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 + 美] 고전주의 화풍에 현대적 구도

놓치고 싶지 않은 기억의 순간들을 포착하여 간직하고자 했던 인간의 소망은 19세기 중반 카메라의 발명을 통해 이루어졌다. 자신과 똑 같은 모습을 찍어내어 간직할 수 있는 사진술이 일반화 하기 전에는 유럽과 미국의 왕족과 귀족들은 자신의 명예와 부를 과시하려는 듯 저마다 유명화가에게 의뢰하여 자신의 초상화를 제작토록 하였다.

이 당시 왕립 아카데미를 통한 미술교육은 역사와 고전주의적 연구 속에서 화가들의 주관적 세계관이 배제된 채 획일적인 정형성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당시 왕족과 귀족의 계급이 차차 사라지고 신흥 세력인 부르주아 층이 생성됐다. 부르주아는 미술계의 새 후원자로 새로운 미술문화를 유도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인상주의’다.

모네, 시슬리, 르노와르, 드가 등의 인상주의 화가들은 아카데미의 인습에 저항하고 사진과도 같은 그림에서 탈피하여 태양의 빛을 받는 대지와 자연의 영상을 개인적인 시각으로 묘사하기 시작했다.

그 중 에드가 드가의 작품은 다른 인상주의 화가들과 다른 독특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그 당시 유행하기 시작한 사진술처럼 일상 생활의 한 장면을 마치 스냅 사진과 같이 연출하여 캔버스에 옮겼다는 점이다.

모네, 시슬리, 피사로 같은 화가들이 야외 풍경에 관심을 보이고 있을 때 드가는 경마, 무희, 세탁부 등의 모습을 실내에서 그려냈다.

예술은 속임수라고 말했던 드가는 작품에서 인공적인 연출을 가미했고 위의 ‘아침입욕’에서처럼 마치 시간이 멎은 듯한 모델의 포즈는 감상자의 시선을 강하게 유인하고 있다. 드가가 즐겨 그린 무대 위의 무희들의 움직임이나 카페에 앉아 있는 파리 시민의 모습을 보면 과감하게 잘려나간 배경과 인물들의 구도에 놀라게 되는데 이 역시 그의 작품세계에서 볼 수 있는 매력이다.

위의 ‘아침입욕’을 그릴 당시의 드가는 시력을 많이 잃은 상태였지만 화려한 커튼과 공간감을 주고 사선으로 가로 놓인 하얀 침대를 여인의 살결에 반사시키는 등 구도와 데생, 색채감각에 이르기까지 심혈을 기울인 흔적이 보인다.

드가는 작품에서 고전주의 화풍과 현대적 감각의 조화를 꾀하는데 주력했다. 일생을 독신으로 살며 친구의 작품에도 호된 충고를 아끼지 않았던 강인한 성격만큼 그의 작품에서도 인간에 대한 애착과 예술관의 고집스러움이 물씬 풍긴다.

장지선 미술칼럼니스트

입력시간 2002/08/04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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