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확 달라지고 있다·上] 직급파괴…눈빛이 달라졌다

업그레이드 위한 변화의 바람,토털 세일즈맨 시대 도래

은행권이 다시 흔들리고 있다. 그 흔들림은 시중은행간 ‘규모의 경쟁(인수합병)’ 과 ‘범위의 경쟁(사업다각화)’ 으로 서로 엇물려 은행권에 또 한 차례 격변의 회오리를 몰고 올 전망이다.

최근 서울은행 인수 우선협상 대상자를 선정하는 입찰 전에 하나은행이 팔을 걷어 붙인 채 달려들고 있다. 신한과 한미은행 간의 합병론이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우리와 조흥은행은 7월 업무 프로세스 효율화를 위한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서두르며 민영화 작업에 가속페달을 밟고있다.

국민은행은 주택과의 합병이후 두 은행간 본격적인 데이터 베이스 공유를 위해 9월 IT통합을 서두르고 있다.

또 한미ㆍ신한ㆍ국민ㆍ조흥은행 등은 앞 다퉈 대금업 등 신규사업 진출을 앞두고 시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7월 증시랠리를 맞고 있는 은행권은 지난 3년간의 변화 속에서 또 한 단계 업그레이드를 위한 변화를 모색중이다.


구조조정 3년, 은행원은 뛴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6월29일 동화ㆍ동남ㆍ대동ㆍ경기ㆍ충청은행 등 5개 부실은행의 퇴출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시작된 은행 구조조정이 급물살을 타면서 보람-하나은행에 이어 상업-한일은행 합병, 제일은행 매각 등 은행권에 거센 지각변동 소용돌이가 몰아친 지 3년째를 맞았다.

대우와 현대 등 재벌해체를 통해 재계를 풍미하던 대마불사의 전설은 무참히 깨졌고 은행권에도 지난 3년간 평균 점포 수가 40% 줄었으며, 절반 이상의 은행원들이 직장을 떠나는 초유의 이직현상이 벌어졌다.

금융위기로 촉발된 구조조정 열풍은 경제ㆍ사회 전체에 몰아 닥쳤고 그 격변의 소용돌이속에서 은행권은 어느 산업, 어느 업종 보다 빠른 변화에 깊은 속살까지 노출됐다.

2002년 7월 은행원에 대한 이미지는 3년 전과 큰 차이를 보인다. 사회 조직체계에 순응하며 변화의 흐름에 항상 맨 끝 줄에 서있던 보수성향의 ‘넥타이 부대’ 은행원. 책상에 기대앉아 찾아오는 고객만을 맞이하던 그들이 이젠 가방을 들고 ‘돈 냄새’가 풍기는 고객을 찾아 직접 나서는 적극적인 세일즈맨으로 옷을 바꿔 입었다.

고유한 흰 색 셔츠는 푸른 색 줄무늬로 개성을 살렸고, 고객에게 내미는 명함도 밋밋한 은행 명함과는 다른 눈에 띄는 독특한 디자인의 개인 명함이다.

또 자신에 대한 소개 역시 과장이나 대리라는 직책보다는 전문성을 앞세운 ‘기업금융 영업전략 RM(Relationship Management) 담당자’ 혹은 ‘소비자금융 개인자산관리사 PB(Private Banker)’란 직함엔 자신감이 배어난다.

이들의 공통 관심사는 더 이상 금리와 환율에만 눈길이 머물지 않는다. 각 종목별 주가의 흐름은 기본이고 선물 추세와 지역별 부동산 매물, 다양한 보험상품, 세무관련 지식 등에 이르기까지 요즘 은행원들의 최대 관심사는 ‘금융의 메가 트렌드’다.

7월 6일부터 토요 휴무제를 타 업종보다 먼저 시작한 은행권의 주말은 이를 반증하듯 빠듯하기만 하다. 각 은행마다 급변하는 금융시장의 환경에 맞는 각종 교육프로그램을 개설하는 것은 물론 재무설계사(AFP)ㆍ공인 재무설계사(CFP)ㆍ공인중개사ㆍ회계사 등 특정업무와 관련한 자격증을 따기 위해 치열한 땀냄새가 묻어난다.


전문화에 초점 맞춘 기능확대

은행의 변화를 이끄는 바람은 먼저 내부 조직에서부터 불어온다. 은행 내 새로운 조직 명과 세분된 업무 명칭은 이곳이 시중은행인지 기업인지 때론 낯설 정도다.

론 리뷰팀, 기업 컨설팅팀, 워치 리스트팀(우리은행), e-금융부(조흥은행), 리테일 심사팀(서울은행), 영업점 리 엔지니어링 팀, 디시전 사이언스부(제일은행), 준법감시부(국민은행)등. 은행 내 기존 기능별 조직구조가 사업부제로 바뀌면서 팀 별 운용체제가 전체 은행 조직의 골간으로 이미 자리를 잡았다.

중간 조직들의 기능확대와 전문화도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그만큼 팀제 중심의 조직개편을 통한 허리보강이 강화됐다.

특히 사업목표가 설정되고 각 사업부별 달성 목표가 세워지면서 업무의 효율화와 수익중심으로 은행의 체질변화가 빨라지고 있다. 축구경기에서 ‘중원 선점’이 승부처가 되듯 은행도 승부수를 중간조직에 건 셈이다.

각 은행마다 소유와 경영분리를 위한 금융 지주 회사제 도입도 이미 대세로 자리잡았다. 은행부실을 털기 위해 ‘공적자금을 먹는 하마’로 불리던 정부를 주인으로 둔 일부 은행들은 조직개편과 사업 경쟁력 향상을 통해 주가를 끌어올려 새 주인 찾기를 위한 지주회사설립에 먼저 나섰다.

세계적으로 은행들이 대형ㆍ겸업화 하는 추세 속에서 금융지주회사제 도입은 은행ㆍ증권ㆍ카드ㆍ자산운용사ㆍ보험사를 망라하는 ‘금융 백화점 시대’의 도래를 예고하고 있다. 또 사외이사제의 도입은 은행경영의 투명성도 강화됐다.

특히 외국인 사외이사가 자리를 꿰차면서 정부의 입김이 센 일부 여신관행을 뒤흔드는 새로운 원칙과 규범을 제시해 신선한 충격파를 던졌다.


영업조직 재구축, 업무구분도 사라져

시중은행 일선 영업지점의 조직변화는 한층 눈부시다. 한 일선 영업지점에서 근무하는 은행직원 수는 10~16명. 그러나 순수 영업에만 매달리는 직원은 고작 3,5명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우리은행은 7월부터 이를 개선하기 위해 각 영업 점들의 후방 사무업무를 전산처리를 통해 본점으로 모으고 각 지점에서는 영업에만 집중하는 대단위적 영업조직 재구축 작업에 나선다. 한 마디로 전 지점 행원들의 ‘세일즈맨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한 은행의 개별 영업지점에서 이뤄지는 행원들의 직무 분석결과, 전체 업무량 중 30%가 순수영업 사무인 반면 70%는 각종 후방 사무업무로 생산성 저하와 비효율성을 낳는 주요 원인으로 조사됐다.

이에 따라 영업 점에서 해오던 각종 신용조사와 담보평가, 심사, 담보관리, 연체관리 등 후방 사무업무를 본점 센터로 전산이관하고 일선 지점에서는 영업에 전력할 수 있는 사무환경을 조성할 계획이다.

제일은행은 이 같은 영업조직 재구축 작업을 이미 마쳐 시행에 들어갔고 조흥은행 역시 이에 대한 준비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각 은행마다 전문 세일즈맨으로 꼽히는 ‘고객 자산관리사(PB)’ 확보를 위한 재교육은 물론 벌써 스카우트 경쟁이 불을 뿜고 있다.

최병길 우리은행 부행장은 “이젠 영업 지점 어디도 직급파괴는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행원, 계장, 대리, 과장, 차장, 부장 등 누구도 팀원과 팀장으로 분류될 뿐 직위만 있고 업무구분이 사라지는 ‘토털 영업맨 시대’가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장학만 기자

입력시간 2002/07/12 14:31


장학만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