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론 급부상…정치권 뒤집힐까

정가 뜨거운 감자로…정파·정당 이해따라 추진배경 제각각

개헌론이 월드컵 이후 정가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다.

민주당내 비주류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는 개헌 논의의 명분은 현행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최소화할 새로운 권력 구조를 만들자는 것이다.

현행 구조는 국가 권력이 대통령 한 사람에 집중되기 때문에 각종 권력형 정치 부패가 생기고 국민 분열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통령은 통일, 국방, 외교에 전념하고 내정 분야는 내각에 권한을 일임해 책임 정치를 하게 하자는 주장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 방안으로 △4년 중임제 정ㆍ부통령제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 △의원내각제 등이 거론되고 있다.

그간 개헌의 필요성은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학계에서도 공감대를 형성한 지는 이미 오래 전이다. 학계에서도 적지 않은 헌법학자와 사회학자들이 ‘현행 대통령 5년 단임제는 임기 말 레임덕이 불가피하고 책임정치가 안돼 권력 구조를 개편해야 하다’(주간한국 1926호 참조)는 주장을 펴 왔다.

다만 정치권은 자기들의 이해 득실에 따라 또는 정치 일정상의 문제를 들어 개헌을 추진하기 보다는 정치적으로 이용해 왔다.


추진배경에 의구심

그러나 정치권에서 오랜만에 공론화 되고 있는 최근의 개헌론에 대해 상당수가 원칙적으로 공감을 표시하면서도, 추진 배경에 대해서는 ‘정략적인 의도가 담겨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현재 개헌론을 들고 나온 측은 민주당내 비주류 세력들과 자민련, 한국미래연합, 민국당 등 원내 소수 정당들이다.

현재 가장 적극적인 개헌 세력은 쇄신파를 비롯한 친노무현 세력과 당권파에 밀린 민주당 중도파와 비주류들이다. 이들은 현행 권력구조의 문제점을 들어 연내 개헌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개헌론에 첫 물꼬를 튼 사람은 민주당 이인제 전 고문이었다.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사퇴한 이후 침묵하던 이 고문은 5월 김종필 자민련 대표와 박근혜 미래연합대표와의 잇단 회동에서 권력 구조 개편에 대한 공감대를 이끌어 내며 개헌 논의에 불을 당겼다.

특히 박근혜 대표와의 만남에서 이 전고문은 “대통령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돼 폐단이 있다”며 “대통령은 외교와 국방에 전념하고 의회 다수당이 내정을 책임지는 권력 분립형 대통령제로 개헌 해야 한다”고 개헌 필요성을 강력히 주장했다.

당시 이인제 전고문의 주장은 별 주목을 끌지 못해 수면 아래로 잠복했다. 그러나 6ㆍ13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의 참패로 노무현 후보에 대한 재신임 문제가 불거 지면서 다시 부상하기 시작했다.

특히 노 후보 재신임 논란 과정에서 쇄신 연대 등 친노무현 세력에게 이니셔티브를 빼앗긴 비주류와 중도파들이 개헌 문제를 들고 나오기 시작했다.


JPㆍ박근혜 지지, 한나라선 반대

민주당 정치개혁특위(위원장 박상천 최고위원)는 7월 3일 첫 전체회의를 열고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지적하며 ‘현행 헌법상 5년 단임 대통령제를 용도 폐기하고 대통령 선거 전 개헌 추진’을 주장하며 당내 개헌론을 쟁점화 했다.

박 최고위원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개선과 국민 통합형 권력 구조의 구현은 빠를수록 좋으며 대선전 개헌을 검토하고, 차선책으로 대통령 후보의 선거 공약화 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당내 최대 의원 모임인 중도개혁포럼의 정균환 회장도 권력 구조 개편을 주장하며 세를 모으고 있다. 현재 민주당에서는 이인제 고문, 박상천 최고위원, 정균환 총무, 김영배 의원 등이 대선전 개헌을 주장하고 있다.

이런 민주당 일부의 개헌 주장에 자민련 김종필 총리와 김윤환 민국당 대표가 적극적으로 동참 의사를 피력하고, 박근혜 미래연합 대표도 심정적 지지를 보내고 있어 개헌론은 정가의 핫 이슈로 떠올랐다.

그러나 개헌은 쉽게 이뤄질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우선 노무현 후보를 비롯한 민주당 주류와 당권파, 그리고 한나라당의 대다수가 대선전 개헌에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개헌을 하려면 국회에서 ⅔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데 현재 상태로는 불가능하다.

개헌 주장에 대해 한나라당의 이회창 대통령 후보측은 ‘반창(反昌)-비노(非盧) 구도로의 정계 개편을 위한 포석이 불과한 정치적 술수’라며 반대 의사를 밝히고 있다.

5월 28일 주간한국과의 인터뷰에서 “집권하면 개헌 문제를 공론화해 이른 시일 내에 매듭 짓겠다”고 공언했던 이회창 후보도 “대선전에 개헌은 정치적 음모가 담겨 있어 반대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간 당내 개헌론자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입장 표명을 자제해 왔던 민주당 노무현 후보도 최근 “개헌 추진의 취지를 미리 짐작해 호불호(好不好)의 감정을 표시하지는 않겠지만 현행 헌법에도 이원집정부제의 요소가 많이 포함돼 있다”며 개헌론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민주 비주류 ‘정략적 포석’ 시각

따라서 작금의 개헌 논쟁은 민주당 비주류 세력이 정치적 돌파구를 찾으려는 정략적인 포석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6ㆍ13 지방 패배 후 친노무현파를 밀어내는 데 실패해 당내 위상이 급속도로 위축된 이인제 전 고문을 필두로 한 비주류 세력이 개헌을 정계개편의 고리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강하다.

현재 이인제 전고문을 중심으로 한 비주류의 상당수가 JP의 자민련, 박근혜의 미래연합 등을 축으로 반(反)이회창, 비(非)노무현을 표방하는 신당 창당을 모색하고 있다. 그 발전의 동력으로 개헌을 들고 나왔다는 것이다.

친노무현 측인 민주당 쇄신 연대의 한 인사는 “현재 제기되고 있는 개헌 논의는 노무현 후보를 흔들어 당을 뛰쳐나갈 명분을 쌓거나 자신의 정치적 외연을 넓히기 위한 음모적 성격이 다분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개헌 지지 세력들의 태도는 단호하다. 민주당 정치개혁특위는 개헌론이 양당 대통령 후보들과 지도부의 반대에 부딪혔음에도 불구하고 개헌 국민 공청회를 개최하는 등 개헌 공론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박상천 최고위원은 “개헌론은 대통령제를 분권적 대통령제로 바꿔 권력형 부패를 제도적으로 근절하기 위한 것이지 정계 개편과는 무관하다”고 개헌론을 ‘판 흔들기’로 모는 것은 정치 공세라고 반박하고 있다.


8ㆍ8 재보선 결과가 최대 변수

현실적으로 연내 개헌은 쉽지 않아 보인다. 우선 개헌 지지 세력들이 주목하고 있는 정몽준 의원이 연내 개헌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여 4자 연대의 한 축이 합류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도 대선 전에 개헌을 추진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그러나 8ㆍ8 재보선에서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왔을 경우 개헌론은 정계 개편을 촉발하는 발화점으로 살아날 가능성이 높다.

송영웅 기자

입력시간 2002/07/12 17:06


송영웅 heroso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