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교전 사태와 한반도] 구멍난 위기관리 능력

체계적 정보관리·합리적 지휘체계·균형적 군 인사 절실

6월29일 서해에서 우리측 고속정과 북한 경비정 사이에 벌어진 교전사태는 3년 전 해군의 '화려한 성공'에 비해 많은 아쉬움이 남는 사건이다.

4명의 사망자를 포함한 20여명의 사상자를 내고 고속정을 잃어버리는 큰 상처를 입은 해군 입장에서는 여론의 질타와 상부의 검열에 대해 몹시 서운한 눈치다.


미국 의존 정보전략에 한계

1999년 연평해전 당시에는 해군 뿐만 아니라 합참의 주요 직위자들과 정보부대 요원, 미군 장성인 연합사 작전부장까지 포함된 500여명이 훈ㆍ포장을 받았다.

전공이 화려할 때는 교전 당사자인 해군 뿐만 아니라 해군의 작전을 도왔다는 명분으로 상급부대와 지원부대, 연합사까지 훈장을 타갔는데 막상 전공이 모호하고 우리 측 피해가 부각되자 해군이 작전실패의 책임을 지고 몰매를 맞고 있다는 볼멘 소리가 나오고 있다.

가장 적은 예산을 쓰는 해군의 경계범위는 가장 많은 예산을 쓰는 육군의 5배가 넘는다. 해군은 경계선도 없는 해상작전의 어려움에 대해 평소에는 모른 채 하더니 이제 와서 실수만 부각시키는 언론과 정치권에 대해서도 섭섭한 모양이다.

1999년 꼭 이맘때인 6월15일, 연평해전은 '6·25 이후 가장 큰 전승'이라 불릴 만큼 일방적인 교전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전승이 아니라 잘 준비된 정보관리와 합리적인 위기대응, 긴밀한 한미공조가 종합적으로 빚어낸 완벽한 승리였다.

특히 해군의 작전을 지원한 신호정보 부대는 교전 당시만이 아니라 이후에도 한국정부 주도로 사태를 처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교전 당시의 신호정보(SIGINT)를 확보하고 있었다.

단순히 현장의 군사정보 만이 아니라 북한군의 의도를 정확히 꿰뚫을 정보전에서의 승리가 연평해전을 승리로 이끈 비결이었다. 군사정보의 태반을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이점이 내심 통쾌했던 것이다. 자신감을 갖고 위기관리를 해 낸 한국정부는 그로부터 정확히 1년 후, 남북정상 간에 '6·15 공동선언'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3년 전에 비해 워낙 갑작스럽게 일어난 이번 교전사태는 그러한 정보가 없었다. 이 때문에 눈치 빠른 언론은 '미국이 북한의 의도적 도발에 대한 증거를 갖고 있을 것'이라는 추정기사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럼스펠드 미국 국방장관은 "북한이 의도적으로 도발한 증거를 갖고 있다"고 발언했고, 미국은 내친 김에 대북 특사파견 계획마저도 유보시켰다. 이제는 3년 전과 반대로 '증거를 갖고 있는' 미국에 한국의 대북정책 기조를 맞춰야 할 판이다.


군 시스템의 경직된 리더십

게다가 이번 교전사태를 둘러싼 각종 논란은 일선 지휘체계에서부터 국가 차원의 위기관리에 이르기까지 누적된 부실에 의해 더욱 증폭되었다.

정부가 이번 사태에 대한 신속한 성격규명과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못하고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는 동안 일부 언론이 제기한 '어민 책임론'을 둘러쌓고 또 한번의 격렬한 편가르기가 나타났다. 우리의 위기관리 시스템이 상황 대처에 유연하고 탄력적인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경직된 모습만을 연출했던 것이다.

햇볕정책에 대한 열렬한 지지자인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차라리 교전 직후 대통령이 확고한 대북 규탄 메시지를 발표하고 전사 장병을 조문했더라면 햇볕정책에 대한 논란은 상당부분 차단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문제는 강경이다 온건이다 하는 대응논리가 아니라 기민한 위기관리의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중요했다는 지적이다.

부시 미국 대통령이 작년 4월 미 해군의 첨단 정찰기가 중국 하이난 섬에 불시착한 엄청난 국가적 손실에도 불구하고 지지도에 타격을 입지 않은 것은 당시 미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는 장면을 내보내고 시시각각 상황을 국민에게 직접 브리핑하는 과정에서 국민의 신뢰를 얻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 같은 안보에 대한 불신이 초래된 근본 원인을 인사문제에서 찾고 있다.

지상작전과 해상작전에서의 작전과 기동의 개념은 현저히 다른 것임에도 불구하고 국방부와 합참의 주요 직위가 육군 출신들에 의해 대부분 장악되어 있는 현실에서 전문성이 요구되는 해상작전에 육군식 '경계개념'을 너무 가혹하게 적용하는 관행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방부 장군 직위자 15명 중 14명이 육군이며, 해군 출신은 한 명도 없다. 합참의 정보, 작전, 전략 3개 본부장을 전원 육군 장성이 맡고 있다. 그나마도 특정지역 출신이나 인맥이 좌우되는 군 인사의 고질적인 병폐가 남아있는 한 군의 시스템이 경직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보다 전문성을 고려한 합리적이고 균형된 인사가 이루어져야 조직의 힘이 발휘되고 위기관리 시스템도 살아난다는 지적이다.


국민에게 안보에 대한 신뢰감 심어줘야

작은 충돌이 커다란 위험으로 발전되는 한반도의 취약한 안보현실에 대한 자각이 먹구름처럼 국민들을 뒤덮고 있다.

정부와 군이 할 일은 국민들에게 자신감과 신뢰를 주는 것이다. 이런 식의 위기관리라면 앞으로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는 사태가 발생할 경우 과연 적절한 대처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국민은 불안하다.

정부와 군은 그 동안 ‘충무계획’이라는 국가 차원의 비밀 시나리오를 통해 발생할지도 모를 북한의 급변에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97년부터 '국지전에 대한 대응 시나리오'도 만들어 나름대로 오늘의 교전사태와 같은 상황에 대처하는 연습도 꾸준히 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군이 상황파악을 제대로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되풀이한다면 국민은 누구를 믿어야 할까. 정치권과 언론의 편가르기에 혼란을 느끼고 있는 대다수 말없는 국민이 가지고 있는 의문이다.

김종대 (평화운동가, 평화네트워크 자문위원)

입력시간 2002/07/12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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