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력왕이 압박왕을 가능케 했다

90분 내내 경기 주도, 세계 축구의 흐름을 바꾼 막강 파워

한국대표팀은 이번 월드컵에서 강한 체력으로 압박하는 선진축구를 구사했다. 선수들은 90분 내내 경기를 뛰고도 흐뜨러지지 않는 강인한 체력을 보여줘 세계 축구계를 놀라게 했다.

히딩크 감독의 마지막 승부수였던 ‘기초체력’ 강화 훈련의 결실이다. 히딩크 감독은 지난해 12월부터 월드컵 개막 직전까지 6개월간 스포츠 의학의 원리를 이용한 집중적인 특별 훈련을 실시했다.

김현철 대표팀 주치의는 “근력과 지구력 향상에 초점을 둔 반복 훈련으로 체력이 단기간 큰 폭으로 향상됐다”며 “개인의 체질을 고려한 운동 처방을 받는다면 일반인의 체력 단련에도 활용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말한다.

한국 대표팀의 체력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히딩크식 체력 강화 프로그램의 핵심을 분석한다.


다양한 속도로 달리기

파워 프로그램의 특징은 속도가 다른 동작을 반복적으로 훈련하는데 있다. 단순한 직선코스에서 실시되던 체력 훈련과는 달리 실제 경기에서 주로 나타나는 선수들의 동선을 응용한다. 체력 훈련과 함께 실전 감각도 높일 수 있도록 고안됐다.

동작에 변화를 주면 다양한 근육과 관절에 자극을 줘 신체를 균형있게 발달시킬 수 있다. 선수들은 공수 전환시 움직임을 고려한 지그재그형과 센터서클을 중심으로 수비와 공격을 오가는 일직선형, 경기장 중심에서의 대각선 이동 등 다양한 코스를 뛰며 체력을 다졌다.

또한 실제로 훈련에서 실전에서 공을 가졌을 때와 공과 멀리 떨어져있을 때 등 상황에 따라 선수들에게 요구되는 스피드가 서로 다른 점을 감안해 걷기와 가볍게 달리기, 전력질주 등 속도가 서로 다른 움직임을 반복했다.

예를 들면 ‘걷기→가볍게 달리기→전력 질주→다시 걷기’를 반복하는 방식이다. 단순해보이는 프로그램이지만, 강도 높은 운동을 장시간 지속하는 것보다 체력 향상에 효과적이다.

선수들은 이외에도 팔 뻗고 쪼그려 앉아 뛰기, 등을 맞대고 상대 밀기, 어깨잡고 밀어붙이기, 뛰어 올라 가슴 밀치기 등의 동작을 훈련했다. 이런 훈련은 강한 몸싸움에서도 밀리지 않도록 다양한 부위의 근력을 단련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튼튼한 심장을 만드는 미니 축구

히딩크의 모든 체력 강화프로그램은 순발력을 높이는 동시에 피로회복 시간을 단축시키는 데 목적을 둔다. 3~4분간 경기를 치른 뒤 휴식시간을 단계적으로 줄여나가는 3대3, 4대4 미니축구는 이런 강화프로그램의 요체를 잘 보여준다.

좁은 공간에서 6~8명의 선수를 뛰게 해 회복시간 없이 줄기차게 움직이게 한다. 경기시간은 매회 30초씩 늘려가는 반면, 휴식 시간은 처음 1분에서 매회 10초씩 줄여나간다.

이때 주의할 점은 휴식시간과 심박수를 정확하게 체크해야 한다는 것이다. 심박수는 체력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운동 후 심박수가 회복되는 속도가 빠를수록 체력도 좋다.

220에서 자신의 나이를 뺀 수가 1분간 최대 심박수다. 보통 최대 심박수의 60∼70% 범위를 넘기지 않는 선에서 운동을 진행해야 한다.


셔틀런의 놀라운 효과

‘20m 구간 왕복달리기’로 불리는 셔틀런(shuttle run) 형식으로 진행된다. 이 훈련은 20m의 거리를 시속 10km로 수차례 반복한 뒤 1km씩 속도를 높여 순간집중력을 기르는 동시에 회복속도를 5초에서부터 점차 줄여나가는 것이다.

속도가 점차 높아지다보니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한 선수는 자동 탈락하는 시스템이다. 출발과 도착 때에 ‘삑’ 소리가 난다고 해서 일명 ‘삑삑이’로 부리는 훈련이다. 수치로 기록되는 특성 때문에 선수들이 가장 부담스러워 했던 방식이다.

셔틀런은 크게 두 가지 형식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어느 선수가 얼마나 많이 반복하느냐를 재는 방식이다. 즉 절대적인 수치를 기록한다.

두 번째는 모든 선수들이 똑 같은 회수를 반복한 뒤 회복되는 신체의 속도를 재는 것이다. 이때는 가슴에 심박측정기를 달고 뛴 뒤 평상시 심박수로 돌아오는 데 걸리는 시간을 측정한다. 전자의 방식은 순간폭발력을 재는 것이고, 후자는 회복속도가 얼마나 향상됐는가를 알아보는 방식이다.

이러한 체력강화 프로그램은 단계별로 3일을 주기로 하되 경기 전후 2일씩은 체력 훈련을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기존 트레이닝 방법과 크게 다를 것이 없지만, 과학적인 체력테스트 결과를 토대로 반복 행동의 시간 간격을 좁혀 운동 효과를 극대화했다.

대표팀 파워 식단…역시 밥이 보약
   

‘역시 밥이 보약이다’

축구 국가대표팀의 ‘무쇠’ 체력이 원동력이 된 파워 식단은 알고 보면 지극히 평범했다. 쌀밥이 중심이 된 토속 음식들로 특별한 것은 없다. 쌀밥, 미역국, 생선구이, 김치 등 일반 가정식 그대로다.

신현경 국가대표팀 영양사는 “밥과 기름기 적은 담백한 반찬으로 구성한 일반적인 식단”이라며 “일반인들이 기대하는 것처럼 기상천외한 영양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일반 식단과 차이점이라면 탄수화물의 비율이 조금 더 높다는 점이다. 평상시에는 탄수화물의 비율이 60% 정도로 일반인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지만, 경기 3~4일 전부터는 70%까지 올린다.

90분 내내 그라운드를 누비는 가장 중요한 에너지원인 글리코겐을 최대한 축적시키기 위해 탄수화물을 집중적으로 섭취하는 것이다.

백반을 기본으로 국수전골, 스파게티, 감자요리 등이 자주 등장하는 것이 대표팀 식단의 특징이다. 특히 한국인의 주식인 쌀은 빵의 주원료인 밀보다 더 풍부한 탄수화물 공급 효과가 있어 애용된다.

기름기가 많은 육류는 가급적 피하게 된다. 긴장해 있는 선수들에게 부담이 되거나 민첩한 몸놀림에 방해가 되기 쉽기 때문이다.

조리법의 기본은 맵고 짠 자극적인 맛을 줄이는 것이다. 예를 들어 김치도 표고버섯을 넣어 맵지 않게 만들고, 생선도 양념이 들어가는 조림보다는 담백한 구이로 요리한다. 한 끼 식사 비용은 보통 1인당 2만원 정도이다.

물론 가격에 상관없이 최대한 신선하고 좋은 재료를 선택한다. 국산과 자연산 재료를 쓰고 통조림 등 장기보관 재료는 절대 쓰지 않는다. 올갱이는 반드시 맑은 민물에서 자란 것을 구입하고 느타리버섯은 잎이 피지 않고 단단한 것을 쓰는 등 무척 까다롭게 고른다.

보양식도 있다. 훈련중일 때는 지치고 입맛이 없는 선수들의 식욕을 돋구기 위해 장어구이나 가재 요리 메기매운탕 등의 스태미나식을 준비한다.

인삼이나 동충하초 등도 선수들의 몸 컨디션에 따라 적절히 곁들인다. 음료는 이온음료를 주로 섭취한다. 많은 양을 한꺼번에 마시기보다 여러 번에 나눠 천천히 들이키는 것이 좋다.

대표팀의 이러한 식단 구성은 체력 소모가 많은 운동 선수는 일반 가정의 기본 식단으로도 권장할만 하다. 신 영양사는 “탄수화물 비율이 낮추고 나물 반찬 등을 곁들여 먹으면 일반인들의 건강 식단으로 이상적”이라고 말했다.

 

 

배현정 기자

입력시간 2002/07/05 16:44


배현정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