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의 꿈이 음반시장을 망친다"

승자 독식구조 재편, 로비 관행 등 악습 척결이 과제

한국의 음반산업은 과연 ‘산업’인가. 문화야말로 국가의 기간산업이며 세계 경쟁력의 척도라고 노래 부르는 21세기의 상황에서 이 질문은 우문에 가깝다. 하지만 본질을 들여다보면 나날이 합리적으로 성장하는 영화산업과는 달리 음반산업은 내일의 희망이 암담한 방송사의 ‘하녀’ 수준이다.

1990년, 1995년 그리고 올해까지 벌써 세 번째 불어 닥친 PD 뇌물 수수 파동은 어두운 한국 음반산업을 상징하는 불길한 네거티브 필름이다. MP3 불법 다운로드 문제가 아니더라도 시장은 이미 아바의 노래처럼 ‘The winner takes it all’이라는 승자 독식의 투전판으로 전락했고, 다양성의 시대에 다양성이 화형 당하는 어처구니없는 풍경을 연출하고 있는 중이다.

사정이 이런데 제 정신이 박힌 음반 제작자라면 판박이 같은 감수성을 거부하는 음악적 아웃사이더들에게 음반을 발표할 기회를 제공할 리가 없다. 활동할

근거조차가 없는 음악인에게 수천만원이 넘는 제작비와 몇 억이 웃도는 홍보비를 투자할 바보가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속된 말로 ‘안전빵’인 주류의 유행 스타일에 목숨을 걸고 덤빌 수밖에 없다.


생사 여탈권 쥔 오락프로 PD

1996년 여름 시장에 ‘던져진’ 신인 댄스 그룹은 200팀이 넘었다. 그 중의 생존자는 한때 십대들을 달구었던 H.O.T.와 영턱스클럽 정도. 거의 100대1

에 가까운 확률에도 아랑곳 않고 물고 늘어지는 것은 그래도 이 쪽이 성공하기만 하면 돈방석에 앉을 수 있는 가능성이라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제작자들은 돈을 싸들고 꿈의 공장인 여의도로 향한다.

따라서 세 개밖에 되지 않는 공중파 TV의 연예 오락 프로그램 프로듀서들은 이들의 생사 여탈권을 쥔, 한국 대중음악의 무소불위의 존재들이다. 뇌물 스캔들을 비롯한 숱한 추문들이 잊을 만 하면 터지고 또 유야무야되는 것은 이제 쇼 비즈니스계의 정기 행사처럼 되어 버렸다.

따라서 아직도 전근대적인 유통망의 수준에서 벗어나고 못한 상황에서 ‘좋은 음악(인)만들기’보다 방송에서의 ‘얼굴 알리기’가 음반 제작자들의 생사를 좌우하는 일이 된 것은 전혀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물 속 깊이 잠수해 있다가 잊을 만하면 한번씩 수면 위로 솟아올라 수용자

들에게 환멸을 안겨주는 로비에 의한 매니지먼트가 불행하게도 한국 대중음악문화의 파이프라인임이 명백해졌다.

이것이 수준 낮은 비극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보다 더 큰 비극은 이 사태를 몇몇 매니저와 이에 결탁한 몇몇 프로듀서의 도덕성에 침을 뱉고 ‘본디 그런 판 아니었어. 이제 알았니.’하며 대중문화에 대한 냉소주의를 더욱 강화하는 태도이다.

검찰에 의해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고 혐의가 확정된 인사들이 실형을 선고 받는 것으로 이 유서 깊은 모순은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법망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정교한 로비의 방법론들이 첨예하게 강구될 것이다.

한 발짝만 더 문제를 표면에서 내면으로 발길을 옮긴다면 이 모든 비리가 1970년대 이후 공중파 방송에게 집중된 네트워크 문화의 비정상적인 성장에 기인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유신 정권은 모든 문화적 행동을 중앙으로 집중시켰고 국민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가장 직접적이고 영향력 있는 매체인 공중파를 권력의 하부기관으로 편입시키면서 그 반대급부로 방송국에게는 대중문화에 대한 생사여탈권의 권능을 부여했다.

주변문화, 혹은 비주류 문화, 나아가 한 국가의 문화가 균형 있게 발전하는 데 필수 불가결한 요소인 대항문화는 싹을 틔워 보기도 전에 무참히 거세 당했다. 긴급조치에 의한 1975년의 대중음악의 분서갱유는 대중문화에 대한 이와 같은 폭행의 대표적인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가요 순위프로그램의 허구성

따라서 ‘합법적인’ 대중음악가와 음반회사는 몇 되지도 않는 공중파 방송의 프로그램의 출연을 놓고 살아 남기 위한 처절한 사투를 벌일 수 밖에 없었으며 근거 없는 각종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 높은 순위를 낙점 받기 위해 장부에 기록할 수 없는 ‘불법적인’ 로비 비자금을 조성해야 한다.

그리고 프로그램은 프로그램대로 ‘대국민 음반 판매 강요 방송’으로 전락한다.순위 프로그램이 가장 과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예술에 무슨 순위냐는 고답적인 관점 때문이 아니라 최소한 시장의 판매고에도 근거하지 않은, 거의 자의적이고 폭력적인 순위 권력 부여 시스템 때문이다. 즉 많이 팔려서 1위를 하는 것

이 아니라 1위가 되어서 많이 팔리는 셈이다. 이것은 명백히 공정 거래법 위반이다. 범법자 검거와는 상관없이 무조건 순위 프로그램부터 폐지되어야 마땅하다. 또 오락적 관점말고 교양적 관점의 대중음악 프로그램이 제작되는 풍토가 조성되었으면 한다.

대중음악문화의 본질은 음반사의 기획력과 대중음악가의 상상력의 산물인 음반과 공연이라는 두 축에 있다. 방송은 저널리즘과 마찬가지로 생산담당자와 수용자 사이를 매개하는 메커니즘일뿐이다.

2차 대전 이후 기하급수적인 발전을 거듭한 매스 미디어의 위력이 아무리 극에 달했다고 하더라도 대중음악문화의 생산 기능까지를 담당하진 못한다.

따라서 이 꼬이고 꼬인 매듭을 풀기 위해서는, 그리고 시장의 개방과 멀티미디어 시대로 확대되는 세계 경쟁력의 기초를 쌓기 위해선 전근대적인 독점을 수행해온 공중파 방송의 권능을 구조적으로 분산시킴과 동시에 음반사와 대중음악가들도 한탕주의의 미망에서 벗어나 음반과 공연이라는 본연의 진검승부에 총력을 경주해야 한다.

이와 관련, 마지막으로 언급되어야 할 분야는 라디오 음악 방송 분야이다.아무리 TV 한번 나가는 것이 라디오에 백번 나가는 것보다 낫다고 해도 대중음악의 종국적인 채널은 라디오의 전문음악 방송이다.

하지만 우리의 FM에서 음악 전문 프로그램이라고 꼽을 만 한 것이 과연 손가락 다섯 개나 채울 수 있을까. 지금 우리의 음악방송은 음악하고는 아무 상관없는 반짝 스타들을 끌어대어 시청률 올리기의 이전투구를 벌이는 데 아까운 공기(公器)를 소모하고 있는 중이다.

지금 우리의 음악 방송 수준이 대학가나 다운타운의 음악다방이 번성했던 1970년대보다 후진적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엄청난 비용이 투입되어야 하는 TV 방송과는 달리 지역 FM 방송사는 강남에 갈비집 하나 내는 돈이면 가능하다고 한다.

우리는 음악에 대한 열정과 독특한 식견을 가진 전문적인 진행자에 의한 진짜 ‘음악방송’을 듣고 싶다.

기존 방송사들의 독과점적 야욕은 이제 역사 저편의 기억으로 넘겨야 한다. 언더그라운드의 활성화와 독립적인 음악 방송 채널은 다양한 음악이 분출되는 분위기를 생성한다. 그리고 이 두 조건은 우리의 대중음악이 21세기에도 꽃을 피울 수 있는 가장 시급한 필요 조건이다.

강헌·대중음악평론가

입력시간 2002/07/29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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