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평론] 정치, 제자리를 찾아라

온 나라를 뜨겁게 달구었던 2002 한일 월드컵이 끝났다. 월드컵의 성과는 대단하다. 우선 4강 신화를 이뤘다. 하늘을 찌를 듯한 사기에 지칠 줄 모르고 치달리는 한국 선수들의 투혼은 승패를 떠나 전세계를 놀라게 했다. 강팀을 만나면 만날수록 더 강해지고 멋진 경기를 벌였는데 흘린 땀만큼 결실을 거둔 것이다.

공동주최국으로서 대회운영도 성공적이어서 한민족의 저력을 세계에 널리 알리고 국가의 위상을 높였다. 특히 연인원 2,000만 명 이상이 쏟아져 나온 거리 응원은 국민의 단합된 힘과 가능성을 전세계에 알렸다.

국민 스스로도 놀라는 국민적 에너지의 분출로 월드컵을 국민감동의 대축제로 만든 것이 바로 거리 응원이었다. 거리응원에서 확산된 공동체의식과 시민의식은 월드컵이 끝난 지금 정치와 경제, 국민 삶의 질을 세계적 수준으로 높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바뀌었다.

또 월드컵은 한국의 대외 이미지도 크게 개선시켰다. 세계는 열성적 환호 속에서 한국을 역동적 나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제 '대~한민국'은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서 세계의 중심을 향해 치솟는 나라라는 이미지로 세계인에게 각인되었다.

물론 안타까운 점도 있다. 남북한 분산개최나 남북 단일팀 구성, 북한 주민들의 월드컵 관람 등이 이뤄지지 않았다. 또 3~4위전이 열리던 폐막 하루 전에 서해교전 사태가 발생함으로써 월드컵을 통해 동아시아의 평화를 증진시키겠다던 기대가 깨져버리고 말았다.

월드컵 성공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4,700만 온 국민의 뜨거운 함성이 이뤄낸 값진 승리였다. 온 국민이 공유하게 된 '힘을 모으니까 되더라'라는 집단적인 긍정적 경험은 국민화합의 구심점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또 히딩크식 리더십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히딩크 리더십의 덕목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정확한 방향 제시와 외부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는 자기 소신, 지연·혈연·학연을 떠난 능력 위주의 올바른 인재 등용이다.

히딩크는 정치,경제,사회의 도약을 위해 지도자와 리더십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우쳐 주었다. 이제 온 국민은 기본을 제대로 하는 것이 절실한 과제임을 깨달았다.

이제 우리는 월드컵 열기를 국가발전의 원동력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거리 응원에서 보여 준 다양한 구성원의 에너지를 한데 묶을 기준과 시스템을 구축해 경제 사회 등의 패러다임을 혁신해야 한다. 23인의 태극전사가 녹색의 그라운드에서 지칠 줄 모르고 열심히 뛰었듯이, 이제 온 국민은 각자 자신의 그라운드에서 열심히 뛰어야 한다.

우선 월드컵에 빠져 살면서 우리들이 잊어버리고 있던 것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예컨대 100일이 넘게 파업을 벌이고 있는 발전노조 문제라든가, 월드컵을 앞두고 웬 파업이냐고 비(非)국민 취급을 당했던 파업 노동자들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거리 미관을 해치고 통행을 불편하게 했다고 월드컵 기간 중 노점 행위가 금지되는 바람에 생계 유지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던 노점상 문제도 풀어야 한다. 미군 궤도차량에 깔려죽은 양주의 두 여중생 문제 해결 노력도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정치의 제자리 찾기이다. 우리 정치가 안고 있는 문제점이 16대 국회의 후반기 원 구성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16대 국회의 전반기 임기가 끝난 것은 5월 29일이다. 그런데 후반기 원 구성은 7월 11일에 이뤄졌다.

40일이 넘도록 국회가 ‘있어도 없는' 상태였다. 월드컵으로 온 세계의 이목이 우리 나라에 쏠리고 외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우리 나라를 찾았어도 이들을 맞아들일 공식적인 국회의 대표가 없었다. 국회의장과 부의장을 어느 당에서 차지하느냐를 놓고 싸웠기 때문이다.

어쨌든 원 구성이 이뤄졌으므로 이제 국회는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민의의 전당으로서 제 구실을 해야 한다. 이번 임시국회는 부패청산 국회가 되어야 한다. 각 당의 지도부와 대선 후보들이 부패척결과 정치 개혁 법안들의 연내 입법을 약속했다.

8. 8 재보선과 대선 등의 정치일정을 감안하면 이번 임시국회가 개혁입법의 마지막 기회이다. 이번 국회마저 정쟁으로 얼룩지고 부패청산 등 개혁입법에 실패해서는 안 된다.

손혁재 시사평론가 참여연대 운영위원장

입력시간 2002/07/19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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