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 맥주 멋과 맛, 개성을 마신다

소규모 제조설비 갖춘 업소서 차별화된 맛 즐길 수 있어

외국, 특히 유럽쪽을 돌아본 여행객들은 마을마다 제각각 다른 맛의 맥주를 만들어 팔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라는 말을 하곤 한다. 소규모 제조설비를 갖추고 독특한 맛과 색깔의 맥주를 만들어 파는 ‘하우스 맥주’가 그것으로 고장마다 맥주 종류가 다양해 신선했다는 것이다.

이제 국내에서도 유럽식의 하우스 맥주를 맛볼 수 있게 됐다. 지금까지는 하이트와 OB, 수입맥주가 맥주의 전부였으나 최근 정부가 일정한 시설을 갖춘 개인이나 업소에도 맥주제조와 판매허가를 내주면서 하우스맥주를 판매하는 ‘마이크로 브루어리(micro brewry)’가 등장한 것이다. 바야흐로 맥주전성시대가 열린 셈이다.


만드는 과정 구경하는 재미

조선호텔은 삼성동 코엑스 컨벤션센터 1층에 7월 15일 ‘오킴스브로이하우스’(02-6002-7050)를 열었다. 마이크로브루어리코리아도 같은 날 강남역 주변에 ‘옥토버훼스트’(02-3481-8881)를 오픈했다. 두 매장이 국내에 선보인 하우스맥주 1호점이다.

조선호텔 오킴스는 500여평의 매장에 410석의 좌석을 마련했는데 황동으로 만든 맥주 제조기구가 매장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어 맥주를 만드는 과정을 구경하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스테인레스로 만든 발효ㆍ숙성, 저장조는 매장 우측과 뒤편으로 배치해 고객들이 탱크 사이를 다닐 수 있도록 만들었다. 맥주제조 설비의 가격과 인테리어 비용만 16억원이 들었고 공사기간도 한달이 넘게 걸렸다.

이와 함께 독일 현지에서 맥주제조 전문가인 ‘브로우 마스터’도 영입해 왔다.

옥토버훼스트는 맥주제조 공장과 레스토랑 등 총 380평 규모에 254석을 배치했다. 맥주제조는 독일 뮌헨 공대에서 9학기 과정의 맥주양조공학 엔지니어 과정을 마친 방호권(31)씨가 맡고 있다.

국세청은 마이크로브루어리 허가를 내 줄 때 연간 생산쿼터를 정해 놓고 있다. 오킴스의 경우 17만ℓ(500㏄기준 34만잔), 옥토버훼스트는 20만ℓ를 제조ㆍ판매할 수 있다.

이외에 광주, 경남 양산 등지에서도 하우스맥주가 오픈을 준비하고 있다. 광주 용봉동에 들어설 예정인 코리아브루하우스는 지상4층 지하1층, 연건평 740평 규모의 대형 맥주판매장으로 시설비만 30억원이 넘게 들었다.

신선하고 깔끔한 맛


“살균처리된 유통 병맥주와 달리 몸에 좋은 효모가 그대로 살아 있어 한국 맥주유통시장에 일대 변혁을 일으키게 될 것”(코리아브루하우스 김익상 사장).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맥주 문화를 선사할 것”(옥토버훼스트 마이스터 방호권 씨). ”

하우스맥주는 한마디로 기존 대량생산 맥주에 비해 신선하고 깔끔한 맛이 살아있다고 할 수 있다. 생산설비가 설치된 각 업소에서 저마다의 원료를 사용하여 소비자들이 원하는 맛과 색깔의 제품을 만들어 내고, 유통과정 없이 그 자리에서 바로 뽑아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오킴스의 브루마스터 이상수(30)씨는 “소규모 맥주는 숙성 후 여과과정을 거치지 않고 저온에서 자연여과시켜 맥주 중의 효모나 비타민, 미네랄 성분이 함유되어 있다”며 “일반 맥주와 같이 정밀 여과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막걸리와 같이 다소 걸쭉한 맛을 풍기는 것이 독특하다”고 말했다.

하우스맥주의 신선하고 풍부한 맛은 결국 제조공정의 독특함 때문이다. 통상 접할 수 있는 대량생산 맥주는 보통 담금, 여과, 발효, 숙성, 열처리 등의 다섯 단계의 공정을 거치게 된다. 여기서 열처리는 완성된 맥주를 병이나 캔에 담은 뒤 60도 정도의 물을 20여분간 끼얹어 살균하는 과정으로 이 단계에서 맥주의 신선한 맛이 달아난다는 것이 하우스맥주 제조자들의 설명이다.

코리아브루하우스 김익상 사장은 “하우스 맥주는 생맥주처럼 열처리 과정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일반 맥주보다 신선하다”며 “또 유통과정을 생략할 수 없는 생맥주에 비해서도 효모와 미생물이 훨씬 많이 살아있다”고 말했다.


4가지 재료에 4단계의 숙성과정

하우스맥주의 재료는 맥아, 물, 효모, 호프 등 4가지이고 제조과정도 당화, 여과(침전), 발효, 숙성의 4단계다.

가장 먼저 맥아를 분쇄기에 넣고 잘게 부순다. 맥아는 맥주보리에서 싹을 틔운 다음 싹만 잘라내고 말린 것을 말하는데 보리를 바로 쓰지 않는 이유는 다당류를 단당류로 바꾸기 위함이다. 싹을 틔우는 과정에서 다당류가 단당류로 변한 보리를 사용해야만 알코올을 빨리 만들 수 있다는 설명이다.

분쇄된 맥아가루를 50도 정도의 미지근한 물과 함께 당화탱크에 넣는 것이 제조설비를 이용한 첫번째 단계인 당화(糖化)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소규모 맥주판매장에 설치된 황동으로 된 용기가 사용된다.

당이 용해된 맥아즙은 바로 옆의 또다른 황동용기인 침전탱크로 옮겨가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호프가 첨가된다. 호프는 맥주의 쓴맛을 내는 재료다. 맥아즙에 호프를 넣으면서 가열을 하면 엿기름처럼 걸쭉한 상태가 된다.

젤 상태로 변한 맥아즙은 미세한 찌꺼기를 거르는 여과과정을 거쳐 다음 단계인 발효탱크로 옮겨진다. 보리가루 속에 포함된 당이 물속에서 용해되고 호프가 첨가돼 발표탱크로 옮겨지기 까지는 약 8~10시간 정도가 걸린다.

발효탱크로 넘어온 맥아즙에는 효모가 첨가되는데 효모는 맥아즙을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로 분리하는 기능을 한다. 적당한 온도를 맞춰 3~4일간 발효를 시키면 비로소 보리에서 술익는 냄새가 난다. 이 때 만들어진 맥주를 숙성이 덜 됐다는 의미에서 ‘영비어(young beer)’라고 한다.

영비어는 마지막으로 숙성탱크로 옮겨져 10일간 숙성단계를 거친다. 이 과정에서는 불순물을 가라앉혀 우리가 마실 수 있는 맥주를 걸러내게 된다. 불순물을 걸러내지 않은 맥주를 마실 경우 두통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한다.


한 업소에서 3,4종류 생산

하우스맥주를 미국에서는 마이크로브루어리 또는 홈브루어리(Homebreweryㆍ가정에서 직접 만들어 먹는 맥주)라 부르고 영국에서는 브로우펍(Brew-pub), 독일은 펍브루어리(Pub-breweryㆍ선술집), 일본은 지비루(지역맥주)라고 한다.

여기서는 수십 가지 종류의 맥주를 생산판매하는 데 비해 아직까지 정확한 명칭도 갖추진 못한 우리나라는 맥주 종류 역시 초보단계다. 한 매장에서 통상 3, 4가지 종류의 맥주를 생산하고 있다.

옥토버훼스트는 독일지방에서 유행하는 밀맥주인 바이스 비어와 흑맥주인 둥클래스 비어, 맛이 진한 필스 비어 등 3가지 종류를 생산ㆍ판매한다. 가격은 500㏄기준으로 필스 비어가 3,900원, 바이스 비어와 둥클레스 비어가 각각 5,600원이다. 여성들을 위한 바이스 비어로 과일향이 나는 효모로 발효시킨 ‘헤페 바이스 비어’가 야심작이다.

매장에서는 맥주 안주 대신 요리를 제공한다. 갖가지 소시지 요리가 1만원 정도고 슈바이네 학센(돼지 족발구이), 슈바이네 리펜(돼지 갈비구이) 등 유럽식 전통요리는 최저 5,000원에서 3만원 수준이다.

오킴스에서는 독일식 라거비어인 헬레스(Helles)와 독일 뮌헨 지방에서 가장 인기있는 헤비와이젠(Hefeweizen) 등 4가지 종류를 판매한다.

헬레스는 투명한 살색 맥주로 호프 향이 강하며 거품이 크림 같은 부드러운 맥주고 해비와이젠은 여러가지 과일 향의 맛이 나는 짙은 호박색의 맥주로 알코올 도수는 4.6도 수준이다. 400㏄에 4,800원이고 휘시 앤 칩, 모듬 소시지, 허브 로스트 치킨 등 맥주와 어울리는 30여가지의 안주를 곁들여 판다.

김정곤 기자

입력시간 2002/08/02 16:56


김정곤 kimj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