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섹스, 거짓말, 그리고 그릇된 욕망의 말로


▣ 캠퍼스
(디트리히 슈바니츠 지음/ 조경식 옮김/ 민음사 펴냄)

얼마 전 국내에 번역ㆍ출간된 ‘남자-지구에서 가장 특이한 종족’이란 도발적인 제목의 문명 비판서를 쓴 디트리히 슈바니츠의 장편 소설이다. 책의 분량이 무려 500쪽에 달한다. 그렇다고 겁먹을 필요는 없다. 지적 오락소설이란 자기 소개에 걸맞게 경쾌하고 재미있다.

제자 밥시와의 내연 관계를 청산하려던 함부르크 대학의 저명한 교수 한노 하크만은 연구실에서 ‘고별 정사’를 벌이다 공사를 하던 인부들에게 들킨다.

밥시는 마침 여대생이 성폭행 당하는 설정의 연극에서 주연을 맡게 되고 자신이 배역에 몰입했다는 사실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실제 그런 경험이 있다는 거짓 선언을 하게 된다.

이 대학의 여성담당관은 밥시가 어느 남자 교수로부터 강간을 당했다고 단정을 내리고, 사건의 냄새를 맡고 추적에 나선 언론사 기자는 ‘저명한 사회학과 교수, 여대생 강간하다’는 충격적인 특종기사를 보도하는데…

이 소설의 진짜 재미는 남녀의 애정행각이 관련 인사들의 이기적인 관심에 의해 사회정의와 관련된 거창한 문제로 왜곡되고 확산되는 과정을 그럴싸하게 그려낸 데 있다.

여성 할당 비율을 늘리려는 여성담당관, 부총장 자리를 노리는 징계위 의장, 여성 교직원 표를 끌어 재선임되려는 총장, 특종기사에 눈먼 기자, 정치적 야망을 가진 시 공무원 등에 의해 진실은 거짓으로 끝없이 채색되고 부풀려진다.

대학 총장 선거를 둘러싼 책략과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의 술책, 진보의 탈을 쓴 도덕주의자들의 테러리즘, 센세이션을 향한 언론의 욕망이 뒤섞여 하크만을 망가뜨려놓는다.

함부르크 대학이란 실제 대학을 배경으로 삼고 있는 데다 저자가 1997년까지 20여년 동안 이 대학의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했기에 독일 출간 당시 이 인물이 실제로 누구를 모델로 했느냐를 놓고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또한 지식의 상아탑이라는 대학이 상업주의와 권력욕으로 망가지는 실상을 극명하게 그려낸 대학 붕괴의 묵시록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강병준 전자신문 정보가전부 기자

입력시간 2002/08/09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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