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과 시민운동, 접근과 참여의 판을 벌이자

자발적 참여 에너지로 넘친 축제 한마당, 시민운동의 방향성 제시

한 달 간 진행된 지구촌 최대의 축제, 월드컵이 우리에게 던져준 충격과 경이는 그야말로 대단했다. 그것은 월드컵이란 지상 최고의 스포츠 이벤트가 보여준 화려한 경기력 때문이 아니라 월드컵으로 인해 생성된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축제의 사건 때문이다.

시민들은 월드컵 경기를 보러 경기장으로 거리로, 광장으로 몰려나왔고, 젊은 세대들은 얼굴과 몸에 다양한 문화적 기호들을 새겨 넣으며 카니발의 문화를 만들어 냈다. 월드컵 경기는 이제 더 이상 텔레비전을 통해서 안방에서 보는 미디어 게임이 아니다.

월드컵 직전까지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시민들이 만들어낸 자발적인 카니발의 문화는 물론 미디어와 문화 자본 그리고 정부의 과잉 담론으로 인해 부풀려진 것도 없지 않지만, 지난 한 달 간 계속된 ‘접근’과 ‘참여’의 열정은 시민사회에 커다란 충격과 도전을 주기에 충분했다.

시민사회, 시민운동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진 한국 사회에서 월드컵으로 인해 확인할 수 있었던 시민들의 참여의식을 어떤 형태로든지 간에 사회적 에너지로 전환하는 노력이 바야흐로 시민운동의 중요한 숙제로 등장했다.

우리는 2년 전 부패정치, 낡은 정치를 몰아내고 시민들의 참여 민주주의를 활성화하자는 ‘총선시민연대’의 열정을 기억한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보았고 부질없는 짓이라고 냉대를 했던 것과 다르게 총선시민연대는 시민들이 공감하는 정치개혁 운동의 청사진을 보여주었고 낙선운동의 표적이 되었던 부패·무능 정치인들 상당수가 고배를 마시는 정치적 빅뱅을 낳았다.

총선시민연대의 정치개혁 운동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절대 다수의 시민들이 이 운동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투표 과정에서 분명하게 자신의 참여 의지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시민없는 시민운동에 경종

한국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어김없이 전국의 거리와 광장에 수백만의 시민들이 모여 격정의 시간들을 보내고 즐거워하는 축제의 장을 만드는 것을 보면서 시민운동은 또 다른 도전에 직면해 있다. 우리 사회에서 시민운동은 여전히 ‘시민없는 시민 운동’이다.

대부분 시민운동 단체들은 전문 지식인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고, 시민들이 체감하고 쉽게 동의할 수 있는 운동들을 개발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물론 시민운동에서 전문 지식인의 역할을 부정할 수 없고, 시민운동에 무관심한 시민들이 참여 민주주의의 의식이 부족하다고 불평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 시민운동은 이제는 좀 다른 시각을 제시할 때가 오지 않았나 싶다. 그것은 아마도 시민운동이 즐거워야 하고, 순수하지만 열정적이어야 하고 시민들의 삶의 신경계를 구체적으로 건드려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월드컵에 대한 시민운동의 대응과 평가는 일방향적이지 않다. 어떤 시민단체들은 월드컵 국가 행사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여 과거처럼 관제 성향이 강한 활동을 하는가 하면, 순수하게 자원봉사의 목적을 가지고 노동 인력을 지원하는 단체들도 있다.

진보적인 몇몇 단체에서는 월드컵에서의 대중 열기는 집단적 히스테리 증세이고, 파시즘적 성향이 드러난다고 비판하기도 하며, 방송·언론 관련 시민단체에서는 월드컵을 보도하는 미디어의 획일성과 상업성을 비판한다.

이렇듯 시민운동 내부에서 월드컵을 평가하는 방식이 다르듯이 월드컵이 만들어 낸 사회 문화적 현상들을 이후의 시민운동으로 어떻게 연계할 것인가 하는 방향도 다르게 나타난다.

그러나 한가지 우리가 동의할 수 있고, 또 동의해야만 하는 전제가 있다면, 아마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의 에너지가 주는 ‘삶의 생생함’이지 않나 싶다. 그것은 경제·정치적인 의지이기보다는 문화적인 의지이다.

동시에 그것은 주로 네거티브한 운동 전략을 가진 현 시민운동의 방식을 포지티브한 전략으로 전환 시키라는 시민들의 권고이기도 하다.


시민들의 친근한 벗으로 거듭나야

시민 없는 시민 운동의 딜레마와 보람되긴 하지만 즐겁지 못한 시민운동의 방식을 개혁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시민운동 자체가 문화적인 의미를 가져야 하고 그 자체가 일상의 축제가 되어야 한다.

시민운동이나 사회운동 단체들이 운동의 목표를 관철하기 위해 전개하고 있는 방식들은 고되고 웃음이 많지 않다. 운동을 진행시키는 과정도 대단히 관성화 되어 있다.

시민운동이 시민들과 함께 가기 위해서는 특정한 목적의 달성도 중요하지만 더불어 그 과정이 즐겁고 자기 삶으로부터 소외되지 말아야 한다.

내가 활동하고 있는 문화연대는 월드컵 기간에 나타난 사회 현상들을 꼼꼼하게 분석하고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의 에너지를 시민운동과 연계할 수 있는 문화사회만들기 프로젝트 정책제안서를 만들었다.

우리의 제안은 월드컵과 연계된 자본과 미디어, 그리고 국가의 흡수과정을 시민운동이 대안 없이 비판하는 차원에서 머무르지 말고, 시민들의 자발적인 열정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전략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문화연대는 세 가지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다. 첫째는 월드컵 시민응원의 메카인 세종로를 차없는 광장으로 조성하고 그 일대를 장기적으로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어 ‘권위의 공간’에서 ‘시민의 공간’으로 전환하자는 ‘공간프로젝트’이고, 두 번째는 젊은 세대들의 자발적인 열정들을 문화적 삶의 에너지로 전환하기 위해 문화 교육운동을 본격화하는 ‘세대프로젝트’이다.

마지막으로는 시민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난장과 신명의 마당을 만들어 주는 ‘축제프로젝트’이다.

월드컵은 단지 하나의 스포츠 이벤트가 아니라 다양한 세력들이 힘을 행사하는 권력의 장이다. 그 안에는 국가의 국민대통합 전략이 있을 수 있고 기업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며 미디어의 치열한 시청률 경쟁이 있다.

그렇다면 시민운동은 무엇을 해야 하나? 뒷전에서 점잖게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냉소적인 무관심으로 일관해야 할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 에너지는 시민운동 단체들이 시민들과 친해지도록 권고하는 아드레날린과 같다. 문제 투성이지만 많을 것을 보게 한 월드컵을 계기로 시민운동이 시민들과 친근한 벗이 되기 위한 매너와 양식, 그리고 대안을 위한 안목을 길러야 할 때다.

이동연 문화평론가 문화연대 사무차장

입력시간 2002/07/05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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