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가볍고 빠른 인류학 산책


▣ 인류학의 거장들
(제리 무어 지음/ 김우영 옮김/ 한길사 펴냄)

인류학은 비주류 학문이면서도 특이할 정도로 유명 연구자를 대거 배출했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관찰하고 평가하는 작업인 데다 관찰자와 피관찰자의 경계도 모호한 인류학의 속성으로 인해 자주 논쟁의 중심에 섰기 때문이다.

유명 인류학자들은 대부분 아프리카나 남태평양의 원시 미개사회 등을 연구하면서 뛰어난 연구업적으로 세계 사상사에 한 획을 긋기도 했다.

미국 인류학자인 제리 무어 캘리포니아 주립대 교수의 ‘인류학의 거장들’은 인류학 창시자인 에드워드 타일러(1832~1917년)부터 ‘슬픈 열대’의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국화와 칼’의 루스 베네딕트, ‘사모아 섬의 사춘기’의 마거릿 미드를 거쳐 포스트모더니즘 인류학자인 제임스 페르난데스에 이르는 걸출한 인류학 연구자 21명을 중심으로 인류학사를 간결하게 정리했다.

저자는 인류학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이들 거장을 5가지 주제로 묶었다. 옥스포드 대학 최초의 인류학 교수였던 ‘원시문화’의 저자인 타일러와 ‘고대사회’를 저술한 모건 외에 미국 인류학의 선구자인 프란츠 보아스와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을 묶어 인류학 ‘창시자’로 분류했다.

타일러의 진화론적 도식을 비판한 보아스(1858~1942년)는 “한 인종이 다른 인종보다 선천적으로 좀 더 똑똑하고 강한 의지력을 타고나거나 정서적으로 보다 차분하다고 믿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며 인류학 태동기부터 이어져 온 인종 차별적인 연구태도를 배격했다는 점에서 창시자 반열에 들었다.

저자는 또 앨프레드 크로버와 루스 베네딕트, 에드워드 사피어, 마거릿 미드를 ‘문화의 성격’이라는 그룹으로 분류했고 최근 국내에도 번역ㆍ출간된 ‘증여론’으로 유명한 마르셀 모스와 브로니슬라프 말리노프스키, 래드클리프-브라운, 에드워드 에번스-프리처드는 ‘사회의 성격’에, 진화론을 부활시킨 레슬리 화이트와 문화생태학자인 줄리언 스튜어드, 문화유물론을 편 마빈 해리스, 페미니즘의 엘리너 버크 리콕은 ‘진화론, 적응론, 유물론’에 포함시켰다.

구조주의로 유명한 레비스트로스와 해석인류학의 클리퍼드 거츠, 빅터 터너, 메리 더글러스, 제임스 페르난데스는 ‘구조, 상징, 의미’로 묶었다.

1997년 미국에서 출간된 이 책의 장점은 방대한 인류학 이론을 대학 강의 교재처럼 인물 중심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어 짧은 시간에 인류학을 섭렵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입문서가 대개 그렇듯 깊은 맛은 느낄 순 없다.

또한 서구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바람에 17, 18세기 제국주의 시대에 식민지를 통치하는 학문적 수단으로 활용된 전력과 그 속성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강병준 전자신문 정보가전부 기자

입력시간 2002/08/09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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