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의 문화읽기] 추리소설의 문화적 재조명

하루에 두 경기씩을 치르던 월드컵 조별 리그가 끝나면서, 별다른 이유 없이 추리소설을 손에 들기 시작했다.

축구공을 좇아 다니던 눈길이, 사다 놓기만 하고 읽지 못했던 책들 사이에서 셜록 홈즈를 발견했던 것이다.

그때 추리소설을 손에 집어든 것은 꽤나 적절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다. 책 읽고 글 쓰는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사람에게, 추리소설은 월드컵 후유증을 가볍게 건널 수 있는 고마운 징검다리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추리소설의 팽팽한 긴장감이 축제 이후의 일상으로 전달될 수 있기를 바라는 무의식적인 소망이 작용했는지도 모르겠다.

주관적인 판단이 될 수도 있겠지만, 추리소설에 대한 관심이 확대·심화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최근 들어서 추리소설의 고전들이 다시 번역되어서 전집 형태로 출간되고 있다.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 전집,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전집, 모리스 르블랑의 아르센 뤼팽 전집 등이 모두 2002년에 출간되었다.

30-40대 중장년층의 복고적인 감수성과 인터넷을 통해서 축적된 추리소설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고 있는 문화적 현상으로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또한 고전적인 추리소설의 출간이라는 현상은 추리소설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의 변화를 보여주는 징후이기도 하다.

추리소설이 대중의 기호에 영합하는 단순한 문화적 상품이 아니라 자신의 기원과 역사를 가지고 있는 문화적 양식이라는 인식이 없다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

추리소설에 대한 뛰어난 견식을 가지고 있는 전문적인 마니아들도 존재하겠지만, 일반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우리는 지금 추리소설을 고전에서부터 다시 학습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1980년대 이후로 시기를 제한해서 살펴본다면, 한국에서 추리소설은 두 가지의 역사적 계기를 갖는다. 하나는 서울 지하철 2·3·4호선의 개통과 함께 여러 스포츠신문이 생겨났던 1980년대 중반이다.

당시의 스포츠신문들은 시장점유를 위해서 선정성을 강화하는 전략을 택했는데, 스포츠신문의 연재소설로 흡수되는 과정에서 추리소설은 추리는 없고 치정과 살인만 있는 세미 포르노 물의 성격을 띠었다.

추리소설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극복할 수 있는 계기는 다른 곳에서 주어졌는데, 1990년대 중반 이후 일반화된 인터넷이 그것이다.

인터넷은 만화·무협·추리소설 등과 같은 하위문화양식의 생산·수용·유통 과정을 혁신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퀴퀴한 냄새가 나는 만화방에서 라면이나 자장면을 먹으며 개인적으로 즐기던 추리소설의 독자들이 수평적으로 소통하게 되면서 문화적인 자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뚜렷한 변화이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예술의 규칙에서 예술이 안정적인 제도로 성립되기 위한 두 가지의 조건을 제시한 바 있다.

하나는 작품의 물리적인 생산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해당 예술에 대한 문화적인 신념이 재생산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작품을 계속해서 생산하는 동시에, 작품을 수용해야 하는 이유를 사회적·문화적인 차원에서 입증하고 설득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한국에서 추리소설은 지속적으로 생산되었고 또한 많은 외국 작품들을 번역해왔던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추리소설의 문화적인 가치를 입증하는 데는 전반적으로 무관심했거나 힘에 부쳤던 것이 사실이다.

최근 들어서 추리소설의 문화적·문학적 가치를 입증하는 노력들과 자주 만나게 되는 것은 하나의 기쁨이다.

셜록 홈즈에 대한 기호학자들의 글을 모아 놓은 논리와 추리의 기호학이나, 맑스주의 경제학자 에르스트 만델의 ‘즐거운 살인-범죄소설의 사회사’ 등은 추리소설의 문화적인 의미가 얼마나 다양하며 심층적인가를 한눈에 보여준다.

또한 국내에서는 대중문학연구회가 추리소설이란 무엇인가라는 공동작업을 선보임으로써 추리소설에 대한 학문적인 접근 가능성을 타진한 바 있고, 추리소설의 장르적인 특성에 대한 석사논문과 한국추리소설의 대부인 김래성에 대한 박사논문이 발표되기도 했다.

그리고 최근의 보도에 의하면 추리소설 전문지인 계간 미스터리가 출간된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린다. 추리소설에 잠재되어 있는 다양한 문화적 가능성들이 역동적으로 분출하는 장이 되길 바란다.

김동식 문학평론가

입력시간 2002/07/11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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