유물이 되고 미래에는 필요에 따라 이 팀 저 팀을 옮겨 다니는 선수들의 집합체가 될 것이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보는 볼 거리로 남으려면 더 폭력적이고, 더 빠르고, 더 극적이어야 한다. 경기 시간은 좀더 짧게 쪼개지고 골을 더 많이 넣을 수 있도록 경기 방식이 개편될 것이다. 경기 규칙은 미식 축구나 럭비와 비슷해질 것이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처음 열린 한ㆍ일 월드컵은 아탈리의 예견의 일부만 적중된 채 미식 축구나 럭비보다 오히려 축구(football)의 바람을 미국 한국 중국 아프리카에 불러 일으켰다.

20세기 챔피언인 프랑스 팀 선수들은 아탈리 예측처럼 여러 구단에서 돈벌이를 하다 지친 몸으로 한국으로 와 예선에 탈락했다.

특히 미국에서는 아탈리의 예측과 달리 이번 월드컵은 세계 초대국인 미국이 여러 나라와 같이 살아가는 길을 이번 축구를 통해 알게 된 계기가 됐다.

‘축구의 정치학’, ‘축구는 전쟁이 아니다’는 칼럼이 등장했다. 윌리엄 사파이어는 뉴욕 타임스의 칼럼니스트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 때 스피치 라이터였던 그는 정치인, 학자, 저명 인사들이 쏟아내는 말 들의 어원, 그 사용 이유를 쫓아 정치의 내면을 밝혀 내고 있다.

‘사파이어의 정치사건’은 1968년에 출간된 이후 93년까지 세 번이나 개정됐다. 사파이어가 미국이 독일에게 8강전에서 패하고 한국이 스페인을 물리치기 직전인 6월 24일 ‘축구의 정치학’이란 색다른 칼럼을 썼다. 그는 사커(Soccer)라고 미국에서 부르는 축구는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futbol’로 불려야 한다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커는 ‘축구 연합(association football)이란 말 중에서 ‘ss’의 음절을 참작해 만든 것이며 세계 문제에 있어 고립주의를 택하는 사람들이 축구(Football)대신 쓰는 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futball’이라 하는 것은 세계 문제에 미국은 어떻든 개입해야 한다는 믿는 사람의 경우 세계어인 ‘football’이라는 말을 쓰고 싶어 하기에 발음대로 ‘futbal’로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 같은 표현의 차이에서 “고립주의와 개방주의, 토속민족주의와 국제주의의 대립을 느낀다”며 이번 월드컵이 던지는 국제정치적 의미를 찾으려 하고 있다.

그에게 이런 발상을 안겨 준 것은 파리에서 발간되는 영자신문인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지의 칼럼니스트이며 세계 정치문화의 예리한 관찰자인 존 비노커가 6월 20일자에 쓴 “하늘이시여 미국이 지도록 해 주십시오”라는 칼럼이었다.

파리에서 상주하며 칼럼과 기사를 쓰는 비노커는 8강전을 앞둔 시점에 미국이 챔피언이 된다면 예선에서 탈락한 프랑스가 어떻게 대응할까 하는 가상에서 칼럼을 시작했다. 새 챔피언이 된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전 챔피언인 프랑스 대통령 쟈크 시라크에게 전화한다.

“쟈크씨. 이제야 이해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세계에서 초능력자가 아니면서 새 챔피언이 되니 참으로 당신과 같은 친구의 조언과 지혜가 필요하군요. 그래 새 챔피언이란 귀찮은 노릇을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비노커는 상상했다. “이런 미국의 태도라면 세계각국은 모두 반미 주의자가 되고 일부는 미국에 기대어 은총이나 자비를 바랄지 모른다. 도대체 아직도 브라질 축구의 섬세하며 공격적인 축구와 독일의 끈질긴 자기절제의 훈련이 강한 축구를 모르는 미국이 어떻게 챔피언이 될 수 있었을까? 좋은 게임을 해야만 세계적으로 축구를 통해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그런데 만약 미국이 엄격한 계획이나 강한 훈련, 건전한 정신 등을 갖추지 못한 채 챔피언이 되어 그 다음에 있을 게임에서는 수비전만 벌인다면 축구는 앞으로 좋은 게임이 될 수 있을까.” 비노커는 “하느님에게 미국의 패전을 빌고 싶다”고 썼다.

사파이어가 탐사 한 바에 의하면 미국 국무부의 고위 관리들도 9ㆍ11 테러의 여진 속에 미국의 축구인 ‘fufbol’의 승리는 기타 다른 ‘football’ 국가에게는 심리적 혐오를 불러 올 것이라고 보고 있다.

사파이어는 기호 언어학자이며 소설가인 움베르토 에코가 밝힌 1978년의 월드컵에 대한 소회를 기억했다. “월드컵이란 전쟁이나 테러라는, 세계에 불안정을 가져오는 사태에 대한 긴장을 골대 저편으로 날려버리는 양식 있는 집단들의 축구공 차기이다.”

월드컵이 둥근 축구공처럼 세계를 대립에서 평화와 화해로 이끄는 묘약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박용배 언론인

입력시간 2002/07/05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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