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에서 보여준 집단 문화의 힘은?

한국이론사회학회(회장 김성국)는 7월 3일 이화여대 인문관에서 ‘월드컵과 신공동체문화’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고 월드컵에서 보여준 응원의 힘과 내용을 분석했다. 다음은 이날 발표된 논문들 중 한상진 서울대 교수(사회학과)와 김종길 덕성여대 교수(사회학과)의 논문을 요약한 것이다.

기고 - 인터넷과 새로운 세대의 특징
   
개방적 신공동체 문화의 탄생
한상진 서울대 교수

‘붉은 악마’는 과거의 집단주의, 애국주의, ‘우리(We)주의’와는 확연히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자기표현에 적극적이고 개방적이다. ‘붉은 악마’라는 공식 명칭, 붉은 색의 셔츠, 그 위에 새겨진 “Be the Reds!”의 문구, 이런 것들은 과거의 획일적 집단문화, 흑백논리, 배타성 등과는 반대되는 것이다.

붉은 악마는 이런 집단주의의 연장이라기보다는 이를 버렸다고 하는 것이 옳다. 대신 그들은 축구 자체를 즐기려는 심미적 관점, 금기와 터부를 넘어서는 가치다원주의, 세계화 시대의 개방적 태도 등 탈인습적 사고 방식을 생활화하고 있다.

도전적 비주류문화 확산

우리 젊은 세대는 오늘날 많은 시간을 온라인 공간에서 보내고 있다. 학생들의 경우, 2001년 12월 현재 초등학생은 88.4%, 중학생은 99.8%, 고등학생은 99.0%, 대학생은 99.3%가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다.

7-19세는 99.3%, 20대는 84.6%, 30대는 61.6%가 인터넷을 이용한다. 그런데 이 공간에서의 인간관계와 가치지향은 실제세계와 매우 다르다. 사실 이번 대규모 거리응원은 이렇게 성장한 인터넷 시대가 대거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으로 나감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온라인 공간의 질서와 관계가 오프라인의 참여방식에 영향을 미쳐 과거의 배타적, 획일적 집단주의와는 다른, 자기긍정의 여유를 갖는 개방적 신공동체문화를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가설을 세워 볼 수 있다.

아울러 인터넷 세대는 근본적으로 탈(脫)인습적이다. 세계화를 통해 다양한 하위문화, 문화적 삶의 양식들을 이들이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세대의 강한 개성과 독립성은 도전적인 비주류문화의 지속적인 유입과 확산을 가져온다.

온라인 공간은 또한 끊임없는 자율적 자기표현의 장이다. 모든 정보, 지식, 감성에 대한 요구는 클릭 한번으로 그 자리에서 충족될 수 있다. 자기억제 대신 자기표출, 금기보다는 개방이 주효한 코드가 된다.

과거의 세대는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하여 현재의 즐거움을 희생하거나 유예하였지만, 인터넷 세대는 근본적으로 미래보다는 현재를 중시하는 특징을 갖는다. 현실세계에서는 사회규범을 의식해야 하지만, 온라인에서는 일단 익명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남의 눈치보지 않고 자신을 표현하면 된다.

온라인 공간에서의 행동은 자기가 결정하는 것이며 그만큼 자기 규제력이 자연스럽게 획득된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온라인 공동체의 천국이라 할만큼 온라인 네트워크가 활발하다. ‘다움’ 사이트에서만 30여만 개의 ‘카페’가 있다.

온라인을 통해 특정 이슈를 쟁점화하거나 대안문화를 건설하려는 네트행동주의가 우리나라처럼 강한 나라는 드물 것이다. 최근 등장한 ‘아바타(Abata) 열풍’에서 드러났듯이, 네티즌들 역시 사이버 공간의 익명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고 싶은 욕구가 크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이것은 온라인 공동체가 결코 현실과 유리된 가상의 조직이 아님을 뜻한다.

 

 

기고 - 정보지식사회의 사이버 공동체 '붉은 악마'
   
욕망의 세대이자 경험의 세대
김종길 덕성여대 교수

붉은 악마는 공동체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기존의 사이버 세대(N-세대)가 온라인 중심과 개인주의 등을 특징으로 한다면 ‘R-세대’는 정보 기술을 기반으로 한 온 라인과 오프 라인을 효과적으로 결합할 뿐만 아니라 개방적인 공동체의식으로 무장한 새 세대이다.

인터넷으로 네트워크화 됐다는 점에서 이들은 사이버 세대와 일견 유사하지만, 집단적이면서도 다양한 개성을 존중하는 개방적 공동체 의식을 갖고 있으며 직접 체험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이들은 사이버 공간의 가상 현실 경험을 오프 라인으로 옮겨 오기도 하고 오프라인 경험을 사이버 공간으로 가져가 새로운 체험을 감행하기도 하는 욕망의 세대이자 경험의 세대다.

붉은 악마는 전형적인 사이버 공동체이다. 사이버 공동체는 조직의 분화를 통해 성장하고 발전하며 구성원 관심사(interest)의 다양성을 반영한다.

붉은 악마의 경우는 대표팀 경기의 단체 관람이라는 확실한 오프 라인 모임을 기반으로 하여 세력을 급속도로 확장해 갔다.

사이버 공동체에는 기본적으로 수평적인 관계가 지배하고 있다. 공동체의 정체성 유지와 구성원들간 유대 증진을 위한 상징 체계가 발전되는 것도 대부분의 사이버 공동체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축제는 일상을 벗어나려는 사람들의 욕구가 가장 쉽게 표출되는 통로이다.

그런데 전통적인 의미의 축제가 사라져 버린 오늘날, 새로운 형식의 의사 축제가 ‘이벤트’라는 외피를 입고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특히 젊은이들은 전통적인 축제, 국가 주도형의 축제에서 탈피하여 자신이 스스로 구성하고,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벤트를 도처에서 양산하고 있다.

월드컵 개막과 함께 한국전이 있는 날이면 펼쳐졌던 대규모 길거리 응원과 화끈한 뒤풀이도 젊은이들에게 이러한 의미의 축제요 잔치로 다가왔다.

청각 미디어에 의존하여 정보를 얻어왔던 이전의 세대에 비해 새로운 세대는 더 많은 자극과 감각을 필요로 하는 영상 세대이다. 영상 세대는 오디오와 비쥬얼이 함께 제공되어야만 만족하는 복합 세대이자 그래픽 등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즉각적으로 정보를 파악하는 감각 세대이다.

사이버 공간에 존재하던 수많은 동호회 중의 하나에 불과했던 축구동호회를 온 국민의 자랑거리, 세계인의 관심거리로 만든 붉은 악마의 주도 세력이 이미 인터넷과 사이버 공간을 지배하고 있던 청소년층이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N세대, M세대를 넘어 R세대로 불리고 있는 이들은 사이버 공간의 가상현실 경험을 오프라인으로 옮겨오기도 하고, 오프라인 경험을 사이버 공간으로 가져가 새로운 체험을 감행하기도 하는 욕망의 세대이자 경험의 세대이다.

이들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면서 경험과 지식을 쌓고, 이를 통해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만들어내며 재생산한다.

 

 

입력시간 2002/07/12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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