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털중나리

도도한 듯 우아한 길섶의 귀부인

이젠 완전한 여름이다. 한동안 가는 봄을 조금이라도 늦춰보려고 이리저리 핑계를 대보았지만 이미 여름의 한 가운데 발을 들여놓은듯 하다.

숲 속은 더욱 무성해지고 온갖 나무와 풀들은 그만큼 왕성하게 활동한다. 이미 초록은 진한 녹음으로 변한 지 오래이다.

이런 때에는 숲 속에서 꽃을 피워도 여간해선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아주 자주 흰 꽃들을 수없이 많이 모아 흐드러지게 피는 터리풀, 숲 가장자리로 나와 버린 꿀풀과 패랭이꽃.

저마다 여러 가지 색깔과 모습으로 여름을 맞이한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여름 꽃을 찾으라면 큼직하고 붉은 꽃송이들이 탐스러운 나리꽃이 아닐까?

하지만 식물도감에서 나리를 찾으면 나오지 않는다. 참나리, 하늘나리, 말나리, 따나리, 섬말나리, 솔나리 등 '나리'라는 글자를 꽁무니에 매어 단 나리의 종료가 깜짝 놀랄 만큼 다양하다.

흔히 만나는 꽃도, 키도 가장 크고 잘 아는 종류를 고르면 얼굴에 까만 점을 가득 매어 단 참나리가 최고이고 , 희귀한 곳을 고르자면 울릉도의 섬말나리나 중북부 지방의 날개하늘나리가 꼽히겠지만 숲에서 가장 돋보이는 종류를 고르라면 아무래도 털중나리일 터이다.

털중나리는 우리나라의 볕이드는 어느 산에서나 자란다. 전국어느 곳엘 가도 만날수 있다. 산에 가도 우거져 침침한 숲 속이 아니라 산길을 오르다 길 가장자리에서 만나지는 그런 꽃이다.

한때는 조선나리라고도 불렀으니 이 꽃이 이땅에 지천인 우리의 꽃임을 알 수 이쏘, 미백합이란 별칭에서 그 아름다움을 짐작할 수 있다.

잘 자라면 키는 허벅지 높이 정도까지 자라고 그 줄기 끝에서 1개에서 5개 정도의 꽃송이들을 매어 달고 6월부터 8월까지 꽃을 피우니 여름의 한 가운데 있는 꽃이라고 할 수 있다.

꽃이 피면 6장의 주홍색 꽃잎 조각들이 뒤로 젖혀지고 6개의 수술과 1개의 암술이 모두 꽃 밖으로 길게 나와 피어 있는 모습이 참 곱기도 하다. 사실 털중나리를 비롯한 나리들은 우리나라의 백합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이 백합을 좋아하면서도 우리 산야의 여러 나리꽃들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하긴 순결을 상징한다는 백색의 꽃송이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진한 향기는 여간 매력적인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 백합은 자연에서 자라는 야생의 꽃이 아니라 사람들이 꽃을 크게 혹은 향기를 진하게 고르고 육종하여 만든 원예품종의 하나이다.

영어로는 릴리(Lily), 학명으로 말하면 릴리움속(Lilium)에 해당하는 식물들이다. 이 백합류의 우리꽃말 이름을 나리라고 생각하면 된다. 우리 나라에는 참으로 다양한 야생백합, 즉 나리꽃들이 자라고 있다.

서양의 백합은 좋아 하면서 우리의 나리꽃을 모르고 있다면 한참을 반성해야 옳다. 흔히 부르곤 하는 '솔로몬의 옷보다 더고운 백합'이란 찬송가 가사가 우리나라에서 만들어 졌다면 '솔로몬의 옷보다 더 고운 나리꽃'이 되었을 것이다.

꽃이 아름다워 키워 두고 보기에도 전혀 손색이 없다. 또 한 수많은 백합의 원예품종을 만드는데 그 유전자를 제공하였다. 이른 봄에 땅속 비늘 줄기를 밥에 넣어 먹으면 영양별식이 되고 약용으로 이용한다.

월드컵처럼 열광해 주지 않아도 지금도 이 땅에서 열심히 그 뿕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있을 우리 꽃 털중나니. 이러한 꽃을 한번 바라보고 이름을 불러주는 일도 붉은 셔츠를 입고 응원하는 일 만큼이나 우리것을 소중히 여기는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사

입력시간 2002/07/14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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