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의 문화읽기] 치히로가 깨닫게한 말의 진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최근 작이다. 널리 알려진 대로 미야자키 하야오는 ‘미래소년 코난’ ‘천공의 성 라퓨타’ ‘이웃집 토토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원령공주’ 등을 발표한 일본 애니메이션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원령공주’이후 4년만의 작품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일본에서 2,4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고, 올해 베를린 영화제에서는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다. 일본적인 이야기를 통해서 보편적인 주제를 표현한 작품임을 대내외적으로 입증 받은 셈이다.

개인적으로는 예순이 넘은 노대가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누군가의 말처럼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행복해 지기 때문이다.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친구 딸을 보면서 10살배기 어린이를 위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지금껏 만든 영화 중 10살 배기 어린이를 위한 작품을 만든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탄생하게 된 거지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칭얼거리기 좋아하는 평범한 10살배기 소녀 치히로가, 돼지로 변한 부모를 구하고 정령(精靈)의 세계에서 인간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마녀 유바바가 운영하는 온천장에서 벌이는 모험과 성장의 이야기이다.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아무 걱정 없이 살던 소녀가 눈물 젖은 주먹밥을 먹으면서 세상을 배워나가고, 그 과정에서 훌쩍 성장하는 모습은 보는 사람에게 커다란 감동을 안겨준다.

정령의 세계이면서 인간 세계의 축소판이기도 한 온천장에서 치히로는 노동의 신성함과 인간적인 미덕들을 배우게 되고 강한 의지와 정의로움을 가진 소녀로 성장하게 된다. 자신을 도와주던 바쿠의 목숨이 위험하게 되자 생과 사의 갈림길을 운행하는 죽음의 기차에 오른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는 미야자키 하야오 특유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살아있다.

무(無)국적의 풍경들, 선과 악의 절대적인 구분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 자연의 존재의미를 배우는 과정에서 문명과 인간의 운명에 대해서 깨닫게 된다는 설정, 인간의 진정한 힘은 물리적인 권력이 아니라 자연과 대한 이해와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로부터 생겨난다는 메시지 등이 모두 그러하다.

특히 주연이나 조연을 막론하고 완전하거나 완벽한 성격의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은 이 작품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뭔가 조금씩 부족한 인물들은, 한편으로는 엽기 코믹한 에피소드들을 한없이 만들어 내는 원천이 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만화적 상상력이 가진 공허함을 보충할 수 있는 사실성을 제공한다.

감독의 다른 작품에서도 그러하듯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자연의 의미는 두드러진다. 탐욕 때문에 돼지가 되어버린 부모의 모습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은 물질문명의 안락함 속에 안주하면서 자연의 의미를 잊어버린다.

하지만 영화평론가 이상용이 적절하게 지적했듯이, 자연을 향한 애정을 회복하지 않으면 파멸로부터 회복될 수가 없는 것이 인간의 문명이기도 하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것을 자연을 향한 예의라고 부른다. “인간은 문명을 버리고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숙명적으로 자연을 이용해야만 하고 자연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니 자연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자연의 중요성과 더불어 강조되는 것은 말의 진실성이다. 치히로가 빠져든 정령의 세계에서는 한번 내뱉은 말은 돌이킬 수 없는 무거움을 가진다. 마녀 유바바가 지배하는 목욕탕에서 '싫다'라는 한 마디만 입 밖에 내면 대번에 쫓겨난다.

그와는 반대로 ‘여기서 일하겠다’고 말하면 아무리 마녀라고 해도 그 말을 무시할 수가 없다. 온갖 귀신들이 공포와 엽기를 연출하는 공간이지만 말의 진실성만큼은 한치의 어그러짐도 없이 존중되고 있다.

이러한 주제의식의 이면에는 모든 말이 거품처럼 공허해진 현대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이 가로 놓여져 있다.

말은 평범한 소녀 치히로를 신념과 의지를 지닌 센으로 변화시킨 가장 근원적인 힘이었다. 말은 자기자신에게 하는 약속인 동시에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와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말의 진실성이라, 까맣게 잊고 지내던 소중한 가치를 한 편의 만화영화로부터 배운다.

김동식 문학평론가

입력시간 2002/07/25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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