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균의 개그 펀치] 한국판 '진기명기'를 이국에서?

몇 년 전 태국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저녁 때 일행들 몇 명과 시내를 구경하려고 택시를 탔는데 기사가 우리를 보더니 무지하게 반가운 척을 하는 것이다.

아마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흔하게 가는 관광지이다 보니 한국 사람들이 이웃처럼 여겨지나 보다 했는데 기사는 토막토막 끊어지는 우리말로 아주 재미있는 쇼를 보라고 권유를 했다.

한국 사람들이 아주 좋아하는 쇼이고 가격도 저렴하다며 우리를 유혹했다. 게이들의 쇼로 유명한 알카자 쇼보다 더 재미있다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드는 기사를 따라 우리는 멋도 모르고 따라갔다.

테이블에 앉자 간단한 음료수가 나왔고 우리가 막 한모금을 마시자마자 태국 여성이 나와 쇼를 하기 시작했다. 아주 가볍고 건전한 마음으로 따라 나섰던 우리 일행은 순간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한국에서 소문으로 듣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소위 ‘미아리 쇼’를 낯선 이국땅인 태국에서 보게 될 줄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여성의 성기로 바늘을 날려 풍선을 터뜨리고, 매직으로 그림을 그리고, 병뚜껑을 따는 묘기를 멍하니 바라보다 일행은 '흠, 흠' 하는 헛기침을 날리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도중에 자리를 뜨고 말았다.

대부분 나보다 나이가 많고 점잖은 인격을 갖춘 일행들은 태국의 무더운 밤거리로 나오자마자 어색한 분위기를 만회하려는 듯 애써 농담을 했다.

“ 거참, 이제 우리나라 문화도 세계적으로 발돋움을 하려나봅니다.”

“그렇죠? 분명히 우리나라에 와서 배워갔을 거예요.”

“아님 우리나라의 일류 강사를 초빙해서 배웠는지도 모르지요.”

“대한민국이 문화 수출국가로 발전했네요.”

흔히 외국에서 우리의 것을 우연히 만나면 그렇게 반갑고 감격스럽다고들 하는데 그날 밤 우리 일행은 서로 민망한 시선을 마주치지않기 위해 얼마나 안간힘을 썼는지 모른다.

최근 우리나라도 공창제도를 만들고 소위 미아리 텍사스촌을 특구로 지정하자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인간의 근본 욕망인 성적본능이 영구히 사라지지않는 한 성매춘은 결코 멸종되지 않을 것이다. 김강자 총경도 일찍부터 공창제도를 합법화하자는 주장을 펼쳐 세인들의 관심을 끌었었다.

단속을 하고 윤락가를 초토화시켰어도 우리나라에서 성매춘이 사라졌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윤락녀들은 정들었던 보금자리를 떠나 새로운 곳에서 그들의 사업장을 끈질기게 부활시켰고, 멀쩡하던 동네가 다시금 떠오르는 윤락가로 사람들의 기억에 저장되는 현실이다.

따지고 보면 유교적인 사고방식으로 똘똘 뭉쳤던 조선시대에도 공창제도에 관한 문제가 제기됐었고, 아무리 엄한 형벌을 내려도 성매춘이 사라지지 않았던 점을 감안한다면 공창제도는 막연한 호기심과 재미로 떠들 문제는 아니다.

예전 같으면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치를 떨었을 사람들이 공창제도를 보다 유연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일이 많아졌다.

히딩크 감독의 고향 네덜란드에는 공창이 있고 큰길에 섹스 박물관도 있다. 나 역시 공창제도를 두고 가치판단의 기준을 못 내리고 있지만 만약 그것이 합법화 된다면 매춘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어떤 명칭으로 불러야 할지 고민이 된다.

태국에서의 놀라웠던 경험과 우리의 성문화를 세계적으로 알린 그녀들의 눈물겨운 노력과 신기에 가까운 그들의 ‘진기명기’를 감안해서 ‘기능 보유자’로 인정해줘야 하는 것은 아닐까. 머지않아 기능 보유자, 명장, 기능 전수자 , 연습생 같은 새로운 쇼걸들이 탄생할 날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

입력시간 2002/07/19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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